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인이 천황절대주의자 하는 게 왜 나쁜가. 그리고 국수주의가 어째서 나쁜가."(박정희)
"그것은 고루한 생각으로서 세계 평화에 해독이 된다."(황용주)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글 쓰는 놈들은 믿을 수 없다. 일본이 망한 게 뭐꼬. 지금 잘해 나가고 있지 않나. 역사를 바로 봐야 해. 패전 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은 일어서지 않았나."(박정희)
"국수주의자들이 망친 일본을 자유주의자들이 일으켜 세운 거다."(황용주)
"자유주의? 자유주의 갖고 뭐가 돼. 국수주의자들의 기백이 오늘의 일본을 만든 거야. 우리는 그 기백을 배워야 하네."(박정희)
- 1991년 <월간조선> 7월호에 실린 박정희와 그의 친구인 부산일보 황용주 주필의 대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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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정희는 일본의 천황 숭배나 국수주의에 큰 호감을 느꼈음.
그러니 사범학교 교사 자리를 때려치우고 자진해서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했던 것임.
따라서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비난해 봤자, 그는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을 것임.
오히려 "친일이 뭐가 나쁘냐?"라고 항변할 것.
또한 박정희는 장면 정부의 무능함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저 권력욕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임.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은 모두 3차례에 걸쳐 쿠데타 시도를 했고 결정적으로 장면 내각 출범 18일 후 부터 쿠데타 모의가 시작함. 장면 무능 때문이라는 말은 쿠데타 성공 후 명분 쌓기에 불과...
1. 우선 박정희는 51년에 4월 15일 대령으로 승진해서 52년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으로 있으면서 구체적인 쿠데타 모의에 참가 한 적이 있다. 아리너니칼하게도 이때의 쿠데타는 "장면 박사를 추대, 무력혁명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장면의 반대로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출처-선우종원 [격랑 80년 선우종원 회고록], 인물연구소 1998 153-155쪽 ; 한용운[군부의 제도적 성장과 정치적 행동주의] ; 한배호 편[한국현대정치론 1:제 1공화국의 국가형성 정차과정] 나남 1990 271-272쪽)
2. 박정희는 4,19로 이승만정권이 타도되기 전에 60년 5월 8일을 거사예정일로 하는 쿠데타를 준비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4,19혁명이 일어남으로써 이 계획이 좌절되고 만다. 그리고 자기의 쿠데타를 좌절시킨 4.19에 대해 무척이나 화를 내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박정희는 황용주와의 대화에서 4.19직전 학생시위 때엔 "에이, 술맛 안 난다"고 짜증을 냈었고 이승만의 하야 후엔 "아이고 학생놈들 때문에 다 글렀다"고 분개했던 것이다.
(출처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혁명전야] 조선일보사 1998 165쪽)
3.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장면내각이 출범한 1960년 8월 23일로 부터 겨우 18일만에 구체적인 쿠데타 모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국방장관 현석호와의 면담이 실패로 돌아간 9월 10일 저녁 육사 8기 동기생 11명은 충무장이라는 음식점에서 쿠데타를 결의 했다. 이들은 총무 김종필, 정보 김형욱, 인사 오치성, 작전 옥창호, 경제 김동환, 사법 길재호 등으로 업무분담까지 하였다
(출처-한용원 [한국의 군부정치] 대왕사 1998 203-204쪽)
"[군사혁명비사]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집권한 지 18일 만에 정권 전복의 모의가 시작되고 있다. 집권 18일 만에 대체 무엇을 어쩌자는 셈이었을까? 그 동안에 부패와 무능이 나타나고 있었던가? 아니면 부패와 무능을 미리 예언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가? 세상이 이런 모순이 없다. 전부터 정권을 쥐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지닌 증거는 되어도 우리가 잘못한 때문에 쿠데타를 시작했다는 논리적 귀결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여튼 장 정권이 무능 부패했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공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출처-정대철 [장면은 왜 수녀원에 숨어 있었나] 동아일보사 1997 82쪽)
조갑제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의하면 박정희는 사범학교 교사 시절에 걸핏하면 "선생질 못 해먹겠다.", "선생질 때려치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함. 이건 박정희가 교사일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박정희가 내심 동경하고 있던 '힘과 권력'을 교사 정도로는 도저히 누릴 수 없었기에 가졌던 감정인 듯 함. 말하자면 박정희는 오래 전부터 '힘과 권력'을 간절히 원하던 인물이었음.
첫댓글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한자였고 대통령 자리가 아닌
일본이 인정한 한국통치한 총독느낌을
가지고 싶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