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語解六十二分金剛經 제17분 신승(信僧)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여래가 설법한 바가 있느냐.] 수보리 말씀하되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아는 바와 같아서는 정한 법이 있지 아니함을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오며 또한 정한 법이 있지 아니함을 여래께서 가히 설하시나니,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여래께서 설하신 바 법은 다 가히 취할 수도 없으며 가히 설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소이인가 하오면 일체 현성이 다 함이 없는 법으로써 차별이 있게 한 까닭이옵니다.]
{附·漢文}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아 如來- 有所說法耶아 須菩提 言하사대 如我解佛所說義컨댄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 何以故오 如來所說法은 皆不可取며 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所以者何오 一切賢聖이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이니이다
대의(大義] 사진(四信)중 제4신승(信僧)이고 신승행 곧 관은 환관(幻觀)인 삼마제관이며 오분신(五分身)중 계신(戒身)을 성취한 것입니다.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는 물음에 수보리가 '제가 부처님 설하시는 바 뜻을 알기로는 일정한 법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 할 것이 없으며 또한 일정한 법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왜 그런가 어느 일정한 법 만을 보리(菩提)라고 하거나 설법이라고 한다면 그 밖의 법은 보리나 진리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나 설법은 상대적은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보리의 대답은 맞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 수보리가 '왜냐 하오면 여래께서 설하신 바 법은 다 가히 취하지 못할 것이요 가히 설 하지도 못할 것이며 법도 아니요 법 아닌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여 법이 있음도 제시하였습니다.
해[해] 須菩提야 於意云何오...앞에[법과 법 아닌 상을 다 버리고 잊으라]하시고 듣는 사람들이 오히려 법과 상을 버리지 못 하는 이 있을까 두려워 하시사 다시 수보리를 불러 네 마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해]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아... 무슨 깨닫게 하는 일정한 법이 있어서 여래 네가 아뇩다라삼먁삼 보리를 밖으로 부터 얻었느냐?
해[해] 如來- 有所說法耶아... 또는 무슨 중생을 깨닫게 하는 정한 법이 별도로 있어서 여래 내가 법을 설한바가 있느냐?
해[해] 須菩提 言하사대 如我解佛所說義컨댄... 수보리 대답하시되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해석함과 같아서는
해[해]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무슨 일정한법이 있어서 나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것이 없으며
해[해]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 역시 무슨 정한 법이 별로 있어서 여래께서 설하신 것도 없나이다.
강[강] 참다워 같은(眞如)부처 성품은 본래 비고 고요하여 밝고 깨끗하거늘 중생이 스스로 미혹하여 본래 성품을 보지 못하는 고로 여래께서 큰 자비로서 방편을 세우사 중생의 각각 병된바를 따라 가지가지 비유와 가지가지 말씀으로서 그 병을 없애기 위하사 부득이 권도(權道)로 법을 설하신바 있으나 이것은 중생 각각 본래 갖추어 족한 부처 성품을 열어 보이사 스스로 성품을 깨닫게 하였을 뿐이라 본래 성품이 둥글게 비어 깨끗하거늘 무엇에 의지하고 무엇에 붙이며 무엇을 얻을 것이 있으며 부처님과 중생이 둘이 아니어늘 무엇을 설할바 있으랴 이에 거짓세운 법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며 스스로 깨달은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그러나 중생이 스스로 미혹하였음일새 이 반야바라밀법에 의지하여 닦고 행하여 부처를 이루나니 구경에는 부처를 이룬 때에는 스스로 법과 문자 밖에 뛰어나 한 법과 한 상도 얻어보지 못하리니 무슨 정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것이 있으며 도한 무엇을 가히 설할 것이 있으리오
함허[涵虛] 진여(眞如)와 불성(佛性)과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이라 것들과 또는 육도(六度)니 사제(四諦)니 십이인연(十二因緣) 모든 이름과 말이 다 이 기틀에 대하여 부득이 부풀려 말씀하심이라 나아가 실다웁게 보면 처음부터 이런 일은 없도다 또한 때에 따라 설함이 있으나 실다운 법을 남에게 줄 것이 없느니라
육조[六祖] 아뇩다라는 밖으로 좇아 얻음이 아니요 다만 마음에 나라는 것만 없으면 곧 이 것이다 다만 인연을 좇아 병(病)에 대하여 약(藥)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방편을 다라 설하심이니 어찌 정한 법이 있으리요 여래께서 말씀하신 상 없는 바른 법은 마음에 본래 얻은 것이 없으며 또한 얻지 못함을 말할 것도 아니언마는 다만 중생이 소견이 같지아니함일새 여래께서 그들의 근기에 응하사 가지가지 방편으로 인도하여 교화 제도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모든 고집과 애착을 여이게 하심이라' 하시니 모든 중생의 망녕괸 마음이 낳고 멸하고 쉬지 아니하야 환경을 좇아 움직이며 앞 생각이 문득 일어나거든 뭇 생각이 응하여 깨달음이니 깨달음이 이미 머물지 아니한지라 보는 것이 또한 있지 아니함을 가리켜 주심이라 만약 그러할진대 어찌 정한 법이 있어 여래께서 가히 설하시리요 아(阿)라는 것은 마음에 망녕이 없음이요 뇩다라는 마음에 교만이 없음이요 삼(三)은 마음에 항상 바르게 정함이 있음이요 먁은 마음에 항상 바른 지혜가 있음이요 보리(菩提)라는 것은 마음이 항상 고요하여 한생각도 잡된 마음이 없어 깨끗함이니 곧 부처 성품을 본 것이다.
해[解] 何以故오 如來所說法은... 어떠한 까닭인고 여래께서 설하신바 법은
해[해] 皆不可取며 不可說이며... 다만 스스로 성품을 깨닫게 함이라 가히 미음이거나 상으로 써 취할 수 없으며 이미 마음이나 상으로써 취하지 못함일새 가히 입으로나 문자로서 설할 수도 없으며
해[해]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법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니니
강[講] 일체법의 본래 성품이 맑고 고요하거늘 민일 고집하여 법을 삼으면 스스로 성품에 비고 신령됨을 깨닫지 못함이니 어찌 가히 있다고 고집하며 본래 성품이 비고 고요하여 색과 상을 여이었으나 둥글게 통하고 꺼리낌 없이 모든 물건에 느껴 응하지 아니함이 없는지라 말라 빈것(頓空) 수성(水性)있는 물체에 수질(水質)이 말라 붙어 비여 버린 것 이거나 미련하게 빈것(頓空) 감각있는 물체에 감정이 멸진하여 비여 버린 것이 아니거늘 만일 고집하여 법 아님을 삼으면 천만가지 일과 물질에 기틀을 따라 응용하는 것은 과연 이 무엇인가 그러함으로 없다고 고집하지도 못할지라 있다고만 고집하면 이 는 상견(常見)이요 없다고만 고집하면 이는 단견(斷見)이니 상견과 단견인 두 끝에 떨어지면 다 이 상에 착함이라 법과 법 않임인 것을 둘다 잊어 버리고 잊은 상도 또한 잊어야 진실로 바른 이치에 맞어 합하리라
육조[六祖] 사람이 여래께서 설하신바 글자와 글구에만 집착하여 상이 없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망녕되게 아름아리로 해석함을 이르킬건가 두려워 하신고로 가히 취할 것이 아니라 말씀하심이요 여래께서 가지가지 중생을 알으켜 제도하시되 각각 기틀에 응하시고 힘(量)에 따르심이니 설하실바 어찌 정한바 있으랴 배우는 사람이 여래의 설하신바 교법에만 고집하여 독송하고 본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마침내 부처를 이루지 못하는 고로 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심이요 입으로만 외고 행하지 아니하면 곧 법이 아니요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행하여 마침내 얻은바 없음이 이 곧 법 않임(非非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