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128] 前生業報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출처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8/2018012801508.html
전생업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필자가 50세 이전에는 긴가민가했었다. 그러나 50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업보가 있다는 것을 80% 정도 믿게 되었다. 주변에서 보면 잘나가다가 나자빠지고 엎어지고, 별 볼일 없던 사람이 벼락출세하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전생업보가 있다는 것을 점차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인간 삶의 궤적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태어나는 생년, 월, 일, 시가 사주팔자인데, 어떤 사람은 좋은 팔자를 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나쁜 팔자를 타고 태어난다. 그 차이가 바로 전생업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전생업보를 따지는 일이 너무 복잡한 방정식일 것 같으면 그걸 신의 섭리라고 이해해도 된다.
나는 이렇게 신문 칼럼 쓰는 일이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 학교 다닐 때 글쓰기를 잘했던 것도 아니었다. 공부도 중간 정도였지 특별히 우수한 성적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방학 때 어느 절에 우연히 갔었는데 거기서 밥을 해주던 공양주 할머니가 나를 힐끗 보더니만 '학생은 나중에 붓으로 먹고살겠어'라고 뜬금없이 내뱉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 중간중간에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길로 들어갔을 기회와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국 문필가의 길로 들어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도 팔자이고 업보이다. 업보는 피할 수 없다.
현생에서 쌓은 나의 카르마(karma)는 내생으로 이어진다. 전생·현생·내생이라는 삼세(三世)가 인과(因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수천 년 동안 동양 철인들의 가르침이다. 삼세인과(三世因果)이다. 좋지 않은 원인을 제공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다. 인과율(因果律)은 반드시 보복을 동반한다. 악인(惡因)을 이미 만들어 놓고 선과(善果)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치 보복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어리석다. 인과의 이치를 모르면 정치 보복은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다. 업보라는 수레바퀴는 계속 구르도록 되어 있다. 업보사관(業報史觀)이다.
물은 강을 거쳐 바다로 모이고 사람은 세월을 거쳐 내생으로 모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연을 만들어 간다. 인연에는 영적으로 맺어지는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 즉 악연이 있다.
영장인연靈障因緣이란 말이 있다.인연은 만남에서 시작 된다. 즉 좋은 만남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악연은 영의 장애가 만들어내는 '영장'으로써, 인간 세상에 많은 애로와 장애를 가져오고 여러 가지 파란을 겪도록 유도한다.
그 악연은 왜 오는가, 우연인가 필연인가, 그 대책은 없는가에 대해 고심하여 나온 것이 선이요, 사랑이요, 자비일 것이다. 선조의 억압된 욕망이 자손이 살아가는 데 나타난다. 결혼, 연애, 우정, 직업, 건강, 사업, 환경, 재난, 관재구설,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우주의 마음은 선조의 억압된 욕망 (생전에 악업을 지었던 대가, 결과 등)을 통하여 후세에 경계를 하고 정도를 깨치도록 한다. 물론 우주의 마음과 내생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 인과응보의 원리가 아닌가 한다.
물은 강으로 바다로 흐르고, 인생은 세월을 거쳐 내생으로 흐른다. 그 내생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이다. 육체는 죽으면 지금의 세상, 죽음으로 끝나지만 마음에는 죽음이 없다. 노후하여 못쓰게 된 육체를 벗어 버리고 마음은 영원한 곳, 내생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한다. 저승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영혼)이 모이는 곳이다. 그때는 물론 분류되어 모인다. 세상에서도 요즈음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듯이 내생(저승)에서도 우리의 영혼들은 자연히 분리 된다. 그 분리수거장에는 인간 세계에서처럼 누가 나와서 분리해 주거나 교통정리 해주는 아무런 장치도 없다.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 나' 즉 '내마음'이 누구보다도 먼저, 세상에서 살아온 한 평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세상에서 말하는 빽이나 권력, 명예, 부귀영화가 그저 뜬구름일 뿐이다.
빈손으로 나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 왔는데 그 분은 그 손바닥을 보지 않으신다.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를 보고자하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의 삶에서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손일지라도, 진심으로 살아왔다면, 그리고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의지한 손이라면 거두어 주신다. 왜냐하면 초광력超光力의 힘은 우리의 마음을 한 순간 정화하여 맑게 씻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힘, 초광력超光力은 어떠한 조건이나 형식, 절차도 생략한다. 진심으로 확신과 신념을 갖고 고요히 명상에 잠겨,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잠깐 생각해 보라. 그리고 진솔하게 마음의 고향, 대 우주의 마음에 내 마음을 맡기면 된다.
길어야 3분, 한 번밖에 없는 삶, 씩씩하고 건강하게 새 출발 하자. 육체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자. 맑고 깨끗하게 새롭게 살자. 우주의 힘은 당신을 돕는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超光力 1996.07.10. 1판1쇄 P. 49~50 중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일과 선과 공적을 쌓아야 한다. 마음과 육체가 분리되면서 죽음이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바라거나 원하여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가장 정확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 죽음은 우리 안에 있다.
요즈음 얼마나 정서가 메말랐는지 사람들은 항상 붙어다니는 자기의 그림자가 있는지조차도 잊고 정신없이 쫓겨다닌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또한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에게도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라. 그 그림자는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 그림자가 지워지는 날이 죽는 날이다.
죽음이란 무엇이던가. 육체와 마음(종교에서는 영혼, 정신, 명)이 분리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없는 육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조금 전까지 육체를 끌고 다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자동차가 시내에 굴러다니다가 운전사가 없으면 그 자동차는 정지되고 마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의무를 다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며, 진정 ‘참나’는 누구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육체가 나인양 육체에 연연해 살아온 사람은, 육체가 어느 날 갑자기 못쓰게 되었을 때 육체를 따라 죽을 수도 없게 된, 남아 있는 나를 그제야 본다. 즉 마음이 아뿔싸! 하고 어이할꼬! 어이할꼬! 아무리 땅을 치며 소리쳐 울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영혼이 있음을 부정하고 살았으니 영의 세계(마음의 고향)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신앙 세계(천국·극락 등)에 들어가자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갈 곳 없는 이 내 마음, 인간계에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가진 자(파장이 일치하는 자)를 찾아갈 수밖에······.
세상에서의 한평생, 길다면 길지만 돌아서 보면 금방이다. 그 삶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한 점 두려움, 공포심도 없어야겠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환영받고 새 삶을 축복받기 위한 평소 마음의 준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다를 것이다. 평소 삶의 일부를 선업에 투자했더라면, 노후에서부터 다음 세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한 업을 지었으면 부귀 쌍전의 영화가 자손의 ‘사주인자(四柱因子)’ 주머니에 넣어지게 되며, 악업을 많이 쌓았으면 자손의 사주팔자에 고통과 악연이 넣어질 것이다. 가끔 나는 사주의 그 여덟 자 흐름에서, 그 부모와 조상이 지금 어떻게 되었으며 그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는지 등을 볼 때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실감한다.
빛viit의 세계, 한없는 평화와 충만이 깃들인 님의 고향, 살아서 복되게 살고, 죽어서 영원한 행복 찾는 이 깨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비록 초광력과 우주의 존재를, 천지신명이 있음을 거부해도 좋다. 다만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한 나를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간곡히 바란다.
마음의 영원한 집을 눈앞에 두고, 우수수 늦가을 낙엽 지듯 떨어져 내리는 마음들, 살아서 숨쉴 때 단 5분간만이라도 ‘참나’를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남은 삶, 착하고 선하게 이끌어 보자. 사람이 죽으면 남는 것은 업적이고, 그 업적은 선이든 악이든 유전한다. 그래서 ‘닮았다’라는 것이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 1쇄 P. 245~246 중
영육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들려오건만
비 온 후 산사에서 해가 질 무렵이면 바람결에 흔들려 오는 빛의 소리가 있다.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일러 주라고,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영혼들의 소리가 가랑잎 비비는 틈새에서 애절하게 들려 온다.
살아 생전 깨치지 못해 세상 삶이 다 인양, 바락바락 살다가 어느덧 닥쳐온 죽음, 영육(영혼과 육신)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그분의 소리가 아득히 들려 오건만, 앞을 가리고 선 검은 무리들…,
그 빛viit의 소리를 뒤로 하고 검은 무리에 섞여서 떨어져 내린다. 살아 생전에 빛viit의 소리, 우주의 마음을 조금만 깨쳤어도 찬란한 빛viit의 세상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후회 한들 어찌하리.
1백 년 채 못 되는 세상, 영원인양 살지만 영원한 세상은 죽은 후에나 있는 것을……, 자식에게 만큼은 일깨워 달라고 가랑잎 틈새에서 애절히 소리한다.
출처: 빛viit의 책 1권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P. 261
첫댓글 귀한 빛의글, 마음을 울리는 글, 관조합니다. 감사합니다.
차분하게 살펴보고 기억하고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내생업보"의논단글과 귀한 빛글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정말 소중한 내용,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물은 강을 거쳐 바다로 모이고,사람은 세월을 거쳐 내생으로 모인다."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읽고 또 읽어봅니다
빛과 함께 늘 관조하며~*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귀한글 마음으로 되새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빛과 함께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말흠 감사합니다
빛을 만났기에 관조도하고
보호를 받으며 감사히
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루를 보낼 때 중심이 되는 글입니다.
운명이나 업보가 있지만, 빛명상을 통해 그 길을 축복의 길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감사합니다.
관조하고 또 관조하고, 조금씩 밝아지는 자신을 찿습니다.
글을 통해 또 깨달을 수 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 했던 그림자 밟기 놀이가 그립기도 하고, 몇년동안 그림자를 보고 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빛과함께 살면서 자신을 관조하고 '복을 짓는다'라는 뜻을 배우고 행하려 노력하는 빛명상인들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서도 배우고 알게되니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빛을 알고 함께 할수 있어서 감사 합니다.
어려움 앞에서도 헤쳐 나갈수 있는 힘을 얻을수 있고
그보다 먼저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유해파장과 나쁜 일들이 비켜갈수 있게 하는 힘이 함께 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 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함을 감사합을 새삼 느낍니다.
우주마음님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살면서 알아야 할 내용인것같아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빛명상과 함께 하는 귀한 관조의 시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