본교에서 본인들이 알고 있는 교리의 우월성이라든지, 동양종교의 유불선을 모두 섭렵하였다든지,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하였다" 하여 자랑하거나 말하지 말아야 한다
대개 본교의 골수분자들은 학문이나 종교학에서 넓게 배우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는 것이지 세상에 나와 있는 각종교의 교리에는 더 넓고 깊은 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일원상서원문도 각자 공부하는데 땟배로 사용할지언정 우월함을 과시하려고 나서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는 세번째로 대승기신론과 일원상서원문에서 인성론을 비교해 보았다. 아래의 내용이 꼭 인성에 관한 내용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비교해 보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고찰 한 내용에서 찿는 인성론 하고는 차이가 크다.
불가에서 말하기를 인성은 곧 사람 마음의 본성인데 모든 사람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불가에서는 대체적으로 설명하기를 그것은 상(相)이 없으니 더럽혀질 까닭도 없다. 마음은 오염과는 관계없이 청정하기만 한 하늘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본성이요 불성(佛性)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이 무엇 때문에 더럽혀지는가? 그것은 마음에는 심식과 연기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망심(妄心)이라 표현한다. 그러기에 망심을 끊어버리고 본래 마음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벗어 던져버리고, 이른바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자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일심이문(一心二門)’으로 설명되는데 일심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리언진여자리이고
이문에서는 말로써 표현할 수 있으니 여기에도 여실공과 같은 것은 리언진여와 같음이고 여실불공자리는 생멸문에 속해 현상세계로 연기하는데
가장 먼저 무명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망심(妄心)이다
그렇다면 대승기신론에서 인성론은 상(相)이 없으니 더럽혀 질 까닭도 없다는 무선무악한 자리요 마음의 본성이요 불성(佛性)이다.
이것이 진여인 본성이고 반대로 마음에는 심식과 연기가 있는 것은 오염되고 생멸하는 마음인 망심(妄心)이다.
그래서 진여(眞如)와 망심(妄心)은 다르지만, 본성에서는 둘이 아니다. 이는 본래 맑고 깨끗 한 진여, 자성이 생각이 일어나는 데 따라 변화의 상이 생겨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대승기신론에서 인성론을 말하려면 우선 본성과 같은 아뢰아식( 阿賴耶識)의 본각(本覺)인 일심(一心)에서 나타나는 무명이라는 근본불각(根本不覺)과 지말불각(枝末不覺) 과정의 삼세육추(三細六麄)인 무명업상(無明業相), 능견상(能見相), 경계상(境界相), 지상( 智相), 상속상( 相續相),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字相), 기업상(起業相), 업번고상(業繁苦相)으로 나누는데 구체적인 이 삼세육추(三細六麄)의 내용은 한편으로는 12 인연의 연기로 설명하기도 하고 또는 본성인 진여에서 나타나는 인성면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데 지면상 생략한다.
여기에 반해서 본교의 일원상서원문에서의 인성론은 짧게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