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피노가 있는데, 무슨 이유로 로마가 태어났을까. 나만 궁금한가? 이미 작은 사이즈 그란투리스모 자리에 포르토피노가 피어 있다. 컨버터블이긴 하지만, 루프만 덮으면 쿠페 안 부러운 매끄러운 라인을 자랑한다. 페라리 GT인데 오픈톱이라고 보디 강성이 부족할 리도 없고. 그런데 로마가 포르토피노 옆자리에 싹을 틔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 찾아가 로마를 직접 만나 물었다. 용인 스피드웨이 트랙 주행과 함께 도로 주행까지 알차게 경험할 예정이었다.
모니터 속 사진으로만 봤던 로마, 환상 속 예술작품 같던 로마가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서 있다. 분명한 실체다. 페라리 디자인 총괄 플라비오 만조니는 과거 모델을 답습하길 꺼린다. 로마는 페라리 로고를 가린다면 페라리 모델이란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아쉬움 없이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모습을 살짝 옆에서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콧대와 야무진 입술이 돋보인다. 엔진이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이기도 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체크무늬로 채웠는데, 옛날 옛적 250 GT가 연상된다. 헤드램프는 얇은 LED 라인으로 빛난다. 눈매와 뾰족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불사조가 떠오른다. 달려 나가기보다 날아오를 것만 같은 감각이다. 동근 테일램프는 찾아볼 수 없다. 날 세운 테일램프에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얇은 LED 라인을 그었다. 간단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형상이다.
인테리어도 완전히 새롭다. 페라리의 다음 세대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페라리가 디지털 시대를 제대로 맞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라리는 로마에 최신 HMI 시스템을 구축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시동 버튼이 터치 방식이라는 점. 메인 모니터 크기는 무려 16인치다. 동그란 액자를 박아 넣은 듯한 페라리의 시그니처 계기판은 사라졌다. 대신 맑고 밝은 디스플레이가 자리했다. 메인 디스플레이는 무려 16인치다. 형상뿐만 아니라 그래픽도 태블릿 PC를 닮았다. 금세 익숙해질 듯했다. 센터 터널을 따라 눕혀진 디스플레이 자세가 보기에도 안정적이다. 조작하기에도 편하다. 스티어링휠 오른쪽에 달린 터치패드를 사용해 메인 디스플레이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마네티노 스위치에서 기본 주행 모드를 고를 때는 여느 페라리와 달리 컴포트 모드를 고르면 된다. 페라리 모델들은 대게 스포츠 모드가 기본인 점을 생각하면 로마의 온화한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아늑하게 분리되었다.
시동을 걸자 잠자던 불사조가 깨어났다. 배기 사운드의 진동이 운전자의 온몸을 울린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구슬프고 감미로운 절규가 들려온다. 속도보다 분위기에 집중하게 된다. 로마에 올라탄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페라리는 이탈리아어 표현 ‘라 누오바 돌체 비타(새로운 달콤한 인생)’라는 말로 로마의 성격을 이야기한다. 뾰족하고 매서운 움직임과 속도를 경험하면 ‘달콤’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포르토피노보다 움직임이 확실히 여유롭고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것은 확실하다. 특히 코너에서 롤 억제 능력이 한 수 위인 듯하다. 정말이지 달콤살벌하다. 조향 감각은 친절하다. 정확하고 재빠르지만, 스티어링휠 조작감이 부담스럽게 묵직하지 않다. 공도에서 유턴을 할 때는 작은 차처럼 돌아 나가면서도 운전자의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조금만 조향해도 가뿐히 선회한다. 컴포트 모드로 주행 시 과속방지턱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는다. 시속 15km 정도로 움직인다면 웬만한 과속방지턱은 가뿐하게 넘을 수 있다. 미처 보지 못해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운전자 가슴이 찢어질 염려는 없을 듯하다. 일상용으로 타기에 부담스러워 슈퍼카를 꺼리던 사람에게는 정말로 반가운 소식일 듯하다. 비상등 디자인뿐만 아니라, 버튼은 누르는 감각조차 부드럽다. 전동식 시트는 사이드 볼스터까지 센터 디스플레이로 조절할 수 있다. 이곳저곳에 그란투리스모라서 경험할 수 있는 배려가 가득하다. 페라리 로마의 고객 70%가 페라리를 처음 손에 넣는 고객이라고 한다. 포로토피노와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갖추고서 등장한 페라리 로마. 타고난 세일즈맨 엔초 페라리가 미소 지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