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실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0-22).”
이 말씀은 앞의 17절에 있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 말씀입니다.
계명과 율법의 ‘완성’은 ‘완벽하게’ 지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올바르게’ 지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이라는 말은,
겉으로만 의로운 척 하는 것, 즉 ‘위선’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는 말씀은, “위선자들처럼
살지 마라.”, 즉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같은 위선자들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인하지 마라.”
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살인죄라고 가르치십니다.
“성을 내다, 바보라고 하다, 멍청이라고 하다.” 라는 말은,
실제로 형제를 죽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는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음속의 그 미움이 분노와 모욕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재판, 최고의회, 불붙는 지옥’은
하느님의 처벌을 ‘점층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각각의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아니라......
세 가지 다 정신적인 살인이고,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죄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앞의 말씀은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말씀이고, 지금 이 말씀은
‘누군가’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내가’ 화가 나 있는 상황만 생각하고, 형제가 나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고, 나를
미워하고 있고,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화’만 잘 다스리면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화가 나 있는 ‘그 사람의 화’도 잘 풀어 주어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나거든’이라는 말 때문에, “생각이 안 나면,
또는 모르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는 것인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내가 모른다고 해서, 또 내가 잊어버렸다고 해서,
‘그의 화’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고, 그를 화나게 만든 나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항상 잘 성찰해야 합니다.
양심성찰 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한 것이 아닌데, 그가 오해를 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오해를 풀어 주는 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화해’는 나의 부족함을 내가 먼저 인정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내가 그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만 생각하는데, ‘용서를 청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평생 용서할 일만 있고 용서받을 일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는 말씀은,
이웃 사랑 없는 하느님 사랑은 위선이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동시에, 똑같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5-26).”
이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회개는 ‘바로 지금’ 해야 한다.
나중으로 미루다가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심판대에 선 다음에
후회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회개와 보속은 철저하게,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한다.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라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심판을 받기 위해서 법정으로 가는 도중”입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그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전부 다
‘벌을 받기 위한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결과가 주님의 칭찬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인 사람도 있고,
처벌과 멸망인 사람도 있는데, 어떤 쪽이 될지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한 닢을 갚다.” 라는 말은, 연옥에서 보속을
완전히 마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지옥은 보속을 하는 곳이 아니라 처벌을 받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