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에서 중국문화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것은 쿵푸다. 그렇다면 쿵푸를 이을 차세대 아이콘은 무엇이 될까? 지난 8월 20일 중국 영화산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미국언론 ‘차이나 필름 인사이더(
chinafilminsider.com)’는 쿵푸를 이을 중국 문화 최대 수출상품으로 SF 장르를 꼽았다. 차이나 필름 인사이더는 “최근 몇 년간 중국의 SF 소설이 미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최고 권위의 휴고 상 수상작으로 중국 작품이 선정되는가 하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휴가 중 중국 SF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다.”며 번역가이자 SF 소설가 켄 리우(Ken Liu)와의 인터뷰와 함께 중국 SF의 가능성을 소개했다.
켄 리우는 중국 SF를 영미권에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11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하버드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하이테크 기술 소송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130편이 넘는 SF 단편소설과 2편의 장편소설을 썼고 다수의 중국 SF를 영어로 번역, 미국에 소개했다. 과학소설과 판타지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휴고상(Hugo Award)에서 2012년 베스트 숏 스토리로 뽑힌 <페이퍼 매니저리>(Paper Menagerie)와 2013년 작 <모노 노 어웨어>(Mono No Aware) 등이 그의 작품이다. 또 2015년에는 중국의 대표적 SF 작가인 류츠신(刘慈欣, Liu Cixin)의 소설 <삼체>(Three-Body Problem)를 번역했는데, 이 작품이 중국 최초로 휴고상 베스트 소설에 선정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SF 원작 IP가 탄탄한 기반
<삼체>의 성공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자신의 휴가 기간 중 “류츠신의 ‘지구의 과거’ 3부작(<삼체>, <어둠의 숲>, <사신의 영생>)을 읽었다”고 언급해 화제가 된 것이다(<삼체>는 ‘지구의 과거’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중국에서는 2007년 출간, 미국에서는 2014년 번역본이 나왔다). 켄 리우가 최근 번역한 <사신의 영생>(Death’s End)도 다시 한 번 휴고상 베스트 소설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르면서 중국 SF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가는 중이다. 차이나 필름 인사이더는 “중국의 과학소설은 모든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독자들에게 현대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기술에 집착하는 시대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중국 SF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소설 분야에서 SF가 부상하자, 중국 영화계도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멜로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에서 판타지 장르로 중심을 옮기며 CGI 및 제작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SF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영화계가 SF 장르 영화를 처음으로 시도하고자 한 대상은 역시 역시 휴고상 베스트 소설로 선정된 류츠신의 <삼체>였다. 장번번(张番番)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징추(张静初), 풍소봉(冯绍峰) 등 중국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해 세계 시장을 노리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탄생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영화는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를 살아가던 물리학자 예원제(장징추)가 외계 행성과의 통신에 성공, 선진문명을 가진 ‘알파센타우리 별’(삼체별)의 ‘삼체인’과 접촉하지만, 멸망의 위기에 처한 삼체인들이 오히려 지구를 침략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지구인과 삼체인의 전쟁을 그릴 예정이다.
영화 <삼체>는 원작 소설의 성공을 발판삼아 세계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것이란 기대 속에 지난 2015년 8월 크랭크업했다. 류츠신은 이런 분위기를 경계하며 지난해 12월 미국 언론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 버전의 <2001 오디세이>나 <스타워즈>를 기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기대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국 SF 영화의 긍정적인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체>는 CGI 팀 교체 등 후반작업에 난항을 겪으면서 애초 목표로 삼았던 2016년 개봉을 여러 차례 미뤄, 현재는 2019년 개봉을 목표로 삼고 있다.
로맨스와 판타지에서 SF 대작으로 중심 이동
<삼체>는 난항을 겪고 있지만, 그 사이 또 다른 중국 SF 영화들이 하나 둘 등장하는 중이다. 최근 공개된 <치명도수: 리셋>(逆时营救)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창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중 합작으로 제작된 이번 영화에는 류츠신을 비롯한 중국 SF 작가들이 각본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이야기는 평행이론 기반의 시간여행을 연구하는 핵심연구원이자 싱글맘인 시아티엔(양미)이 납치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과거로 보낸다는 내용으로, 지난 6월 29일 중국에서 개봉해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고 총 20억 1,234만 위안(약 3,472억 원)을 벌어들였다. 또 제 50회 휴스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휴스톤 국제영화제는 ‘파노라마 차이나’라는 섹션을 마련해 내년부터 중국 SF 소설과 판타지 영화에 관한 펀드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판타지 액션영화 <구층요탑: 전설의 부활>과 디즈니와 만든 다큐멘터리 <본 인 차이나>를 연출한 중국의 루추안(Lu Chuan) 감독도 할리우드와 SF 영화 공동제작을 발표했다. 철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기계 공룡들의 전투를 다룰 이번 영화의 제목은 <스틸 타운: 드래곤 전쟁>(The Steel Town: a War of Dragons)으로, 루추안 감독은 제작을 맡고 미국인 감독에게 연출을 맡길 예정이다. 각본가로는 <타이타닉>과 <쏘우> 시리즈로 유명한 케빈 그루터트(Kevin Greutert)가 나선다. 이번 영화는 지난 6월 완다 필름이 공개한 총 27편의 프로젝트 중 최대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류츠신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둘 영화화를 발표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시나 엔터테인먼트의 보도에 따르면 <떠도는 지구>(The Wandering Earth, 流浪地球)가 지난 3월 영화 제작을 시작해 오는 2018년 여름 또는 2019년 봄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태양 팽창을 감지한 과학자들이 다른 행성을 찾기 위해 거대한 엔진을 만든다는 류츠신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번 영화는 2011년 판타지 액션 영화 <로스트 인 타임>과 2014년 로맨스 멜로 <동탁적니>를 연출한 곽범(Frant Gwo, 郭帆)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확정됐다. 곽범 감독은 시나 엔터테인먼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반년 동안 개발을 진행했고 주요 배역 캐스팅도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