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포클랜드 분쟁 (─ 忿爭 , Falkland islands war)
요약 :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벌인 국제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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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 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국제 분쟁이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독립한 이후 1820년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선포하고 말비나스(Islas Malvina)로 명명했다. 그러나 1833년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에서 아르헨티나 정착민을 추방하고 제도를 식민지로 삼아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아르헨티나는 주권을 되찾기 위하여 회담을 갖고, 1973년 국제연합(UN)에 포클랜드 제도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명확한 성과를 보지 못하자 아르헨티나는 1982년 4월 2일, 2,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포클랜드를 점령하였다.
이에 영국의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은 1만 5,000명 규모의 육해공 연합군을 전격적으로 파견하여 스텐리 항(Port Stanley)을 탈환하였으며, 아르헨티나 사령관인 메넨데즈(Mario Menendez)는 영국군에 항복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국군 255명, 아르헨티나군 650명이 전사하였다. 영유권을 회복한 영국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지사를 파견하고 수비대를 파견하여 방어하였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영국이 실질적으로 해당 지역을 영유하고 있다.
전쟁의 영향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포클랜드 전쟁의 패전 여파로 실각하였으며, 1990년 양국의 국교가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여전히 포클랜드 제도의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1994년 아르헨티나 제헌의회는 포클랜드 제도의 주권을 확인하였지만 1997년 영국 정부는 영유권의 수호 방침을 공고히 했다. 포클랜드 전쟁 25주년을 맞은 2007년, 아르헨티나는 영국에 대해 주권 협상을 다시 요구했다. 또한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 인근의 대륙붕에서 석유를 일방적으로 개발하는 것에 대하여 아르헨티나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클랜드 분쟁 [─ 忿爭, Falkland islands war] (시사상식사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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