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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자본주의
1. 개요
後期資本主義, Late-stage Capitalism
후기 자본주의는 20세기 초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솜바르트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2016년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현대적 사업 발전이 만들어낸 지각된 부조리, 모순, 위기, 부당성, 불평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는 1940년 이후의 역사적 시대로,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경제 확장을 포함한다. 이 표현은 1975년 출간된 어니스트 만델의 저서 후기 자본주의(Late Capitalism)의 영문 번역을 통해 영어권 세계에서 통용되기 이전인 유럽 대륙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만델의 작품의 독일어 원판에는 "해명 시도"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이는 만델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이론이라는 측면에서 전후 시기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설명을 제공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델은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후에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중요한 질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자본주의 탄생 이후 여러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특성을 연구했고, 사회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특징을 연구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종전 후 1910년대 후반 부터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일련의 복지주의, 비자본주의적 정책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자본주의적인 정책이 혼합된 상태로 경제를 운용했으며,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과는 다른 문화와 정책이 생겨나게
되었다.
2. 이론
만델은 191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며, 이 시기를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가 계층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것을 소유, 점거한 체제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통적 자본가 계급에서 전문노동자, 비자본가 엘리트라는 새로운 계급이 자본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과거 자본주의와는 다른 고도의 복지 체계가 갖춰질 수 있거나, 그러한 것들에 대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묵살할 수도 있는 특이한 상태라고 보았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서며, 그로인해 통일된 체계로 이어진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이윤 생산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자본주의가 될 수도 있으며, 흔히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뜻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 나타난 비사회주의적 상태이기 때문에, 그 사회를 단순히 통일된 체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기자본주의 상태를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후기자본주의 상태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더 굳게 유지될 수 있는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거 자본주의와는 다른 수많은 문화들이 새로 나타난다. 이러한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관해서 문화인류학자인 프레드릭 제임스는 후기자본주의 문화 3단계론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위르겐 하버마스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유지에 관한 정당성에 대해 고찰했다. 몇몇 학자는 후기자본주의 상태로 넘어온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문화적 진화 발생'이라고 보기도 하며, 후기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철학 기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고, 후기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호연관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 '후기자본주의'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은 에르네스트 만델이 《후기자본주의》를 쓰기 전에 이미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인 《자본론》에 설명했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후기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존재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설명하거나, 투쟁의 산물로써 착취 정도가 덜한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이 개념을 차용했을 뿐, 이 사회구성체 내부에서 기존 자본주의와 다른 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지, 그것의 과정이 어떤 괄목할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에 대해서는 정립하지 않았다. 또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정도에 따라, 최후의 자본주의가 어떠한 형태로 남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정립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정립하지 못한 것을 에르네스트 만델이 뒤늦게 정립한 것이다.
3. 만델의 주장
1972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 용어를 대중화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어니스트 만델에 따르면, 말기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의 기계화, 어쩌면 더 나은 유동성, 그리고 또한 인간생활의 더 포괄적인 분야의 상품화와 산업화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한다. 만델은 "포스트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후기 자본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보편화된 보편적 산업화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만델은 '신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했는데, 이 용어는 그 무렵 벨기에와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특징론에 관심을 끌었으나, 당시 극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에 반대했는데, 그들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할 수 있고, 자본주의의 타도보다는 개혁주의적 오류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델은 후기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에서 세 시기를 구분했다.
국내 시장에서 산업 자본의 성장을 통해 대략 1700년부터 1870년까지 자유롭게 경쟁하는 자본주의적 생산.
독점자본주의의 국면은, 대략 1870년부터 1940년까지이며, 제국주의적인 국제시장 경쟁과 식민지의 착취로 특징지어진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등장한 후기 자본주의의 시대는 다국적 기업, 세계화된 시장 및 노동, 대량 소비, 유동적인 다국적 자본의 공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통에서 만델은 마르크스가 명시한 자본주의의 운동의 주요 법칙을 참고하여 근대시대 전체의 성격을 특성화하려고 하였다. 만델의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예상치 못한 자본주의의 부활과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여준 긴 경제 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경제발전의 장파설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4. 프레드릭 제임슨의 주장
프레드릭 제임슨은 널리 인용된 포스트모더니즘, 즉 후기 자본주의 문화논리의 근거로 만델의 비전을 빌렸다.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티는 새로운 문화 생산 방식(문학, 영화, 미술, 비디오, 사회 이론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모더니즘의 이전 시대, 특히 주제 위치, 시간성, 서사에 대한 취급에서 현저하게 다르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과학 기술 지식의 바탕 위에서, 그리고 진보의 의미에 대한 민중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회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이념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는 사회공학에 회의적이며 진보의 의미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점이 특징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모더니즘이 점차 퇴보되었다. 급속한 기술 및 사회 변화의 여파로 오래된 확실성이 모두 무너졌다. 이것은 삶의 모든 부분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시작하며, 거의 모든 것을 말릴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고, 일시적인 것이며, 불완전하게 만든다.
제임슨은 "사과든 낙인이든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모든 입장은 또한...오늘날 다국적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반드시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제임슨의 분석의 한 부분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인터넷 아카이브에 복제되었다. 제임슨은 후기 자본주의 단계를 다국적 자본주의가든 정보자본주의가든 간에 전 세계적인 영역을 가진 새롭고 이전에는 비할 데 없는 발전으로 간주한다. 동시에 후기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후에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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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독일어: Spätkapitalismus, 영어: Late-stage capitalism, 後期資本主義)는 초기 자본주의와는 다른 수많은 비사회주의적인 경제 상태를 뜻하는 용어이다.
개요
자본주의 탄생 이후 여러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특성을 연구했고, 사회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특징을 연구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종전 후 191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일련의 복지주의, 비자본주의적 정책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자본주의적인 정책이 혼합된 상태로 경제를 운용했으며,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과는 다른 문화와 정책이 생겨나게 되었다.[1]
이론
자본주의 선진국의 경제 체제를 단순히 '자본주의'라고 묘사하기 어려워지자, 트로츠키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에르네스트 만델이 1972년에 《후기자본주의》라는 저서를 통하여, 1910년대 후반 이후부터 실행된 자본주의 시대를 '후기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는 191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시대를 설명하며, 이 시기를 과거 초기 자본주의 시대인 자본가 계층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것을 소유, 점거한 체제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통적인 자본가 계급에서 전문 노동자, 비자본가 엘리트라는 새로운 계급이 자본가의 역할을 대신하고있으며, 과거 자본주의와는 다른 고도의 복지 체계가 갖춰질 수 있거나, 그러한 것들에 대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묵살할 수도 있는 특이한 상태라고 보았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서며, 그로인해 통일된 체계로 이어진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이윤 생산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자본주의가 될 수도 있으며, 흔히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뜻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 나타난 비사회주의적 상태이기 때문에,[2] 그 사회를 단순히 통일된 체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기자본주의 상태를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후기자본주의 상태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더 굳게 유지될 수 있는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거 자본주의와는 다른 수많은 문화들이 새로 나타난다. 이러한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관해서 문화인류학자인 프레드릭 제임스는 후기자본주의 문화 3단계론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위르겐 하버마스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유지에 관한 정당성에 대해 고찰했다. 몇몇 학자는 후기자본주의 상태로 넘어온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문화적 진화 발생'이라고 보기도 하며, 후기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철학 기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고, 후기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호연관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 '후기자본주의'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은 에르네스트 만델이 《후기자본주의》를 쓰기 전에 이미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인 《자본론》에 설명했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후기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는 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존재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설명하거나, 투쟁의 산물로써 착취 정도가 덜한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이 개념을 차용했을 뿐, 이 사회구성체 내부에서 기존 자본주의와 다른 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지, 그것의 과정이 어떤 괄목할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에 대해서는 정립하지 않았다. 또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정도에 따라, 최후의 자본주의가 어떠한 형태로 남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정립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정립하지 못한 것을 에르네스트 만델이 뒤늦게 정립한 것이다.
형성 원인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형성 원인은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주로, 후발자본주의 국가를 지칭)와 핵심부 자본주의 국가(선진자본주의 국가를 지칭)의 형성 원인으로 나눌 수 있고, 둘의 내용은 다르다.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의 좌파적 후기자본주의화(주로 사민주의 체제)는 주로 반자본주의 세력이 핵심부 자본주의의 경제적 압력을 감수하는 상태로 그 급진성을 유지하기 힘들기[3] 때문에 대부분 권력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수정주의 그 위로의 반자본주의적 경향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며, 그와 다른 더 강력한 수준의 착취 자본주의로의 후기자본주의화는 주로 그 사회 엘리트들의 개발성장주의, 수직적 민족주의 선동의 결과로써 나타난다. 이러한 정책은 기존의 초기 자본주의와는 다른 복잡한 자본주의의 체제 형성을 낳는다. 핵심부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특유의 주기적 공황과 이윤생산으로 인한 빈부격차, 사회 불안을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후기자본주의로 진입한다. 핵심부 자본주의 국가의 후기자본주의화는 초기 자본주의보다 질적으로 높은 '개량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반면, 주변부 자본주의의 후기자본주의는 사실상 고도화 된 '착취' 사회로의 진입 형태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류
세계 경제 체제이며, 자본주의적 소유, 생산 관계가 변하지 않은 상태이고 초기자본주의와 다른 모든 자본주의적인 상태는 후기자본주의에 속한다. 또한 후기자본주의로써 나타나는 여러 가지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제시하는 복지주의적 자본주의도 후기자본주의에 속하며, 국가사회주의[4], 국가자본주의, 현대화 된 독점자본주의도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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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사상사 개설
제임슨(Fredric Jameson)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자본주의라고 하는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독점자본이 생산해내는 문화의 한 양상으로 본다. 후기자본주의란 말은 만델(Ernest Mandel)의 『후기자본주의』(1975)에서 나온 것으로, 후기자본주의의 단계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시장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이후에 등장한 다국적 자본주의를 말한다.
제임슨은 이 3단계에 대응하는 문화적 형태로서 사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들고 있다. 후기자본주의사회는 대중소외문화의 확산, 정보산업의 발달, 복지국가 등이 나타난 사회이다. 상품이 문화를 지배한 사회가 모더니즘이라면, 상품의 논리가 모더니즘의 예술까지도 상품화한 사회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후기산업사회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전적으로 다른 문화적 논리를 갖는데, 즉 미학적 대중주의, 의미의 해체, 반영, 재현의 약화 등의 특징을 보여준다.
료타르 등과 같은 논자들이 마르크스주의는 경제결정론적이고 환원주의적 경향 때문에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지만, 제임슨은 후기산업사회의 탈현대의 조건을 수용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양상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 내에서 통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의 소멸, 통일성이 결여되고 불안정하고 탈중심화된 문화양식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인 대량상품문화에서 나타난 모더니즘은 예술작품이 상품화의 물결에 저항하는 전략이자 자신을 교환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사회세력들을 막아내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상품화의 한 형식으로부터는 탈출할 수 있지만 물신화라는 논리는 피할 수 없다. 결국 모더니즘은 지배질서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정치세력과도 결별하고 만다. 이것은 모더니즘이 거부하고자 했던 부르조아 질서에서 나타나는 미학의 자율성이라는 환상을 재생산할 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지향하던 예술과 사회의 구분을 극복하고 이 둘의 조화를 시도한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자본주의에 뿌리박고 있는 모더니즘의 물상화라는 논리의 강화, 사회적 총체성의 끊임없는 상품화로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제임슨에 있어서 모더니즘보다 더욱 '근대적'으로 나타난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1984)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상응하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적 논리로서,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보다는 그것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문화적 우세종으로서 표현한다. 우세종이란 종속되어 있는 여러 특징들이 우세종과는 다르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말하는 개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사회ㆍ정치적 반항으로 나가지 않고 제도 속에 들어와 서구사회의 공식문화와 통합되었다는 데 있다. 즉 미학적 생산이 이제 상품생산에 통합되었던 것이다. 특히 전세계에 퍼진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 전반에 걸쳐 등장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ㆍ군사적 지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상부구조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국주의시대에 자본주의는 모순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는 자본주의위기론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혁명과 대중문화의 폭발적 확산, 상품미학의 발달 등으로 자본주의는 더욱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구, 무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급격한 단절이 아닌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상응하는 새로운 문화논리로 이해한 것이다.
제임슨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따라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진화과정을 재난인 동시에 진보라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산당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내용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특정한 부르조아 문화의 전개이다.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할 것을, 즉 이 자본주의 발전을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으로 파악할 것을, 다시 말해서 누가 보아도 좋지 못한 자본주의의 특징들과 자본주의의 해방적 역동성을 하나의 사고 속에서 다룰 수 있는 사고의 형태를 가지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우리에게는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진화에 대해 그것을 파국이면서 진보라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요청된다." 이와 같이 제임슨은 마르크스의 교훈을 토대로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를 양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제임슨의 변증법적 태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파괴적인 특징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상황에 적합한 사회, 정치 전략으로 나간다. 이러한 논지는 제임슨이 경제구조 자체의 변화보다는 기술영역과 유통부문, 소비유형의 변화로 인해 문화가 토대와 결합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문화와 경제의 새로운 변증법적 관계와 그것의 정치적 함의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현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 발생의 메카니즘을 전체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구체적인 사회집단과 계급들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고 사용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발생의 메카니즘과 구조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제임슨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제임슨이 총체성, 혁명적 실천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범주를 부활시킴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후기구조주의의 회의주의, 상대주의, 비합리주의를 극복하고 서구좌파의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슨은 해방과 지배의 변증법으로서 총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현실 속에서 역사발전을 해명하는 유일한 이론체계라고 본다.
그러나 제임슨이 회복시키고자 하는 총체성, 재현가능성 등의 개념은 전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나타나는 개념과는 일정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는 마르크스, 알튀세르, 프로이트, 라캉 등을 종합하여 이데올로기 재현, 문화재생산 등을 총체적인 과정 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비판의 방법을 구축한다.
그러면 그가 주장하는 역사를 재현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서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방법은 어떤 것인가? 제임슨은 데카르트 이후의 형이상학적 서사와 단순한 역사주의와 단절하고 탈중심화된 서사, 알튀세르가 말하는 역사의 불연속성, 중층결정, 불균등발전 등의 개념을 수용한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反휴머니즘, 反역사주의를 통해 서사를 기각하는 것과는 달리 서사의 긍정적인 측면을 해명하면서 상대적 자율성의 개념을 각 층위의 차이뿐만 아니라 동일성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알튀세르를 수용하는 그의 논의를 들어보자. "알튀세르의 공식은 실존적 경험과 과학적 지식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두 개의 차원이 서로의 입장을 밝히는 방식을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역사주의적으로 이러한 정의를 보는 관점은 이데올로기의 생산이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또한 이러한 생산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역사적 상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를 환원주의로부터 탈출시킨다. 결국 텍스트는 거시적인 사회과정의 단순한 반영이라는 전통적 사고를 피하면서 알튀세르를 따라 텍스트 등의 상호관계를 생산, 보상, 억압, 전치라는 능동적인 형태로 파악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슨의 과제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최종적인 폐쇄된 총체성 대신에 우연성을 내포하고 과정 중에 있는 총체성의 개념을 형성하는데 있다. 그러나 다국적 자본의 시대인 후기자본주의에서는 모든 현상들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현실의 총체적 반영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제임슨은 후기자본주의시대에는 총체적 현실의 재현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알 수 없는 대상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제임슨의 논의는 다국적 자본을 재현하는 새로운 양식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문화 역할을 끌어내는 데 그 목표가 있다고 하겠다. "새로운 정치예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실, 즉 다국적 자본의 세계공간이라는 대상을 고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국적 기업 속에서 우리는 개별적ㆍ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들 자신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인지 파악하게 되고, 사회ㆍ공간적 혼란 때문에 무력해진 행동과 투쟁의 힘을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적 형식은 공간적ㆍ사회적 기준 위에 전세계적 인식의 지도를 만들어 내고 투영하는 것을 그 과제로 한다." 바로 이러한 제임슨의 언급에서 우리는 그의 후기자본주의논리로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그의 독특한 대응양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사회 각 층위의 연관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문화와 경제간의 관계에 대해 불충분한 이해에 기초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의 서구의 변화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함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다국적 자본의 세계공간에서 파악함으로써 이러한 다국적 자본의 사회, 공간적 혼란에 의해 나타나는 계급투쟁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술영역과 소비유형의 변화, 일상 문화양식의 변화 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문화와 경험주의 차원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것은 바로 문화와 예술에 지나치게 경도함으로써 문화적 제도와 실천, 즉 계급투쟁의 연관성 속에서 그것을 해명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시각은 2차대전 이후 나타난 선진자본주의의 재편과 1968년 서구의 정치변화에 의해 나타난 정치, 경제, 문화의 불일치, 긴장, 불안 속에서 계급투쟁을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고찰할 것인가가 불명확하다. 만약 포스트모더니즘을 여러 사회층위에 의해 중층결정된 계급투쟁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경제결정론, 문화중심주의, 정치주의에 빠지는 위험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제 사회, 문화 현상적 현상을 상징적 재화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사회집단과 계급들의 투쟁관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출처
사상사개설 1996.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