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곡」은 국악의 명곡이라고 꼽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국악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나로써는 청성곡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곡의 속도도 느리고 선율은 지나치다 싶을정도로 완만해서 도대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다가서기 어려운 곡이였다.
그러나 매번 팝이나 가요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나로써는 이런 곡이 어떻게 보면 신선한 충격이였을지도 모른다.
듣고 있으면서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신비한 소리는 비현실적인 것 같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현실의 것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말이다.
국악에서 「청성곡」의 "청"은 '맑다'라는 뜻이 아니라 '높다'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맑다'와 '높다'의 차이는 전혀 다른 뜻인 것 같으나 어떻게 보면 분리하기 힘든 뜻이기도 하다. 내 견해로는 높지 않으면 맑을 수가 없고 맑지 않으면 높을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청성곡」의 "청淸"을 나름대로 '맑고 높은'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럼 이렇게 맑고 높은 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뭐가 있을까?
물론 내가 들은 이 청성곡의 악기가 내가 부여한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악기이다.
높은 음을 길게 내고 높음과 맑음을 나타낸 악기가 바로 대금과 단소이다.
대금 소리는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음색을 찾기 어려울 만큼 한국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금은 여러 가지 대나무 관악기 중에서도 가장 시원스럽고 평화롭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들은 대금소리 역시 어찌 들으면 사람의 슬픈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 개의 악기밖에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마 우리 악기중에 제일 음악적 표현 영역이 넓지 않을까.
대금으로 연주하는 「청성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높은 소리로만 연주되는 것은 아니였다. 맑고 높은 소리가 주조를 이루기는 하지만 그 맑은 소리 중간에 알 수 없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들은 바대로 말을 하자면 진동소리인 것같기도 하고 매서운 바람소리인 것같은 느낌이다. 마치 높은 음을 내기위해 입김을 세게 불어넣을 때 나타나는 소리같기도 했다.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서양악기 '리코더'를 연주했을때가 떠올랐다.
처음에 난 리코더 연주가 굉장히 어려웠다. 숨을 참으면서 연주하다가 중간에 도저히 참지못할 때 짧게 쉬어주었던 리코더 연주말이다. 참 힘들었던 그 음악시간의 나와 청성곡의 연주자.
"도대체 연주자의 호흡은 얼마나 긴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그런 호흡에 따라 소리의 빛깔도 달라질수 있구나란 생각"에 음악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란 느낌이 지배적이였다.
느리고 완만한 선율이면서도 고고하고 맑은 느낌, 그리고 연주자의 뛰어난 기교가 빚어낸 「청성곡」이미지가 내겐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가을하늘처럼 맑고 투명한 소리 역시 「청성곡」의 "청淸"에 딱 드러맞는 소리였던 것이다.
「청성곡」은 다른 이름으로 「청성자진한잎」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청성'이라는 말은 '한 옥타브 위의 음'을 뜻하며 '자진한잎'이란 성악곡인 가곡의 순한글이름이다. '청성'과 '자진한잎'이라는 곡명을 보면 순수 기악곡인 「청성곡」과 성악곡인 가곡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곡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다. 가곡은 보통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구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도록 되어 있는데 「청성곡」은 한 옥타브 위로 올려서 연주한다고 한다.
여기서 난 가곡의 선율을 기악으로 표현하면서 왜 대금이나 단소로 독주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본래의 선율을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한 옥타브 위로 올려 변주하게 되었는지 궁금점이 생겼다.
내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아마도 국악인 대금과 단소의 맑고 투명한 소리의 특색을 십분 더 살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서양음악의 반주개념에 익숙해진 나로써는 의아할 뿐이다.
아마 서양음악이라면 이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개의 독립적인 가락이 한데 어우러지는 우리 음악에서는 이것이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닐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음악은 서양음악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결론이다. 하나의 곡을 합주로 해도 좋고 독주로 해도 좋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다 각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듣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청성곡을 한 옥타브 위로 변주하는 것은 나에게 또 한번 다르게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한 옥타브 위의 변주를 높은 세계로의 도약, 다시 말해 '청성淸聲'으로의 도약을 이루는 곡이라고 말이다.
문득 높고 푸른 청명한 가을 하늘이 떠오른다. 바로 「청성곡」과 함께 말이다.
2. 대금의 역사.
- 대금 연주의 「청성곡」을 듣고 대금에 대해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조사하였습니다.
대금은 신라시대의 대표적 악기인 삼현(三鉉)[거문고, 가야금, 향비파]과 삼죽(三竹)[대금, 중금, 소금]중의 하나로서 대나무로 만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악기 중의 하나이다.
대금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악지,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등에 여러가지 기록들이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삼국유사 만파식적(萬波息笛)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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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동해 바다 한가운데 작은 산이 있었는데, 이것이 파도에 따라 감은사를 향하여 왔다 갔다 했다. 이 기이한 얘기를 듣고 일관에게 점을 쳐보라고 했더니 이는 반드시 큰 보배를 얻을 징조라고 했다. 이에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이견대로 나아가 사람을 보내 그 산을 살피게 하였다. 그랬더니 '산의 모양은 자라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 대(竹)가 있는데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 되면 합쳐져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금은 직접 그 산에 들어갔더니 용이 나타나 임금에게 구슬띠를 바치는 것이었다. 임금이 용에게 '이 산의 대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용은 '한 번 손뼉을 치면 소리가 없고 두 번 손뼉을 치면 소리가 납니다. 이 대竹가 합한 연후에 소리가 있는 것은 임금이 소리로서 천하를 다스린다는 상서로움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임금은 곧 사람을 시켜 이 대를 베어오게 하여 그것으로 젓대를 만들어 고구려의 거문고와 함께 월성 천존고에 신기로서 소중히 간직케 하였다.
과연 이 젓대는 신통력이 있었다. 이것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오고 장마 때는 하늘이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잠잠해졌다. 그래서 이를 만파식적이라 하여 국보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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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설화를 근거로 해서 대금의 기원을 신라시대로 삼는 이도 있으나, 전문가들의 견해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가로부는 저[橫笛]가 우리나라에 널리 펴져서 불리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이후로는 모든 악기를 조율(調律)하는데 표준악기로 삼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