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간격이 사라지면
김영자
함양 가는 길에서 웃는 산을 만났다
멀리 앉아 있는 산 물결을 바라보다가
산이 먼저 웃으니 간격이 사라지고
간격이 사라져 손을 내밀었더니
천의 지느러미들이 달을 낳을 무렵
황어 떼가 돌아오는 화개천花開川에 내려오라는데
기척도 없이 찾아온 물고기 한 마리가
벌써 나를 읽는다 한참 동안
손바닥을 읽고 난 후 어깨 위로 올라와
등을 읽고 있다
마른 등을 훑고 난 후 사라지는
붉은 띠의 물고기들이 다시 몰려와
내 부끄러움 걷어 낼 때
늑골 속에서 열리는 파이프라인의 경전
수많은 알집에서 쏟아지는
달덩이 달덩어리의 알몸은
함박눈처럼 끌어안고 싶은
따뜻한 생의 봉분
그 봉분 속에서 넝쿨 올리면
차디찬 벽을 들어내고 왕래할 수 있다는데
꽃숭어리 숭어리 사이사이에
바람길 생기고
창문을 열면 모든 간격이 사라진다는데
나는 왜
산보다 먼저 웃지 못할까
웹진 『시인광장』 2024년 5월호 발표
김영자 시인
1997년 《문학과 의식》 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양파의 날개』, 『낙타뼈에 뜬 달』, 『전어비늘 속의 잠』 , 『호랑가시나무는 모항에서 새끼를 친다』 등이 있음.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가톨릭문인협회 이사. 미당문학회 이사, (사) 시와산문학회장 역임. 공간시낭독회장 역임. 현재 「광화문시」 동인.
[출처]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