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을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년 9월 5일生)는
<가슴의식>으로 이해 하려 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사>를 집필하기 위해 한국에 거주하면서
<전적지 탐사, 자료 검색, 기억의 수집>에 열쭝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에 대한
두 가지 단상을 언급합니다.
<ㄱ. 양키보다 usa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
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상입니다.
이 두 가지 단상中
<ㄴ>을
<마음에 대한 커밍스의 인지 또는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밍스는
<마음>을
<사고의 주무기관적 특징이거나
생각의
또다른 형식>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우리 가운데 <마음>을 얘기하는 경우에도
커밍스가 지적한 <마음의 정체>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습니다.
2.
전에
<마음은
(바닷) 물고기에게 있어서의 바다와 같다>고
여러 번 끄적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있는 자리(위치, 좌표)와 소유권>에 관련해서죠.
바닷물고기의 마음(바다)은
머금고 있는 바다와
제 몸을 에워싼 바다로 있습니다.
그러나
머금은 바다가
바다인 것 같지 않고,
머금은 바다와 에워싼 바다가
격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죠.
<바다의 자리,
소유권이 물고기에 의해서
통제되고,
그 관계가 영구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바다(시공, 마음)도
그러한 자리에 놓여 있을 겁니다.
3.
정치 유전학에서는
<유전자는
형질과 성질을 모두 포함한다>고 그럽니다.
이 단정을 전부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단정이 서 있는 위치는 타당성이 있어 뵈죠.
일반적으로
현재(오늘)의 위치는
<어제와
내일 사이(절박한 틈)>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내일을 향해서만 직진하는
절대적 포괄적 질서>로 되어 있죠.
<나(사람)의 자리>도
그러한 시간적 도표 위에 찰라적으로
표시 되는 오늘처럼
역사(時空)로부터 고립(구획)당해 있습니다.
4.
이러한
<존재와 상황(자연)이해>는
<백색적 인지태>입니다.
<내일은 어제가
미리 밟고 간 자리다.
오늘은 내일 다음의
어제로 가는 길이다>는 말이
말장난(글씨의 유희)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물고기가 머금은 바다는
물고기를 머금은 바다다>는 말도
언어적 유희가 아니죠.
이게
<사람(마음)에 대한 정치 과학적 고찰>을 위한
기본태 입니다.
5.
과거
ebs에서 방영한
<마음의 과학>을 기준으로 <마음>에 대해서
얘기 하는 것은
<커밍스의 오해>를 바탕으로
그것을 얘기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정체>를
<머금은 바다>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껏 그렇게 바다를 머금은 물고기들의
집단적 동질성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해석하려
대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좆까는 소리죠.
6.
이와 마찬가지로
<단위 나라가
자기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서 쥐어짜는 것이
전략이 아니다.
전략이 단위 나라를 만들어 내거나
해체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전략>은
<유전자의 계략>이라는 본래 자리에
앉게 되죠.
그리고
<마음은 내가 머금은 것이 아니다.
마음이 나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대가리>로
이러한
<마음 철학 또는 정치 유전학> 주변을
배회 하는 것은
<헛된 욕심>입니다.
백날 돌아댕겨 봐야
<커밍스와 ebs의 마음과학> 그 틀을 못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7.
그런 까닭에
<마음이 머금은 사람(나)
전략이 머금은 오늘(단위 나라)>이라는
초급 산수로부터
마음 철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순설 것 같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겨 나오면
<무주공산>이 아니죠.
이미 세상은
규칙(질서)과 시스템으로 물샐 틈 없이 짜여지고
그것들은 자기 무게 및 이력에 비례한 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세상의 규칙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70억분의 1 가량>입니다.
<절망적 생명무게(존재감)>죠.
<백색 과학과 산수>로 해석하면
이러합니다.
하지만
<마음 철학적인 해석>은
그와는 아주 딴판입니다.
8.
단위 나라가 전략의 주체가 못 되듯
개체생명(나)이 마음의 주체도 아니죠.
전략이 단위 나라의
존립을 주관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생명 개체들의 출현,
소멸,
기능 등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위치에서
<생명개체를 느끼는(감각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개체생명이
마음과 자기와의 거리 및 좌표를 읽는
위치는
<밖의 내부화>입니다.
<머금은 마음(체화된 세계)>로써죠.
아마
이 관점이
매우 중요 할 겁니다.
<인내천(사람철학 또는 한울철학)>의 본 뜻이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9.
<내가 머금은 바다(안)와
그러한 내가 수용 당해 있는 바다는 동일한 물질(하나)이다>는 것이죠.
따라서
<天卽人, 天卽心, 心卽人>으로
<人乃天>의 재해석이 가능합니다.
마음의 자리(좌표),
소유와 관련해서
동양적
정치적 해석이 이와 같으므로
마음은
<개체의 특질적인 존재계략, 집단무의식> 등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정치사상(유전메커니즘과 자연이 공모한 계략)>으로
풀이해 나가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조선반도 민중적 세계관에 기초한
조선민족주의는
결국
이러한
동양적(순천적)자리가
자궁터 일 거 같습니다.
추신 / 날씨가 제법 쌀쌀 합니다. 이곳 수은주가 ㅡ18도로 찍히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허드랫물이 얼어서 샘에서 물을 길어다가 설거지, 세면을 당분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06년 10월부터 끄적거려놓은 글질을 정리하는 과정인데... 어떤 사안을 거론할 때와 달리 정리 과정에서 <불편한 심기>를 표시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군요. 이미 지난 시절에 지껄였던 것을 이것저것 떼어내고 하는게 정리 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문제가 안 됐는데, 이제 그게 문제로 된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때는 안 읽어 봐서 모르겠고, 이제 보니까 개소리다>는 뜻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글질을 하기 위해서 자료를 검색하고, 모으고 하는 과정을 갖지 않습니다. 하루 고작 3시간 30분~ 4시간 컴퓨터를 켜고 앉아서 배부른 글지랄을 하는 것도 감지덕지인 내(개만도 못한 천민)가 그렇게 한가한 시간을 갖을 수 없고...설령 그러려고 자료를 검색한다고 해도 <자료들이 지껄이고 있는 소리가 뭔 개소린지?>알아듣지 못하는 탓입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이후 <책, 글, 말>을 읽고, 듣지 않았습니다. <남이 그려놓은 금(선)을 따라서 사는 거는 사는게 아니라 흉내내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흉내내는 일생을 살으라고 조상들이 그 온갖 지랄을 다해가면서 나를 이 세상에 이렇게 좆같이 까질러 놓았을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껄이는 소리들이
다소
황당하고
아무 근거도 없는 것 같고,
개소리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 합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지껄이는 미친놈도 다 있더라>고 지나치거나
아예
읽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국
2006년 10월 부터
지겹게 끄적거려 놓은
내 글의 총화는
<죄다 (미/친) 개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