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만세
유종인
어깨 염증을 오래 참았더니
어느 날부터 팔을 돌리기가 어렵다
팔을 앞으로 돌릴 때도 그렇지만
팔을 뒤로 젖혀 돌릴 때는 더 아파온다
팔이 너무 아프니까
팔이 내 팔 같지가 않다
아픔이 이제 팔의 주인 같다
아플 때마다 참아온 팔이
안 아플 때조차 견뎌온 팔이
아플 때마다 따로 떼어논 팔이
아픔을 모르는 나를 만들어온 것같이
언제부터인가 앓아온 나라를
그래도 이게 내 나라인가
묻는 이들이 좌로 우로 북적일 때마다
하나같이 그들은
어떻게든 만세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
만세를 못 불러서
오히려 팔이 아파온 사람들
못나도 가만 불러주고
잘나도 만세를 불러주길 오래 참았더니
아픈 팔만 남은 몸뚱이같이
그 아픈 자식들만 남은 나라 같이
팔이 나으려면 아파도 돌리세요
그러면서, 동네 의사는 때로 義士나 烈士처럼
내 팔을 그윽이 대신 들어주진 않는다
그래도 아픔 몰래 팔을 살살 돌리다
경계 삼엄한 아픔한테 걸려 팔을 도로 내릴 때
내 몸은 내 마음한테 그런다
언제까지 아픈 팔을 데리고 살 거냐
언제까지 아픈 나라를 고개 숙이고 살거냐
그 때에 이르러 당신이 한 말씀
아픔을 가만히 참고
먼저 팔이 어디까지 올려지나 올려 보세요
통증이 잡아끄는 팔을
조금씩 또 조금씩 들어 천장을 향해 하늘에 올릴 때
아 나 같은 어깨 병신 팔 병신도
뭔가 한 것만 같은 으쓱함이여
그러니까 만세
그러니까 만세
말을 닫고 그저 입만 꽃처럼 벌리고
아픈 팔이 안 아픈 팔까지 거들어 올리고
서로 좀 즐거이 아파보자구
서로 좀 살 떨리게 기쁜 아픔 찾아보자구
벌써 가로수와 정원수와 죽어가는 나무들까지
언제부턴가 두 팔 들어 올린 지 오래고
하늘 높이 기다린 지 오래다
-----애지 겨울호에서
카페 게시글
애지의시인들
유종인의 그러니까 만세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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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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