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업적
고려 태조 왕건은 만월대에 터를 닦고 궁궐을 지었습니다. 아버지 왕융이 일찍이 터를 넓게 잡아 36채의 집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ㄷ을 돌보아 준 덕으로, 그의 아들 왕건은 임금이 되어 궁궐 터를 닦게 된 것입니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호국 신앙으로 삼아서 각 곳에 절을 세웠으며, 신라의 경순왕을 맞아 평화적으로 통일했습니다. 또한 후백제의 견훤도 결국은 고려에 귀순해 옴으로써 후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태조는 맏딸을 귀순해 온 경순왕의 아내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궁궐은 태조의 후궁들로 꽃밭을 이루었습니다. 목포 여자인 장화왕후를 비롯하여 신명왕후, 신정왕후, 장덕왕후 등 부인이 6명이나 되었고 후궁은 무려 24명이나 되었습니다.
태조는 <정계>와 <계백 요서>(8권)을 지어 반포하였으나, 지금까지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940년, 태조는 공신들에게 토지와 임야를 나누어 주는 '역분전법'을 실시했습니다.
태조는 '훈요 십조'를 유훈으로 남겨 놓고, 943년 5월에 67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훈요 십조는 고려의 역대 왕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거울이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불교를 숭상하라.
둘째, 도선의 풍수 지리설을 존중하라.
셋째, 왕위는 맏아들에게 물려 주어야 하며, 그가 어리석을 경우에는 덕이 있는 자로 정하라.
넷째, 팔관회와 연등회를 지극 정성으로 행하라.
다섯째, 서경(평양)을 중요하게 여겨라.
여섯째, 거란은 야만족이니만큼 멀리 하라.
일곱째, 군신은 백성를 사랑하고 올바른 정치를 펴라.
여덟째,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라.
(차령이남과 금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거슬리게 달리고 있으니, 인심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저
아랫골 사람들이 조정에 참여하고 왕족과 혼인하여 국정을 잡게 되면 혹은 국가를 변란케 하거
나 혹은 통합의 원한을 품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 주의하도록 하라)
아홉째, 관리들의 상과 벌을 공정하게 하라.
열번째, 군신은 덕을 쌓는 일에 힘쓰라.
(청솔역사교육연구회 엮음 '이야기 한국사'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