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미니 JCW 3도어 해치보다 빠른 소형차들이 많다. 심지어 JCW 브랜드 안에서도 한층 강한 심장과 4륜 구동으로 무장한 컨트리맨과 클럽맨에게 동력성능으론 이길 수 없다. 이래서야 핫 해치로서 꼿꼿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작고 빠르면서 재밌는 차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아이콘이 힘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 내심 서글펐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핫’ 해치지 ‘패스트’ 해치가 아니다. 절대 속도는 화끈한 성향을 완성하기 위한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혹시 나 자신도 ‘스펙 마니아’들이라며 안타깝게 생각했던 인터넷과 유튜브로 차를 배운 일부 요즘 젊은이들처럼 스펙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느덧 미니 JCW가 핫 해치의 정상에서 내려올 때가 된 걸까?
그래서 더욱, 미니 JCW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기 좋은 시점이다. 물론 뜨거운 가슴은 잊지 말아야하겠지만. 20년 가까이 인연 이어온 <로드테스트> 김기범 편집장의 의뢰로, 인천 영종도의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JCW 해치와 온종일 함께 할 기회가 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날의 경험은 시승 전 떠올린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렇다. 미니 JCW 해치는 여전히 빠르다. 0→시속 100㎞ 가속 6.3초, 최고속도 시속 246㎞는 분명 준수한 수치다. 다만 ‘JCW 타이틀 앞세우기 충분한가?’의 문제일 뿐이다. 최근 300마력 이상 엔진에 4륜 구동 갖추고, 소위 ‘제로백’ 5초대를 너머 4초대마저 넘보는 소형차들이 드물지 않다. 심지어 국산을 포함한 앞바퀴 굴림 해치백 중에서도 있다.
파워 또한 마찬가지.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토해내는 231마력은 이제 고출력이라고 자랑하긴 머쓱하다. 6단 자동 변속기는 아무래도 단수가 아쉽고, 듀얼 클러치보단 절도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풍부한 저회전 토크 논하기엔 JCW 타이틀이 적잖이 낯간지럽다. 적어도 제원상으로, 미니 JCW 해치는 더 이상 핫 해치의 상징으로 군림하기 어렵다.
미니가 306마력 심장과 올4 시스템 품은 JCW 클럽맨과 컨트리맨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어디서도 뒤지지 않을 수치의 ‘제로백’과 동력성능, ‘가족과 함께 탄다’는 명분 필요한 이들을 위해 마련한 선택지다. 그런데 JCW 해치보단 강력하되 포용력이 넓고 범용성 강한 차종들이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 좇는 요즘 트렌드에 어울린다.
이날 231마력의 미니 JCW 해치로 트랙을 누비며 이따금씩 한계를 느꼈다. ‘조금만 더’라는 말을 종종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다행히 이날 난 트랙 이외에도 드라이빙 센터의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덕분에 JCW 해치와 궁합이 ‘쨍’ 맞는 환경을 찾았다. 바로 짐카나 코스였다. 쫄깃한 속도감만큼 심장도 세차게 뛰었다.
이날 짐카나 코스 누비며 미니 JCW 해치의 진가를 새삼 느낀 부분은 핸들링이었다. 사실 핸들링처럼 애매한 표현도 없다. 돌리면 도는 게 자동차의 원리 아니던가. 정의가 모호한 만큼 핸들링은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완성을 이루는 개념이다. 요즘 핫 해치를 타보면 뚜렷한 특징이 있다. 과격한 접지력과 날카로운 선회특성이 대표적인 예다.
가령 전자식 디퍼렌셜 록 덕분에 앞바퀴 굴림도 코너를 점점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인다.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필요한 타이어를 아쉬운 시점에 노면에 꾹 짓눌러 접지력을 죄다 꺼내놓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코너의 결을 타는 밸런스보단 칼날을 예리하게 갈아 박아 넣는 듯 폭력적이다. 코너를 ‘정복했다’는 생각은 들지언정, ‘즐겼다’는 쾌감은 왠지 아쉬운 이유다.
반면 미니 JCW 해치의 핸들링은 여느 핫 해치의 ‘인공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격한 예리함과 거리가 있다. 철저하게 기본 원칙에 바탕을 둔 밸런서 스타일이다. JCW 해치의 무게는 1.3톤 정도로, 요즘 차치고는 매우 가벼운 편이다. 휠베이스 또한 2.5m가 채 되지 않을 만큼 짧다. 코너를 경쾌하게 요리하게 위한 물리적 조건에 충실한 제원이다.
그 결과 가속과 제동을 통해 가벼운 무게를 짧은 휠베이스 전후로 옮겨가며 앞뒤 바퀴의 접지력을 의도적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 따라서 드라이버는 뒷바퀴 스티어링 기능 활용하듯 선회반경과 코너링 특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미니의 전매특허 ‘고 카트 필링’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미니 중에서도 JCW 해치는 이 같은 특성이 가장 뾰족이 두드러진다.
짧은 코너와 급격한 조작이 반복되는 짐카나 코스에서 미니 JCW 해치는 정말 즐겁고 신나는 차였다. 서킷에선 살짝 아쉬웠던 출력도 짐카나 코스에서만큼은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오히려 몬스터 레벨의 파워와 토크로 차고 넘쳤다. 아주 짜릿하고 특별한 재미였다. 그런데 이날 JCW 해치를 원 없이 지지고 볶으며 또 하나의 궁금증이 떠올랐다. 바로 타이어였다.
3. 여전히 아이콘인가?
일단 미니 JCW 해치의 타이어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처음엔 참으로 의아했다. 순정 타이어는 피렐리의 P7 씬투라노. 요즘 흔한 UHP(울트라 하이 퍼포먼스) 축에도 들지 못하는 무난한 성능의 제품이다. 휠 지름은 18인치로, 덩치를 생각하면 JCW여도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타이어 트레드의 너비다. 205㎜밖에 되지 않는다.
225㎜, 심하면 245㎜까지 심드렁하게 신기는 요즘 해치백과 비교하면 너무 다소곳하다. 미니 JCW 해치의 한계 접지력이 기대보다 낮고 접지감 또한 또렷하진 않은 이유였다. 심지어 JCW인데도 쿠퍼 모델보다 타이어 등급 역시 딱히 높지 않다. 서스펜션도 조금은 단단해졌지만 핫 해치 수준에선 안락하다고 해도 될 만큼 온순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비교적 낮은 접지 한계의 좁은 타이어 ② 상대적으로 온순한 스포츠 서스펜션 ③ 경량 숏 휠베이스 해치백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스파링과 트레이닝이다! 예컨대 권투 선수는 일부러 커다란 글러브 끼운 채 스파링하고, 육상 선수는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 채운 채 트레이닝에 나선다. 그리고 진짜 시합 땐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훌훌 벗어던지고, 의도적으로 가혹하게 만든 환경 속에서 단련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날 미니 JCW 해치는 나의 스파링 파트너였다. 촬영을 위해 서킷을 반복해 돌며 문득 깨달았다. 나의 운전이 가다듬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브레이크를 언제 어떻게 밟았다 힘을 빼는지, 스티어링 휠을 어떤 속도로 얼마나 돌려야 원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반응으로 코너를 가르고 달려가는지, 미니 JCW 해치는 즉각 반응으로 내게 귀띔하고 이끌었다.
특히 다른 핫 해치 다룰 때와 뚜렷이 달랐다. 대개는 쫄지 않고 끝까지 몰아붙이면, 차가 어느 정도 한계를 해결해줬다. 삐뚤삐뚤한 궤적을 알아서 다듬고, 거친 조작으로 불거진 마디마디를 눈치껏 매끈히 이었다. 그리고 나서 ‘아까 거기까지가 한계였어’라는 듯 타이어 혹은 차가 항복해 버리며 재미도 종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얀 거짓말’인 셈이다.
미니 JCW 해치는 솔직했다. 운전자와 보조 맞추며 서로 즐겁기를 원하는 친구였다. ‘네가 준비되었다면 원하는 스타일로 나를 요리해봐’라며 기다리는 듯했다. 고전적 백야드 빌더의 기질이 살아 숨 쉬는 핫 해치였다. 장난기 가득한 ‘똘끼’가 영락없는 JCW였다. 평범하게 몰아도 신나지만, 운전 실력과 튜닝으로 이끌어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친구였다.
따라서 마지막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더없이 명쾌하다.
“물론이다. 앞으로도.”
*[편집자 주] 이번 시승은 2020년형 미니 JCW 해치로 진행했습니다. 이제 갓 고객 인도를 시작한 2021년형은 계기판을 디지털로 바꿨고, 기존 6단 대신 자동 8단 변속기를 얹습니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6.1초로, 이전보다 0.2초 빠르며 최고속도는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