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바벨론 왕이 세운 총독 그달리야에관한 내용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과거앗수르의 강제 이주 정책이 실패한 것을 거울삼아 지나친 강압 정치를 지양하는 대신 식민지 국가에 남아 있던 자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온건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바벨론 왕은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를 유다의 총독으로 삼았습니다. 그달리야의 조부인 사반은 서기관 출신으로 요시야 왕 때에 큰 명성을 떨친 사람이었으며, 그의 부친 아히감도 요시야 왕의 사절단으로 선지자 이사야를 방문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달리야는 명문가 출신으로 유다 백성들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뿐만 아니라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사람이었으며,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라 바벨론의 유화 정책에도 순응하였던 사람이었으므로 바벨론 왕은 그를 유다 총독의 적임자로 판단하여 임명했습니다.
한편 그달리야가 유다의 총독으로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들, 즉 이스마엘과 요하난과 스라야와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미스바에 있는 그달리야를 찾아갔습니다. 예레미야40장11~12절을 보면 이들은 바벨론 군사의 눈을 피해 유다 각지에 숨어 지내던유다의 상류 계층들로, 특별히 반바벨론적 성향을 가진 자들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과거 바벨론의 제4차 침공당시 예루살렘 함락이 임박하자 시드기야와 더불어 도망하다가 흩어진 자들로 보입니다. 그달리야는 그들을 앞에 세워놓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평안할 것’이라고 회유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의 뜻이라기 보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마엘과 그의 부하 열 명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유다의 상류층 인사들은 그달리야의 말에 크게 반발한 것이며, 그들이 그달리야 앞으로 나아간 것은 바벨론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달리야는 유다의 독립이 아니라, 바벨론에게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였고, 게다가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은 그달리야가 자신을 왕처럼 여긴다고 생각함으로그들은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왕족 중 하나였던이스마엘이 열 명의 부하와 함께 그를살해하고, 그와 더불어 그달리야를 따르는 유다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마저도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이스마엘과 일부의 사람만이 아니라, 바벨론이 두려워 애굽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장관들임을 밝힌 것으로 보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달리야가 제시한 친바벨론 정책을 반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오늘 본문에는 유다의 총독 그달리야가 살해당하는 과정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달리야는 그의 조부와 부친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겨진 유다 사람들도 바벨론에 순응할 것을 촉구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달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을 비롯한 유다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달리야를 살해할 뿐만 아니라,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를 기꺼이 순응해야 했지만, 끝까지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영적인 경우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곧 하나님의 선하신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고 그 징계라 할지라도 선하게 받는 자가 결국 큰 그릇이 되어 본인은 물론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귀한 종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어떠한 이유이든 우리를 낮추시며 징계하실 때 이를 선한 마음으로 받아 순종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낮추심을 통해 더욱 연단받고 성숙한 성도로 변화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귀히 쓰임 받는 축복과 영광을 누려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