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수요일 - 홀수 해
창세기 41,55-57; 42,5-7ㄱ.17-23ㄴ 마태오 10,1-7
2023. 7. 12. (성경-예수님의 얼굴을 닦은) 베로니카
세상에서 일이 실행되는 순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삶을 누군가가 조종하거나 다스린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그 순간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우리가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만, 그 마음의 편함과는 다르게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는 굽은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느님께서 나의 삶에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불만을 담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을 표현하는 것은 사람의 자유이니까, 바꾸겠다고 덤빌 수는 없지만, 정말로 올바른 것인지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 우리는 판단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만물의 주관자이시고 당신의 뜻대로 다스리신다고 우리가 신앙에서는 인정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그렇게 인정하는지 생각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창세기의 말씀은 과거의 기록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대로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일을 기록하면서, 그 삶에 하느님의 뜻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성경을 쓴 사람의 시선을 우리가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 말씀에서 이스라엘/야곱의 10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일어난 일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보겠습니까? 형제들의 시기에 따라서 이집트로 팔려간 것이 과연 하느님의 자비라고 생각할까요? 창세기의 기록은 하느님의 자비로 적습니다. 삶에 일어난 힘겨웠던 일을 하느님의 자비로 기록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고 얼마나 많이 삶에 관하여 반성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마테오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서, 사도로 삼으신 내용을 전합니다.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시면서도 제한사항을 두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여길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째서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쓴 내용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고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는 삶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올바르게 삶의 지혜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