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청하 성기조 선생님과 인연>/구연식
수필이란 노래는 음정도 박자도 그리고 가사 전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글만 쓰면 되는 줄 알았던 나였다. 수필의 걸음마를 처음 띄워주신 고(故) 김학 교수님한테서 카톡 문자가 왔다. 하필이면 외국 여행 중이었다. 『수필 시대』에 신인상 원고 모집에 응해보라는 내용이다. 신아 문예대학 수필 반에 입문하여 김학 교수 밑에서 수필지도를 받고 있었다. 글쓰기에 욕심이 많아서인지 거의 1주일에 1편씩 써서 교수님한테 첨삭지도를 받고 수필 반 문우님들과 비평과 토론을 거쳐 2년 조금 넘었는데 100여 편을 썼다. 그때마다 교수님은 다작 상 추천을 운운하셨다. 솔직히 많이만 썼지 수필다운 글은 없었다.
그중에서 3편 정도 골라서 응모해 보라는 것이다. 부랴부랴 귀국하여 그간 관심이 있었던 작품 중에서 골라 『수필 시대』에 응모했다. 그 뒤 심사위원님들의 심사 끝에 신인상 원고 모집에 당선되었다고 통보가 왔다. 너무 좋아서 어린애처럼 방방 뛰고 싶었다. 2019년 11월 2일(토) 오후 3시 함춘회관(가천홀)에서 신인 등단패 수여식이 있으니 참여하라는 초대장도 왔다.
○◎● 추천의 말 ●◎○ 구연식의 <나의 골동품>을 추천한다. 그가 보내온 작품 중에서 <나의 골동품>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모은 용돈을 학비에 보태거나, 고향 집에 갈 때 아버지 담배를 사다 드리는 정도였다. 언젠가는 조금 더 용돈을 모아서 익산역에서 내려서 길 건너 역전 시내버스 정류장 부근에 있었던 시계 점포를 지날 때마다 눈여겨보았던 그 괘종시계를 사다가 부모님 안방에 걸어 드렸다”는 정성은 부모를 모시는 정성이기도 하지만 뒷날 다시 그 시계를 가져와 함께 살면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 끌렸다. 효도가 무엇인가. 살아 계실 때는 마음 편하게 해 드리고 돌아가신 뒤에는 오래 기억하는 일이 아닌가. 구연식 작가의 효성스러움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감격스러운 일을 찾아 쓰는 것은 수필의 할 일이라 생각되어 추천에 주저하지 않았다. 수필 문단에 큰 몫을 하기 바란다. 추천인 : 김병권, 김학 (글), 성기조, 오정순, 윤주홍
수필 신인상 등단패 수여식은 어쩌면 나의 늘그막에 새로운 삶을 설계해 준 공식적인 인증서 이어서 참으로 중요하니 꼭 참석해야 할 자리였다. 그런데 11월 2일은 필수모임이 3 군데가 겹치는 날이다. 좋은 것은 한 곳으로 모이는 것 같다. 낮에는 서울에서 등단식 참여가 있고, 밤에는 충남 대천에서 3남매 자식들 내외와 손자들이 모여 우리 부부를 위한 모임이 있다. 그리고 그날 밤과 다음 날 아침은 시골 마을 50년 지기 죽마고우들이 만리포해수욕장에서 부부계 모임이 있다. 낮에는 서울에서 밤에는 자식들과 손자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친구들 모임 시간과 장소를 할애하여 우선 등단식 모임에 갔다.
용산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함춘회관 가까운 곳에서 하차하여 가기로 했다.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리니 시간이 넉넉하여 우선 걷기로 했다. 조금 걸으니 지성과 낭만 그리고 사랑이 함축된 대학로 마로니에 거리였다. 부부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살며시 손을 잡고 지성 낭만 사랑을 음미하며 걷고 있었다. 아직 낙엽을 못 떨치고 남은 마로니에 나뭇잎이 반갑다. 그 아래 떨어진 마로니에 열매가 토실토실한 알밤처럼 먹음직스럽지만, 독성이 있다고 먹지 말라는 경고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금단의 열매처럼 느껴져서 지성, 낭만, 사랑에 빠져 일탈을 할까 봐 신이 내린 일침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지성의 거리 대학로를 걸어서 함춘회관에 도착하여 등록을 마치고 가천홀에 들어갔다. 시간이 임박하니 사진 속에서 많이 뵈었던 청하 성기조 선생님이 입장하신다. 나는 수상 좌석에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수상자 일일이 악수를 청하신다. 나는 “감사합니다. 수필 구연식입니다. 뽑아주셔서~”라고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나의 수필을 선정해 주신 공동 추천인이다. 그래서 나의 수필과 이력에 대해서는 꽤 뚫고 계셨다. “구연식 선생님 전주에서 오셨지요, 축하합니다. 수필 내용이 아주 좋아요, 열심히 하세요, 김학 선생님께도 안부 전해드려요.”라고 덕담을 주신다. 청하 성기조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온화한 눈길 악수를 청하는 따스한 손 촉감을 느끼는 순간 청하 선생님의 문학적 기(氣)를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신인 등단식 및 청하 문학상 시상식이 끝났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30분이나 남았다. 식사를 하고 내려가면 용산역에서 예매한 열차를 탈 수 없다. 아쉽게도 식사를 하면서 청하 선생님과 주고받을 정담(情談)을 아쉬워하면서 선생님께 인사만 드리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크리스털 등단패에는 구연식 수필가가 신인상 공모에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성기조 대표님의 직인으로 증명해 주는 묵직한 등단패는 오늘도 서재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수필인의 자세 「관조(觀照)와 성찰(省察)」 지킴을 내려다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