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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은 주사역이 아니다.
(2) 예언은 주사역이 아니라 주사역을 돕는 사역이다!
예언은 주사역이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언이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삼중사역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모범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르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 세 가지를 교회의 주사역으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로 절대로 아무나 세우면 안 됩니다.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잘 가르치는 설교자,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하는 복음전도자, 그리고 병 고치고 귀신 쫓는 치유의 종을 지도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가 건강하고 바른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도님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반드시 이 세 가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의 역할 혹은 예언사역자의 위치는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바울은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고 했습니다. 또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14: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교회에 반드시 필요하고 성도들에게 유익한 사역입니다. 그렇다 해도 예언은 주사역이 아닙니다. 주사역을 돕는 보조 사역입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지만,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예언은 보조 사역이었습니다. 일례로, 예수님께서 예언 하나만 가지고 사역하신 적이 있습니까? 제자들에게라도, 혹은 70명에게라도 일일이 개인 예언을 해주거나 예언 집회를 연 일이 있습니까? 없지요! 왜냐하면 예언은 주사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목회자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주신 은사는 그것이 무엇이든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삼중사역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9가지 은사뿐 아니라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예언의 은사를 비롯해서 섬기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주사역인 삼중사역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언이 보조 사역이라고 한 제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예언의 은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말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예언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주어진 모든 은사가 다 그러합니다. 그것은 모두 주사역을 돕는 보조 사역입니다.
그러니 예언의 은사를 위시해서 각양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권위에 순복하고 겸손히 섬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0-1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그런데도 교만해서 사역자로 임명받지도 않았는데 사역하려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에게 예언을 받지도 말고 신뢰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그렇게 예언하는 사람들이 바른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설사 그의 예언이 발람처럼 맞는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과 교제하고 영향을 받으면 예언을 통해 얻은 유익보다 7배나 더 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엄 쿡은 『이렇게 예언하라』라는 책에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신약의 예언은 구약의 예언과는 다르게 행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옛 언약 아래서 선지자들은 부패하고 반항적인 국가에 대해 홀로 의의 목소리를 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
그러나 신약에서 예언사역자 혹은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다. ...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 일원으로서 지역 교회의 예언 사역자들은 은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지역 교회의 예언 사역자들에게 '그들은 지역 교회에 적(등록)을 두고 있는가?' '그들은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그들이 다른 지역에서 사역할 때 그들을 보호해주고 변호해주는 것이 있는가?' '만일 잘못될 경우 어떤 시정책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해봐야 한다. ...
신약에 보면 선지자는 독립적인 슈퍼스타가 아니라 우주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섬기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정말로 중요한 지적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들을 예언사역자를 평가할 때 반드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예언사역자를 인정하기 전, 우리는 이 질문들을 시금석으로 삼아 반드시 그를 시험해보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교회에서 예언하는 사람들이 목회자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같이 성령에 대해 열려 있고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는 교회에서 목회자의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예언사역자들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킹슬리 플레처 박사는 "지역 교회에서 적절히 사역하는 참된 예언자"라는 주제의 글에서 예언사역자들에게 이런 지침을 제공했습니다.
"목회자의 권위에 순복하는가?
하나님께 진실로 부름받은 예언자들은 소속한 교회를 책임지는 목회자의 권위에 순복한다. 이런 예언자들은 목회 권위의 원리를 올바로 인식하고, 항상 교회의 '의사 결정권자'(set man)에게 권위를 양보한다. 5대 사역자 가운데 하나로서, 예언자들은 교회 직분과 감당하는 역할에 대해 전적이고 깊은 이해를 나타낸다. 진정한 예언자는 절대로 목회자의 권위를 침범하거나 조종하거나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공공연히 양 떼들에게 목자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참된 예언자들은 예언사역이 교회에서 이미 가르친 진리를 보충하거나 지지하는 것이지, 결코 그것을 대체하거나 더구나 상충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참된 예언자들은 사역하는 동안에 교회 비전의 여러 양상들을 참고하면서 교회의 비전에 열심히 협력하려고 할 것이다. 목회자에 대한 전적인 지지와 사도에 대한 순복(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은 그가 참된 예언자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증거한다."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초기부터 목회자의 권위 아래 순복하고 영적 질서 안에 거하지 않으면 절대로 예언사역자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언사역을 통해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언만 잘한다고 좋은 사역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역자가 되려면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저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신뢰할 수 있는 예언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은사 때문에 조금도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으로 허리를 꽉 동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언하는 자들은 교회 지도자를 조종하려는 이세벨의 영을 경계해야 한다.
이세벨은 왕후이며 남편인 아합 왕을 조종했습니다. 성경에 그 사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마찬가지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교회 지도자들을 조종하려 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세벨을 자칭 선지자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를 강하게 받은 사람들은 이세벨의 영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럼 이세벨의 영이란 무엇일까요? 프랜시스 프랜지팬은 이세벨의 영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세벨의 영을 이해하기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를 죽인 바로 그 영이 '이세벨의 영'이다(왕상9:14).
이세벨의 영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타락할 정도로 이세벨의 영은 강력한 악령이다. '이세벨'을 그 문자대로 번역하면 '독립적'이라는 뜻이다. 즉 함께 일하기를 거부하고 삶의 동반자가 되기도 거절한다. 이세벨은 상대를 휘어잡고 조종하기 전까지는 누구와도 상종하지 않는다. 물론 이따금 잘 협력하는 척하기도 하지만 이는 차후에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정략일 뿐이다. 그럼으로써 마음속으로는 아무에게도 순응하지 않는다."
또한, 릭 조이너는 이세벨의 영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세벨의 영은 종교의 영의 한 형태입니다. ... 아합 왕의 아내로서 야심적이고 기만적이었던 여인이 바로 이세벨입니다. ... 이 영은 종종 교묘하게 조종하기 위해서 겸손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성품의 사람을 기만적으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이 영이 한 번 권세를 잡으면 대개 강력한 통제의 영과 파렴치할 정도의 주제넘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제 '이세벨의 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지요? 과거 우리 교회 안에도 이 영이 침투하여 활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금방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바은 사람들은 이세벨의 영을 특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 영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예언이 다스리는 일과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언뿐 아니라 다른 은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대지에서 저는 '예언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는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여주는 구절이 우리에게 또 다른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줍니다.
로마서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여기서 "다스리는 자"에 주목하십시오. 예언의 은사는 가르치는 은사가 아닙니다. 즉 예언은 설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의 은사는 다스리는 은사가 아닙니다. 다스리는 은사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잘 지적한 대로, 예언이나 치유의 은사를 강하게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담임목사에게 부어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제넘게 교회를 좌지우지하거나 담임목사를 조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릭 조이너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매우 지혜롭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보다 더 큰 권위를 추구하는 자를 경계하라.
비록 주님이 예언자에게 계시를 주신다 해도 그것은 반드시 그 예언자에게 어떤 정책을 지시할 수 있는 권위나 다른 이들이 그것에 기초하여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할 권위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에 있어서 선지자들은 종종 '망보는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위에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망보는 사람은 그곳에서 누가 오는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망보는 자의 임무는 그곳으로 오는 자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구별해서 이 소식을 성문에 앉아 있는 장로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 취해져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망보는 자의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오고 있는 자를 안으로 들일 것인지, 아니면 성 밖에 둘 것인지, 아니면 혹은 군사들을 소집하기 위해 경고 나팔을 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장로들의 책임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예언사역자들은 그 예언이 관찰되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는 덫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길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회중들과 사역자들에게 많은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시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교회 안에 목사들과 장로들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팀 해몬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는 주제의 글에서 예언의 은살를 받은 사람들에게 이런 지혜로운 경고를 했습니다.
"예언사역자는 끊임없이 교만의 영에 맞서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언자는 지역 교회에서 권위의 자리를 빼앗아 신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할 것이다.
비난과 반항을 피하라. 예언이나 분별의 말씀을 비난의 영이나 반항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목회자의 얼굴에 들이밀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지도자를 교정하는 말씀은 공개적으로 제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인적인 자리에서 기도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자세로 겸손의 영이 충만한 가운데 제시해야 한다. ...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말하는 5대 사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예언자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양육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예언자들은 독립적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게 아니라 협력하여 사역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예언자들이여, 충성스럽고 순종적이 되라! 예언자들이여, 지역 교회에서 머리의 위치에 서 있지 않은 사람은, 마땅히 그 교회의 지도자(목회자)가 성공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은 충성심과 헌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언자의 위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은사를 사용하여 마음껏 지지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라면, 이 경고들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예언자들이 이런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목회자들이 예언사역에 마음을 완전히 닫았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바울이 3절에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라고 권한 뒤에 다른 은사들과 달리 유독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만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라고 말한 것 아닐까요? 저는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교만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그으신 선을 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저는 경험이 많지 않은 목회자들의 실수를 막아주고 싶습니다. 종종 예언사역자들이 머리를 들고 자기를 높일 뿐 아니라, 목회자들이 스스로 그런 예언사역자들 아래로 자기를 낮춥니다. 경험이 없는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겸손히 행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혼란과 불행을 가져옵니다.
저도 초기에는 다소 그런 실수들을 했고,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아이합의 마이크 비클 목사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과거 자신이 한 실수를 솔직하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경험을 통해 보건대 ... 더 능력 있는 은사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보다(자신이) 덜 영적이라고 느낄 때에 큰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한동안 이와 같이 느꼈으며, 그 결과 나는 내 지도력의 자리를 강력한 예언적 은사들을 지니고 있는 자들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교회는 나의 불안정함과 거짓 겸손으로부터 나온 이러한 결정에 의해 상처를 입고 멍이 들었다. 대부분의 예언적인 사람들은 교회가 건강하고 균형을 이루며 안정되기 위하여 필요한 지도력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 오직 예언자들에 의해 운영되어지는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기엔 안전한 환경이 아니다."
목회자라면 마땅히 겸손할 뿐 아니라 건강한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자리와 위치를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만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자리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합당치 않은 자에게 내어주는 것 역시 교만이고 잘못입니다. 때로 이런 잘못은 목회자가 기도를 많이 하거나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모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분별없이 그 말을 따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목회자는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권위와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평안하고 성도님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