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기억교실의 한 책상에 참사 이전 단원고 수학여행을 안내하는 가정통지문이 놓여 있다.
ⓒ민중의소리
“학교출발시간:2014년 4월 15일 16시30분,
학교도착시간:2014년 4월 18일 16시···”
‘4.16 기억교실’에 들어서자 빛바랜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단원고 학생들이 설렘을 안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지 1093일,
그 사이 대통령이 탄핵되고 녹슨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왔지만,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긴 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흔적,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친구들의 아픔이 기억교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월호 3주기를 나흘 앞둔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4·16 기억교실을 찾았다.
기억교실은 작년 8월 단원고등학교에서 인근에 있는 안산교육지원청으로 임시이전 됐다.
교실에는 단원고 희생자 255명(학생 246명·교원 9명)의 책·걸상 등
유품과 가족·친구들이 남긴 편지 등 기록물이 보존돼 있다.
(사망이 공식 확인되지 않은 미수습 학생 4명, 교사 2명의 물품은 아직 단원고에 있다.)
1093일째 4월16일을 사는 가족들
“언니야, 오늘 꿈에 꼭 나타나 줘”
‘경주 엄마’ 유병화 씨가 지난달 25일 딸에게 쓴 편지.ⓒ민중의소리
“사랑하는 내 아가~ 오늘 네가 타고 제주로 향했던 배가 올라왔다.
좋은 추억 만들고 돌아왔어야 되는데···”
‘경주 엄마’ 유병화 씨는 지난달 25일 기억교실을 찾아 딸에게 편지를 남겼다.
유씨는 전날까지 진도에서 선체가 반잠수선에 선적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안산에 올라와 가장 먼저 세월호 인양 소식을 딸에게 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아직 뱃속에서 너희 만날 날을 기다리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얼른 데리고 와서 함께 지내야지.
엄마는 어제일 같이 생생한데 벌써 3년째 맞는 4월16일이 다가온다.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내 새끼야”
환하게 웃고 있는 경주 양 사진 아래 놓인 엄마의 편지에서
지난 3년간 딸을 향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딸이 생각나는 순간마다 엄마는 이곳을 찾아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빼곡히 적었다.
기억교실은 피해가족들의 지난 3년의 아픔이 담긴 공간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동생이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와 선물한 인형들이 기억교실 책상 위에 놓여있다.
ⓒ민중의소리
“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산다는 게 너무 싫다”
단원고 2학년3반 한은지 양의 동생은 3주기를 앞두고 언니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3살 터울인 언니를 떠나보낸 정양은 올해 언니가 사고를 당했던 나이인 17살이 됐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 것조차 그에겐 상처였다.
“나는 언니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어.
우리 항상 3살 차이로 자랄 거라 믿고 있었는데.
시간이 멈췄으면 좋을 만큼 나이 먹기 싫어진다.
곧 있으면 4월16일이 오는데. 언니가 21살로 옆에 있으면 좋을텐데”
지난 3년간 동생은 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손편지를 들고 교실을 찾았다.
언니에게 보내는 수십통의 편지가 책상에 쌓여있었다.
정양은 편지와 함께 귀여운 캐릭터 인형 3개도 선물했다.
인형에 3남매의 이름을 써 붙이고 “항상 옆에 있겠다”며 언니를 다독였다.
“인형들처럼 우린 언제나 함께 일 거라 믿어···
오늘 밤 꿈에 나와서 정말 이쁘다고, 잘 샀다고 고맙다고,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가.”
생존학생들의 눈물 “우리 다음 생에도 꼭 친구하자”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으로 임시 이전된 4.16기억교실의 모습ⓒ민중의소리
생존학생들에게 기억교실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과 떠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카톡 보냈어.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너 눈 보면서 말 한마디만 했으면 좋겠다”
단원고 생존학생 A양은 2학년9반 고(故) 권민경 양에게
생전에 못다한 말을 편지로 전했다.
꾹꾹 눌러 써내려간 편지에서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A양의 슬픔이 담겨있었다.
“1년, 5년, 10년이 지나도 너와 내가 친구라는 건 변하지 않잖아.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친구는 너야.
나랑 친구 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다음 생에도 꼭 친구하자
그때는 내가 더욱더 잘해줄게.
많이 보고싶고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서로 잘 견뎠다고 말하자”는 A양의 글귀에서
참사 당시 고통을 떠안은 생존학생들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단원고 생존학생은 총 75명이다.
한편,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기억교실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기억교실이 개방된 후 현재까지 총 6000여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임시보존 중인 기억교실은 2019년께 건립예정인 ‘4·16교육시설’로 재이전 될 계획이다.
4.16 기억교실이 임시이전된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민중의소리
박근혜 앞에서 ‘세월호 리본’ 달았던 황기철 장군, 목포신항 찾아
방산비리 누명 쓰고 불명예 제대한 비운의 해군 참모총장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채 진도 팽목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맞았던 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이 12일 목포신항을 찾아
세월호 미수습자 유가족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황 전 참모총장은 이날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만에서
유가족을 만난 뒤 육상으로 완전히 올라온 세월호를 둘러봤다.
그는 가족들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조용히 찾아왔다. 힘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대한민국의 민간선박을 구출하기 위한
‘아덴만 여명 작전’을 주도하기도 한 그는 현재 중국에서 유학 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사고 현장과 진도 팽목항을 수시로 오가며
해경 등의 구조 작업을 적극 지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이목을 모은 바 있다.
황 전 참모총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 앞에서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었던 것에 대해 “국민의 희생에 대해 군인으로서 애도의 마음을 표한 것뿐”이라며
“군인이 가장 지켜야 하는 대상은 국민이다.
군인은 늘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나라가 곧 국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군령에 따르면 군복에 규정된 약장과 훈장을 제외하고 다른 부착물을 달 수 없다.
또 최근 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로 인해서 미중, 미북 관계가 냉각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드는 한중미일의 관계 선상에서 비롯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며
“결국 국방 안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그는 방산비리로 인해
세월호 구조에 통영함을 출동시키지 못했다는 누명을 쓰고 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후 2016년 대법원 최종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임기 7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이와 관련 황 전 총장은 이 매체에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퍼포먼스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해경은 이미 해체시켰으니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 거고,
계속 충분하지 않다는 여론이 있으니 결국 화살이 해군을 향했다.
무조건 현직 총장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한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군인은 국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데, 난생 처음 감옥에서
‘이것이 과연 국가가 원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직관적으로 이것은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어떤 개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명령한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면서 당시 청와대에 재직 중이었던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