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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성공적인 교회교육을 위한 아홉가지 수칙
반목회는 전적으로 교사에게 달렸다. 특히 교사는 반목회에 있어서 교육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 개발 및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제는 교회적으로 반목회의 교육적 측면이 학교 교육보다 앞서갈 정도로 연구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원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개화 초기에 기독교는 교육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심지어 한국 근대사의 뿌리는 기독교 교육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만큼 교회는 기독교 교육을 통해서 유수한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 교육은 학교 교육 시스템이나 방법론에 비하면 저조하기 이를 데 없다. 오늘날의 교회학교는 19세기 교육 환경에서, 20세기 교육 자료로, 21세기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교회 교육의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교회 교육은 그 만큼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말이다.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교육 현실이 너무나 열악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열악한 교육 실정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려운 교육 환경이라도 교사들이 또 다른 목회자로서 모두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면 놀라운 교육의 효과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문제는 좋은 교육 환경보다는 소명감이 분명한 교사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교사가 취해야 할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아홉가지 수칙을 제안 하려고 한다.
■ 제1수칙: 철저히 공과를 준비하라.
학교 교사들은 그 분야의 전공자로서 방학 때마다 재교육을 받는다. 그들은 철저히 교안을 준비해서 결재를 받는 등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일주일에 한 시간 가르치는 데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다면 교사의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학교 교사는 그 주일에 가르칠 공과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교회학교 교육의 성패는 교사의 공과 준비 여부에 달려있다. 가능하면 공과 내용을 요약하여 숙지한 후 학생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말씀을 그들의 가슴에 심어줄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공과를 준비해야 한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본문을 송두리째 외우시는 경우를 봤다. 물론 모든 교사가 공과의 내용을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주요 내용은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공과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더구나 교사가 공과 시간에 공과 책에 있는 내용에 매여 시선을 학생의 눈에 두지 못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사들이 명심 할 것은 공과 시간은 단순히 성경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먹이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 제2수칙: 매일 학생을 위해서 기도하라.
반목회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그 나머지 시간은 모두 영적인 교통으로 이루어지는 특수 목회나 만찬가지다. 그러기에 매일 학생을 위한 기도가 없다면 그 가르침은 생명력이 없는 지식 전달에 불과하다. 교사들은 주일 아침이라도 새벽에 나가서 가르침의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 목회자가 주일 설교를 앞두고 늦잠이나 자고 있겠는가? 모든 목회자들은 전쟁을 치르는 마음으로 새벽부터 주일 설교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목회를 담당하는 교사들도 그 날 가르칠 말슴을 위해서 새벽부터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기도로 준비하지 못한 공과 내용은 차라리 가르치기를 포기하는 것이 백 번 낫다. 반목회에 있어서 기도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목회를 위한 교사들의 기도는 주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사의 기도는 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기도가 없는 가르침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가르침에 기도가 없으면 교사의 말은 공중에 떠도는 소리에 불과하다. 아이들 앞에서 아무리 외치고 떠들어도 그들의 마음을 바굴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능력 있는 교사가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 제3수칙: 교사의 영성관리에 힘을 쏟으라.
교사의 영성 수준은 학생의 영혼의 질을 조우한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교사가 깨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 였다. 그런데도 말씀을 피해 다시스 행 q를 타고 말았다. 항해 도중에도 배 밑에 내려가 달콤한 잠을 즐기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선지자가 세속의 배를 타고 도주하다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거기에다 배 밑으로 내려가 귀를 틀어막고 잠만 자고 있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가! 오늘날 교회학교에도 현대판 요나가 많이 있다.
교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아이는 영적으로 죽는다. 그러나 교사가 영적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아이도 깨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사가 정기적인 기도 생활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다. 교사는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에 실패하면 교사의 영성은 시들어 버린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사의 영성이다! 교사들이 항상 성령 충만할 수는 없다. 교사들도 때때로 넘어지거나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라! 교사의 영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많은 영혼이 같이 스러지고 말 것이다.
■ 제4수칙: 교사의 비전을 잃지 말라.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피신해 가면서도 백성을 위해 복을 빌었다.(시편3편). 그것이 바로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이었다. 다윗은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불구하고 지도자로서 백성을 위해 복을 빌었다. 다윗은 백성을 자기 목숨과 바꿀 정도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이는 다윗에게 있어서 백성이 최상의 비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지도자로서 자기 백성에 만족했다. 심지어 자기가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백성의 안전을 생각하고 그들의 장래를 염려할 정도로 백성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는 교인으로 만족해야 하고, 교사는 학생으로 만족해야 한다.
목회자가 교인에게 비전을 두지 않고 물질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솔직하게 목회에 있어서 목회자의 마음이 분산되면 목회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반목회는 할 일을 다 하고 남은 시간에 일하는 부스러기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 영혼을 돌보라고 세워주신 장년 목회와 동등한 사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목회자의 정신으로 어린 영혼에 마음을 the아 부어 반목회의 성공을 위해 힘써야 한다. 적어도 교사는 학생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위해 목숨 걸고 복을 빌 정도가 되어야 한다. 교사의 비전은 주어진 영혼을 바로 세우는데 있다.
■ 제5수칙: 설교자의 심정을 가지라
어떤 목사님이 설교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이런 말씀을 한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설교를 약 이십 년 정도 하니까 이제야 설교가 무엇인지 알겠다.” 또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강의하신 한 교수님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잠 못 이루면서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고백을 들은 기억이 난다. 나 역시 설교 때문에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셨던 선배 목사님들처럼 때로는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설교를 배워왔다. 지금도 나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설교하는 일이라는 것을 늘 실감한다. 주일 예배를 설교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설교자의 심정은 마치 전쟁터에 출전하러 나가는 전사의 심정과 같다.
전쟁터에서는 생사의 문제가 좌우된다. 죽느냐 사느냐가 전투의 순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설교하는 시간은 말씀의 권세로 사탄을 제압하느냐 아니면 성도들을 사탄에게 빼앗기느냐가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소천하신 박윤선 박사님께서 강의 시간에 늘 강조하신 말씀은 신학생은 공부하다 죽을 정도로 공부하고, 목사는 강단에서 죽을 각오로 설교하라고 말씀하신 듯하다. 교사들이 설교자의 심정을 갖고 반목호에 임해야 한다. 반목회는 교회의 사역 중에 한쪽 구석에 밀려 있는 찌꺼기 사역이 아니다. 반목회는 분명 교사의 목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공과를 준비할 때부터 몸부림을 쳐야 하며, 가르칠 때는 진액을 쏟아 부어야 한다. 매 주일마다 학생들의 영혼에 은혜의 생수를 풍서하게 공급해 줘야 한다.
■ 제6수칙: 본문에서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으라.
설교자의 생명은 그날 설교 본문에서 설교자가 먼저 은혜를 받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설교자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무런 느낌과 감동이 없이 본문의 내용이 주는 교훈을 설교한다면 그것처럼 메마른 설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설교는 아무런 은혜를 끼치지 못한다. 설교자가 본문에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설교는 아무리 화려한 지식과 멋진 논리를 동원해도 영적인 감동과 은혜가 없다. 그러나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설교자가 회개의 눈물과 결단으로 준비한다거나,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한다.
살아있는 설교는 설교자가 먼저 은혜 받은 설교다. 마찬가지로 교사들은 공과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본문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 교사가 본문에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본문을 읽고 완전히 소화해야 한다. 강해 설교에 능한 교계의 어떤 목사님은 본문을 50번 이상 읽고 설교를 준비하신다고 하니 그 말씀에 생명력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광과에 앞서 먼저 본문 말씀을 최소한 5번 이상 읽고 나서 그르치면 더없이 큰 은혜를 주실 것이다. 교사들이 공과를 가르칠 때 성경본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 제7수칙: 본을 보여라.
한 번은 초등하교 5학년쯤 되는 교회의 한 어린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입을 비쭉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인즉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평소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밥을 먹을 때 편식하면 안 된다고 입이 닳도록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에서 선생님이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는데 편식하지 말라고 그렇게 가르쳐 왔던 선생님이 김 하나에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남은 반찬은 손도 안 대고 버리더란다. 문제는 그날 내내 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수군댔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반찬을 하나도 먹지도 않고 우리한테는 편식하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같은 어른으로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그 말씀에 힘을 잃어 가는 것을 생각할 때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일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교사들이 가르친 대로 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시간에 맞춰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자세 등에서도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학생들의 마음은 이미 분산되고 만다. 교사는 범사에 본을 보여야 한다.
■ 제8수칙: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라.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시청각 자료보다 더 좋은 교재가 없다. 사라의 기억 능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통계가 있다. 소리 내 읽은 것의 10퍼센트 정도를 기억할 수 있고, 들은 것의 20퍼센트, 본 것의 30퍼센트, 보고들은 것의 50퍼센트, 소리 내 읽고 보고들은 것의 70퍼센트, 그리고 스스로 해 본 것의 90퍼센트 정도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면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훌씬 더 큰 효과를 거두 수 있다. 요즈음은 각 교단이나 선교 단체에서 개발해 낸 교재가 많아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좋은 시청각 교재 및 보조 교재를 사용할 수 있다. 교회적으로 준비할 시청각 자료들은 OHP, 슬라이드, 빔 프로젝트,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등이 있다.
영국의 한 교회에서 교회학교의 교육 시스템을 보니까 컴퓨터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교육 장비가 좋아도 아이들이 없는 상활이니 불행한 일이다. 우리도 그런 시대가 오기 전에 아이들을 부지런히 훈련시키고 교회 학교의 부흥을 꾀해야 한다. 따라서 교사들은 교육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시청각 자료를 잘 활용해야 한다.
■ 제9수칙: 교사의 권위를 지켜라
한국 개화기 무렵의 기독교는 교육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 구국 운동에 앞장선 수많은 선혈들이 교회 교육을 통해서 애국정신과 이웃 사랑의 정신을 배웠고, 개화에 앞장선 선구자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이처럼 초기 기독교인들이 교회학교 교육을 해서 사회 개화와 변혁 운동을 주도했으니 한국 근대사에서 교회 교육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회 교육은 학교 교육을 따라 갈 길이 없다. 지금 학교에서는 각 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비디오테이프로 공부하며, 인터넷으로 세계를 오가면서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교회 교육의 현실을 보면 아직도 옛날 방식 그대로다. 솔직히 중형 이상의 교회에서도 컴퓨터는커녕 제대로 교육 시설조차 갖춘 교회가 그리 많지 않으니 교회교육이 미래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교육 시설이나 환경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교사가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르친다면 교육 효과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교사들이 권위를 가져야 한다. 반목회에 있어서 교사의 권위는 외형에 있지 않다. 교사의 권위는 말씀이 주는 권위요, 거룩한 삶에서 스며져 나오는 영적인 권위다.
송삼용/'교사는 또다른 목회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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