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것은 혹시 나와 같은 우愚를 범하지 마시라고 블로거 이웃님들께 나의 투병일기를 소개합니다. 1988년부터 나는 우리나라의 산하를 산천주유하기 시작하여 국내 100산과 백두대간을 2번 반이나 종주를 한 사람입니다. 왜? 산에서 산으로 다녔는 지는 여러번 저의 글에서 소개를 했지만 1987년 가을 큰 사고를 당해 의사의 권유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건강상 등반을 했는데 차츰 차츰 산의 매력에 빠지면서 우리나라 산 들 내에 피는 들꽃을 공부하게 되면서 부터는 들꽃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 들꽃을 계절별로 촬영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되고 그곳의 들꽃들을 촬영하게 됩니다. 그렇게 봄부터 가을까지는 금요일 저녁 아님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배낭을 꾸려 1~3일 일정으로 우리의 산하로 가서 그곳에서 지냈답니다. 그때부턴 배낭의 무게는 점점 커져서 보통 70리터 정도로 서너끼의 식량을 짊어지고 다니다 보니 당연이 배낭이 무거웠답니다. 그렇게 내 배낭엔 취사도구와 사진기기 식량과 텐트, 침낭등을 짊어 지고 다니다 보니 2006년 9월 백두대간종주 중 오른쪽 다리의 통증으로 중간 탈출을 하게 됩니다. 그게 첫 증상이었는데 무시하고 1달에 2번은 백두대간 종주하고 나머지 주일은 서울근교의 산을 동시에 탐방하면서 산에서 산으로 다녔지요.
그후도 2008년 8월까지 10년간을 산에서 산으로 다니며 산행기와 詩를 쓰다 보니(고도원의아침편지 등) 2008년 06월 이수화 · 이종석님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천료)도 하게 됩니다. 2003년부터 앞으로 퇴직하게 되면 뭘 할까 고민 중에 배운 것이 바로 들꽃과 나무로, 퇴직하게 되면 우리나라 어느 숲에서 '숲해설가'로 활동 하자는 계획이 섰답니다. 그렇게 나는 우리의 나무와 들꽃을 배우기 시작하며 동시에 복습 차원에서 우리의 산 들 내를 탐방하면서 철저하게 현장 실습을 했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8년 8월 23일 설악산권 망대암산에서 낙상사고가 있는 날 북암령의 아침은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들풀꽃]
누가 너를 들꽃이라 불렀느냐 잊혀진 이름의 들꽃이여 작은 몸짓 절규하는 너의 침묵 뜨거운 외침 꽃잎으로 말한다
사랑의 눈이 아니고는 찾아지지 않는 꽃 너 들꽃이여 잊혀지는 아픔 흙심장에 뿌리박고
이슬 눈물 머금고 기다림에 피는 들꽃이여 오늘도 바람 부는 산내들에서 마지막 남은 씨앗 흙심장에 흩날린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북암령에는 설악산 지킴이를 하는 친구가 있어 설악산에서 들꽃 촬영하고 미쳐 촬영하지 못한 들꽃을 촬영차 이곳에서 몇 일 유留하며 8월의 산나리(털중나리 와 땅나리)를 촬영하기 위해 점봉산과 연결된 망대암산의 암벽에 이르러 털중나리를 발견한다. 이 꽃을 촬영하기 위해 자일을 설치하고 암벽을 기어올라 촬영을 하다가 그만 자일과 내 몸을 묶은 슬링이 풀어져 낙상落傷하게 됩니다.
낙상하다가 그래도 내 생명이 질긴지는 모르나 소나무 가지에 배낭이 걸려 다행이 몸은 크게 안 다치고 카메라만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렇게 나는 낙상하다 말고 살아나 응급치료하고 북암령에서 쉬다가 서울로 이송되어 동네에 있는 정형외과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게됩니다. 그날이 2008년 08월 27일로 그 이후 나는 병원급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니 '척추관 협착증 중증'으로 진단이 나와 수술할 것을 권유받는다.
그러나 여러 군데 알아보니 수술은 하지 말라하여 동네의원에 입원하여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2009년 5월까지 받게 됩니다. 그 당시 나의 몸 상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고 앉았다가 일어 나기도 힘들어서 지팽이가 있어야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다니던 모 회사(전기건설제조업) 영업이사 직을 명퇴하고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내 자신속으로 나의 길을 가기 시작 합니다.
첫댓글 오늘은 요기까지 소개 합니다. 고맙습니다. 8년전 쓴 글로 퇴고를 거쳐 이번에 출간하는 「길에서 나를 묻다」에 수록 됩니다
부지런하신 거사님, 건강과 행복가득한 나날되셔요~~~~
관음선원 카페에서 함께할수있어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