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는 초기에 대미외교에 중점을 두다가 종전기에는 대중외교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임시정부는 외교총장 김규식을 전권대사로 임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게 하였으며, 7월에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만국사회당대회(萬國社會黨大會)에 조소앙을 파견하여 한국독립승인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28년까지 유럽과 미주의 외교업무를 맡은 구미위원부는 미국 국회에 한국문제를 상정시키고 한국의 독립을 국제 문제로 제기하였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년 프랑스, 폴란드, 소련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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