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나를 따라라 ” 14.06.07
교회의 역사를 짚어보면 신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고 소아시로 흩어져 공동체를 이루던 교회는 당시 위세당당하던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 당도하게 됩니다.
그곳에도 박해의 바람은 여전해서 교우들이 둥지를 튼 것이 지하공동묘지였습니다.
소위 슬기롭고 세상 일에 밝다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수치스럽고 패배의 상징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 시민들에게는 까따꼼바(지하묘지)가 두려움과 뒤안길의 의미를 가질지 몰라도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더 없이 거룩하고 고요한 전례의 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황제에게 직접 재판 받기를 청했기에 그는 로마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죄수의 몸으로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삶의 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성실하게 전했던 것입니다. 바오로는 자기를 반대하는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사도 28,18-19)
그리고 바오로는 셋집을 얻어 만 이년 동안 지내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기회가 좋든 나쁘든 바오로 사도의 복음선포에 대한 열정은 놀랍기만 합니다.
요한복음 끝 부분은 두 사도에 대한 예언을 하는 느낌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베드로가 언젠가는 힘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묶여 이러저리 끌려 다닐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재미 있는 것은 사도 베드로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도 요한의 앞 날에 대해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23절)라고 말씀을 하시며 핀잔을 주시는 느낌입니다.
복음서는 그 후에 제자들 사이에 사도 요한은 죽지 않으라는 소문을 돌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자신이 요한 복음을 기록한 장본인임을 고백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조상의 이스라엘 관습을 거스리는 하지 않았지만
유다인들의 반대를 받아 로마인들에게 넘겨져 신문을 받게 된 사실을 설명합니다.
로마에서도 그는 쉬는 법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묶여 있다고 또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언이 유다인들에게 발목을 잡히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끔찍한 범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죽은 이가 되 살아 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주님의 부활 때문에 결국 사도 바도로는 소중한 자신의 삶을 바친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했던 사도 바오로의 삶을 묵상합시다.
그분은 그리스도가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제일 으뜸은 누구입니까?
주님을 제일 먼저 두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며 오늘 하루를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