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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십 년 전 한국교회는 WCC 문제로 큰 홍역을 치뤘습니다.
WCC에 동참하는 정말 영양가 없는 이 일로 목숨 걸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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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따라가면 교회 다 죽는다
최덕성 (전 고신대 고려신대학원 교수)
1. WCC의 의도
WCC의 총무 울라프 트베이트 목사는 부산총회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교회는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교회의 경험을 수용하라”(경향신문, 2012.3.16.)고 말했다. 한국교회로부터 겸허히 배우겠다고 말한 몇 달 전의 음조와 판이하다. 한국교회 안의 WCC 부산총회 개최 반대 목소리를 의식한 듯하다. 트베이트의 말은 성경적 신앙과 신학을 버리고 자유주의 신학, 종교혼합주의, WCC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이동, 전환하라는 말로 들린다.
한국교회는 성숙해야 하고 배워야 할 과제를 많이 안고 있다. 지상교회는 마지막 날까지 미완성 공동체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고, 어느 단체가 유익한 면이 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경험’을 배우고 수용하고 새로운 교회 모델로 삼으면 그 뒤에는 무엇이 따라오는가? 생명력이 넘치는 성경적 교회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와는 정반대일 수 있다. 여기에 WCC의 심각성이 있다. WCC를 따라가면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퇴락하고, 사라지게 된다.
WCC의 종교간의 대화와 에큐메니칼 신학을 추종하던 유럽, 북미, 대양주 주류교회들은 생명력을 상실하고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퇴락의 원인은 프로그램의 결핍이나 시대적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 까닭이 아니다.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주일성수를 하지 않은 탓이 아니다. 상대주의 진리관, 만인 보편 구원관, 종교다원주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에 기초한 ‘신학’ 때문이다.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신의 부재, 십자가 도리 중심의 복음의 실종, 하나님의 말씀 결핍 때문이다.
2. WCC의 신학
WCC가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신학적 특징은 15가지로 집약된다. 이 점들은 역사적 기독교와 복음주의적인 한국교회의 신앙과 완전히 상반된다. 상이한 진리 인식 패러다임이 가져다준 이 주지들은 역사적 기독교와 신학충돌을 일으킨다.
1)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문화-종교, 인종, 지역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모든 종교인들을 다 사랑한다고 한다. 종교다원주의는 만인보편구원 사상에 기초해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WCC 안에 소수 종교인들의 주장이 아니라 이 단체가 몇 가지 문서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신학이다.
2) WCC는 기독교 진리의 상대적 가치만을 인정하는 종교대화주의를 표방한다. 타종교간의 대화에서 새롭게 참된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3) WCC는 종교혼합주의를 추구한다. 기독교공동체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을 아우르고 하나로 묶으려고 한다.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과 ‘거대 에큐메니즘’(macro-ecumenism)을 추구한다.
4) WCC 신학은 예수를 꼭 믿어야 할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단체의 선교와 복음전도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가 없다. 부산총회에 보고할 세계선교복음전도위원회의 최근 문서에도 십자가 진리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 진리 제시가 없다. WCC는 ‘전 복음’(whole gospel)과 통전적 신학(holistic theology)를 읊조린다. 그라나 이 단체의 신학과 그 진리인식 패러다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 신앙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오직 예수 구원’이라는 신앙은 WCC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대의 장애물이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의 도리와 이 진리의 복음 전도를 위해 동전 한 닢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회구원지상주의 선교에 매진한다.
5) WCC는 용공주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민족주의 인민해방운동과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게 거액을 제공했다. 쿠바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소련제 무기를 들고 인종차별 정책을 펼치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단체들을 지원했다. WCC의 용공정책은 폭력을 용인한 데까지 나아갔다.
6)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표방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신자들에게 이신칭의의 구원론 중심의 개종전도 활동을 금한다. 우상숭배, 성인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가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 선점(先占)한 이들 교회와 협조하여 인간화, 해방투쟁, 피조물들과 상생을 추구하는 등 이른바 ‘하나님의 선교’만 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를 도외시한다. 인민해방, 구조악 철폐, 빈자 구제를 선교와 복음전도의 지상(至上) 과제로 삼는다.
7) WCC는 로마가톨릭주의화되었다. 로마와 가시적 교회 일치를 도모하려고 종교개혁 신앙의 정박지를 버렸다. 가시적 일치의 장애물인 ‘오직 성경’ 원리를 포기했다. 그 자리에 ‘전통론’이라는 모호한 이론을 대체하여 모든 기독교 전통이 유효하다고 본다. 신학은 ‘오직 의견수렴’의 원리에 따른다.
8)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현 로마 교황은 2007년에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만이라고 성명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종래의 배타적 교회관을 쇄신하거나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9) 교황청의 태도변화로 말미암아 반세기 동안 지속해 오던 WCC 세계교회일치운동은 ‘물 먹은 격’이 되었다. WCC는 딜레마에 빠졌다. 개신교회들을 이끌고 교황좌 아래로 ‘귀정’(歸正)하든지, 에큐메니칼 은동의 목표를 사회복음주의 활동과 교제에 제한해야 할 처지이다. 부산총회에 보고할 세계선교복음전도위원회의 새 문서는 인간과 피조물들의 ‘상생’(相生)에 초점을 맞춘다.
10) WCC는 성경적인 교회일치운동의 전제인 신앙고백적 일치를 보호하는 울타리를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복음’을 외치는 자와 ‘거짓 교사’를 규제, 제재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를 회원들이 고백해야 할 신조로 천명한다.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훌륭한 문서이다. 그러나 21세기 교회 일치의 신조로는 불충분하다. 현대교회의 일치고백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부패성, 이신칭의 교리,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화목제물 사역,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성경의 권위와 신적 속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죄와 회개, 은혜의 수단, 천국과 지옥, 내세의 실재와 상벌을 다루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신적인 오류를 반박하는 내용이 없다. 뉴에이지운동, 프리메이슨, 포스트모더니즘, 진리 상대주의에 근거한 짝퉁 기독교 대한 지침이 없다.
11) WCC는 교회의 본질에 해당하는 신앙고백적 일치는 도외시하고, 다만 가시적 교회 일치에만 관심을 가진다. 성경적 신앙고백적 에큐메니즘을 사실상 무시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이 단체는 실제로 하나의 세계적 교회(Una Sancta) 건설을 추구해 왔다.
12)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다. 역사서와 문학서와 같은 인간의 책으로 여긴다. 다만 하나님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무엇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책이 권위를 지닌다고 한다. 무모하다거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논의는 하지 않는다.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학주의, 종교혼합주의는 성경관과 궤를 같이 한다.
13) WCC는 시류(時流)에 따라 순교자 개념을 바꾸었다. 인도주의 활동, 인간화, 혁명투쟁, 해방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기독인을 순교자로 추서한다. 예수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신앙고백 차원의 순교에는 무관심하다.
14) WCC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한 입으로는 예수를 주(Lord)로 고백한다. 그러나 다른 한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한다.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를 회원교회들이 고백해야 할 신조, 곧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조를 고백문으로 천거하던 그 해(1990)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표방 문서를 발표했다.
15) WCC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indifferentism, latitudinarianism)을 추구하면서 복음주의자들을 앞세워 진리를 위협하는 ‘다른 복음’에 대한 교회의 경계심, 민감성을 갖지 못하게 한다. WCC에 들러리 서는 복음주의자들은 이단보다 더 위해(危害)하다.
3. 패러다임의 충돌, 신학충돌
WCC에 들어가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 단체가 복음적으로 전향하도록 하자는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진리 패러다임의 성격과 신학충돌을 고려하지 않은 오판이다.
역사적 기독교와 WCC 기독교는 서로 다른 신학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진리와 인식에 관련된 패러다임의 속성은 중간을 배제하며,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의 차이는 지동설과 천동설의 관계와 같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다른 패러다임을 포용하거나 다원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거부한다. 상대 패러다임의 이동, 전환, 포기를 요구한다.
부산총회를 기회로 이 단체가 복음적으로 변하기를 희망하는 신학자들의 기대는 공상(空想)에 지나지 않는다. 트베이트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경험’을 따라 배우라고 한다. 복음주의적인 한국교회가 변화하고 패러다임을 이동하여 WCC 에큐메니칼 신학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WCC에 가담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반기독교 운동의 들러리 역할을 했을 뿐, 이 단체의 신학 노선을 ‘쬐끔’이라도 복음적으로 바꾼 적이 없다. 비성경적 홍수의 물줄기를 가로막거나 중단시킨 전례가 없다. 이 단체의 신학이 피사의 사탑처럼 로마가톨릭주의,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진리상대주의, 성경불신주의로 기울어져도, 개신교회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이 뽑혀져도, 기독교의 중추적인 진리가 부정되어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다. WCC는 자신의 신학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신학적 소양을 갖춘 복음주의자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신학사상은 하루아침에 개조할 수 있거나 끌어당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한 통 속에 집어 넣고 섞을 수 있는 성질의 어떤 것이 아니다. 검정색 페인트 통에 한 숟갈의 흰색 페인트를 집어넣는다고 하여 통 안의 페인트가 희게 되지 않는다. 맑은 강물과 탁류의 강물이 합치면 탁류의 강이 된다.
역사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 합하면 자유주의 기독교가 된다. 유서 깊은 기독교와 WCC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 아니다. 두 그룹은 결합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사고구조, 패러다임,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다. 신학충돌이 불가피한 신념체계, 신앙이해, 진리관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앎이 무엇인가를 알아 갈수록 겸손해 진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고 상호보충적으로 타인을 수용하는 관용성은 필요하다. 자기의 약점을 변명, 미화, 게토화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와 WCC의 신학충돌은 중간을 배제하는 진리와 패러다임의 갈등이다.
WCC는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의 이동’을 재촉한다. 그리스도 구원 유일 신앙을 고백하는 복음주의 신앙, 개혁주의 신학을 버리고 WCC 신학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라고 재촉한다. 한국교회가 WCC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신학,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신학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WCC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장선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 교회들의 조종(弔鐘)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4. WCC와 영적 쓰나미
알렉산드리아의 정교회 감독 파르테니오스는 WCC 제7차 총회(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1991)의 개회 기조연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악의 신비,’ 악마, 사탄,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신비,‘ ’악령의 실재성‘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고 용감하게 말했다. WCC가 ‘무당신학자’ 정현경 교수(당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를 앞세워 총회 개회식 행사로 초혼제(招魂祭) 푸닥거리를 한 마당을 펼치던 자리였다.
사탄의 선교(mission)의 최대 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 또는 유일한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고, 이 같은 신앙고백의 터에 세워진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사탄의 선교는 WCC의 신학에 힘입어 유럽교회를 괴멸시키는 데 성공했고, 북미와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의 생명력을 앗아갔다.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사단의 지능은 신학자보다 훨씬 높다. 사단과 신학자가 의기투합하고, 복음주의자들이 맞장구쳐주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은 아주 쉽다.
성경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라고 가르친다. 성경이 이 같이 가르치는 데는 이에 상응하는 어떤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천둥이 치면 만물이 응하는 것처럼 함께 어울리다보면 남의 의견을 무의식 가운데 따라 가게 되고 동화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부화뇌동(附和雷同)과 사문난적(斯文亂賊: 이단적 언동으로 종교의 도를 어지럽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
WCC 부산총회는 영적 쓰나미이다. 한국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갈 핵 방사능 분진을 몰고 온다. 신앙무차별주의 교회일치운동의 위험을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한국교회로 하여금 포용주의, 다원주의를 조장한다. 진리에 대한 민감성을 잃게 한다. ‘모든 교회, 모든 기독교, 모든 종교는 다 똑 같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원수에게 대항할 힘을 뺀다. 근육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진리의 전신갑주를 취하지 못하게 한다. ‘주전자 안의 개구리’가 되게 한다. 진리의 터에 세워진 신앙고백공동체의 성문(城門)을 거짓 교사와 이단에게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5. WCC는 부산총회를 철회하라
한국교회는 전체로 보아 복음적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는 진리를 믿는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
WCC 총무 트베이트가 말한 대로 이 단체의 총회는 개최되는 지역 교회와 상호 교류하고 배우는 마당이다. WCC는 한국교회의 변화를 원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재촉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걸림돌인 복음주의 신앙, 개혁주의 신학을 버리라는 말이다. WCC의 15가지 신학적 특징들을 수용하여 새로운 교회모델로 삼으라고 한다.
자기 동네에 교회당이 들어서면 마을 사람들이 땅값 내려간다고 데모한다. 이웃집에서 날라 오는 독성 물질에 항의한다. 일조권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짝퉁 물건 제조자, 판매자, 구매자를 처벌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자신을 괴멸시키려고 달려드는 거대한 ‘쓰나미’ 행사에 침묵한다. 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재앙을 가져올 ‘짝퉁 기독교’ 부산총회 계획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주님의 신실한 신부는 WCC가 예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고,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까?. 한국 기독인들은 WCC를 향하여 부산총회를 철회하라고 요구함이 마땅해 보인다. 한국교회가 살아 있음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종교, 언론, 신앙,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생명을 위협하는 ‘짝퉁 기독교’ 행사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교회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사하여 바친 거액의 헌금이 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종교다원주의 따위의 반기독교적인 신학 계발에 사용된 것도 확인하고 따져볼 사안이다.
나팔은 분명한 소라를 낼 때만 가치를 가진다. 침묵은 인정, 동의를 뜻한다. WCC 부산총회 개최에 침묵하는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이 나바르의 마아가렛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개는 자기 주인이 공격을 받으면 짖는다. 만일 하나님의 진리가 공격을 받는 데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한다면 나는 개만도 못한 겁쟁이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구성원은 당당히 외칠 수 있다. "WCC는 부산총회를 철회하라."
WCC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가 WCC의 신학과 정체에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필자가 최근 출간한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본문과현장사이, 2012)는 WCC의 신학을 분석하고, 기독교와 WCC의 신학충돌을 상론한다. 반론이나 구체적인 학문적 논의는 이 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바란다. WCC의 신학을 정확히 알리고, 이 단체의 부산총회에 대한 심각을 깨닫게 하고, 항의나 반대의 신학적 논거를 정확히 밝힌다. WCC의 독성과 위험이 무엇인가를 밑바닥에서부터 여론이 형성되어 올라오도록 할 목적으로 저술했다
[최덕성은 한국복음주의신학회로부터 ‘신학자 대상’을 수상한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2000), 교회일치운동의 중요성을 다룬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2005), 1910-1960년의 한국교회사를 신앙고백사관으로 서술한 영서 KOREAN CHRISTIANITY(2008) 등 여러 권의 신학서들을 저술했다. 현재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저는 복음주의자이고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고 선포하는 목회자요 선교사입니다만,
이 글은 상당히 많은 부분 편견과 왜곡된 시각이 있어서 글을 보기가 불편합니다.
WCC와 관련된 많은 문서들과 다양한 주장들을 읽어보았지만 이 주장은 너무나 많이 왜곡된 시각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웹사이트에는 합동이나 고신 교단분들만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지 않을텐데 이 글을 대문에 걸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사료됩니다.
정 이런 글을 올려놓고 싶다면 반대되는 주장들도 함께 올려주셔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 안에서 건전한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되어야 하며 또 객관적이되 주님 중심의 주장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본 글이 문제가 있다면 독자가 문제점을 지적하여 반론을 제기하면 될 것이며 판단은 복음 중심으로 각자의 몫입니다.
그렇치가 않습니다....2. WCC의 신학의 문제점이라하면서 15가지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그건 분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입니다,,,하나의 예로 우리 통합측에선 동성애를 가르친적도 지지한적도 없습니다, 어떤 주장의 공평성을 이루기 위해선 위의 본 글을 올리신 그린필분께서 말씀하신대로 반대쪽 글도 올리신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어차피 엘더님께서 올리신 내용을 보아하니! WCC를 반대하는 최덕성님의 글을 원문 그대로 올리셨으니,,,이번에는 반대로 WCC를 찬성하고 있는 학자의 글도 공평하게 올려주셨으면 합니다,,,합동측이 교회 수는 많으나 교인 수는 통합이 더 많습니다,,,서로에게 오해가 없게해야합니다,
진리는 교단이나 성도의 대소에 관계가 없습니다.
누가 과연 하나님 중심이요 하나님 편이냐가 문제입니다.
깜찍이님이 찬성 쪽이시라면 그 주장을 올려 주시면 됩니다.
엘더님 감사합니다
최덕성교수님의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소위 종교다원주의는 사탄의 사상이라고 압니다
다른 복음(바울당시는 율법주의)을 전하는 자는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지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계18: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철야를 하고 오랜만에 들어오니 안타까워서 올립니다.
글을 쓰기 전에 Wcc에 대해서 좀 잘 알고 썼으면 좋겠네요.
말도 안되는 글을 썼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라는 거죠.
소경 코끼리 다리잡기식으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제발 WCC에 대해서 바로 아셨으면 합니다.
안타까움에 글을 올립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김바울님의 안타까우심처럼 우리도 안타까왔으면 좋겠습니다.
귀하는 WCC에 대하여 얼마나 정확히 아시는지 깨우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최성덕 교수님의 지적에 버금가는 설득력 있는 진실을 알려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 이후 어떤 김바울 님의 글도 없네요...교수님 감사합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이 세상에 자기의 왕국을 건설 할려고 하지요
온 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통치 하려고 합니다
세계연합, 평화, 전쟁을 없애고 빈곤문제를 해결 한다는 사람들의 귀에 단 말을 하면서 현혹하지요
이 사탄이 예수님에게도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현혹했지요
이 세상에 자기의 나라를 확장한 사탄이 재림하시는 우리 주님을 대항하다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임을 당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계19장)
장차 뜨거운 체질에 녹아버릴 이땅에 지상천국 운운하지 말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아~멘,
들내음 목사님 같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시는 분들만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동안 내려졌던 이 글이 다시 초기화면에 공지로 등장했군요.
반면 제가 엘더님의 제안대로 올려놓은 글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없어져 버렸구요.
귀를 닫고 눈을 가리고 오직 WCC 반대만을 외치는 여러분들의 그 열정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안타깝습니다.
WCC 가맹교단에 속한 성도들을 모두 사탄의 왕국에 속한 사람으로 보는 들내음님의 사고방식...
정말 무섭네요. 이러니 중세의 그 엄청난 마녀사냥이 가능했겠지요?
WCC 반대의 문제는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요, 감정의 문제인 것을 모르실리 없을텐데...허긴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WCC 반대운동의 본질과 허구성에 관해 제가 올린 글들은 메뉴 왼쪽 맨 아래 기타방에 있으니 수고스럽더라도 꼭 찾아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엘더님이 위 댓글에 이렇게 쓰셨지요.
"본 글이 문제가 있다면 독자가 문제점을 지적하여 반론을 제기하면 될 것이며 판단은 복음 중심으로 각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제가 반론을 제기했는데, 모두 임의 이동조치되었습니다.
이곳 운영진님들 제발 상식을 가지고 이 까페를 운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엘더님은 "판단은 복음중심으로 각자의 몫"이라고 하셨는데, 왜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도록 방해하셨는지.. 참 의아합니다.
여기에 제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갖다 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서 자기 논리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wcc의 본질은 외면하고 정치적 운운하시는 분들께.....,
오직 여호와만 바라는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일꾼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할렐루야~!
엘더님, 그렇게 자신있으시다면 WCC 반대운동의 정치적의도에 대해 지적한 글은 왜 사람들이 보지않은 머나먼 곳으로 옮겨버리셨나요?
하나님만 바란다는 의미가 이렇게 편견과 교단적 이해에 사로잡혀 형제교단을 사탄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집단이라고 비난하는 것인가요?
세속화와 물량주의, 번영신학에 물든 목회자들일수록 하나님의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를 더 부르짖더군요.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린필드님~,
누가 언제 형제 교단을 사탄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집단이라 비난했는지요?
wcc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뿐이요 경고하자는 취지의 분석일뿐 다른 아무것도 없다고 여깁니다,
최교수님의 객관적이고도 논리 정연한 비판에 대하여 조목 조목 반박해 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WCC 따라가면 교회 다죽는다는 말 자체가 그런 의미 아닌가요? 누가 들어도 그렇게 느낄 겁니다.
이미 제가 올린 글들에 여기 최교수님이 제시한 문제들에 대한 모든 답이 하나도 빠짐없이 조목 조목 다 들어 있습니다.
최교수님의 비판은 객관적이 아니라 지극히 편향된 자료를 기반으로 근본주의적인 시각에서 한 것일 뿐이죠.
가서 한 번 정독해 보시지요...
저는 아무 글이나 읽지 않습니다.
편향된 사고로 접근하는 류의 글들을 읽을 가치가 있을까요?
엘더님이 읽으시는 글들은 모두 객관적이고 다른 시각에서 쓴 글들은 모두 편향적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조목조목 반박해 보라고 하셨다가... 그럼 그 반박한 내용을 읽어보시라고 했더니 아무 글이나 읽지 않으신다구요?
그 글은 아무 글이나가 아닙니다. 적어도 그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과 연구업적을 가진 분들이 쓴 글이고, 충분한 사료와 역사적 고증을 거쳐 쓴 글들입니다.
결국 엘더님은 자신의 사고의 틀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분이시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저는 일부러 반대되는 주장들을 읽어보는데...
저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인지라 WCC라는 그 조직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으나
어쩐지 이것은 하늘나라 복음이 아니고 이 세상에 건설할려고 하는 사탄의 왕국건설사무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물론 그 속에도 하나님의 성도가 있겠지요
사회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헌된 논쟁말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때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실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때에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은 모두 사라저 버릴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의 영광을 제시 하고(일시적인
우리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한 평생을 오직 주님의 복음진리위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시는 엘더님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