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하늘 바다
이재부
청명한 가을 하늘은 꿈꾸는 파노라마다. 동화의 나라에서 선녀의 하강을 그리는, 천국 화공의 화선지가 아닐는지. 달리는 차(車)안에서 바라보는 가을하늘이 하도 맑아 떠들썩한 분위기에도 가끔씩 이탈하여 창 밖의 푸른 하늘에 넋을 잃는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즐긴다는 것은 누구나, 마음 설레는 일이리. 나이 드신 문우 님들의 대면(對面)의 열기와 튀는 인사가 장끼로 표출되어 점점 즐거운 분위기가 고조된다. 충무 바닷가 청마문학관을 찾아 달리는 차안 분위기는 소년소녀들의 수학여행 기분, 그 이상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우리들 문학기행의 기분을 청마선생은 미리 알았나보다. 아픈 허리를 움찔거리면서도 창가에 비스듬히 앉아 차 내·외에서 전개되는 아름답고, 즐거운 분위기에 흠씬 빠져든다. 먼- 거리를 짧은 듯 달려왔다.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슬픔보다 기쁨 일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순간에 달려온 기분이다. 바다가 환히 보이는 문학관에 오르니, 나는 벌써 나이를 까맣게 잊고 충무 해변을 달리는 소년의 꿈을 꾼다.
파란 가을하늘은 바다에 눕고, 푸른 바다는 하늘을 당겨 덮은 듯, 가을에 더 푸른 바닷가를 뛰며 달리는 소년 시절로 되돌아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진 푸른 옥빛 세상이 가을 바다다. 바다로 이어진 가을 하늘은, 고독할 때 바라보던 하늘이 아니다. 슬플 때, 힘겹게 내려 누르던 하늘은 더욱 아니다. 간절한 소망을 빌던 하늘도 아니요, 분통을 터트리며 눈물을 뿌리던 하늘은 더 더욱 아니다.
시인의 아름다운 시심이 곱게 물들던 바다요 그와 연결된 하늘이다. 늙어도 철들지 않은 마음이 시인의 바다에서, 푸른 하늘을 헤치며 자맥질을 친다. 아름다운 시상(詩想) 속에서 유영을 즐기며 태평성대를 마음껏 누린다. 내 영혼을 내가 놓아주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발견한다. 독자와 시인은 마음을 맞대고 가슴을 비비는 친구가 되나보다. 문학은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이라 하지만 실감하지 못했는데, 아름다운 바다, 시흥(詩興)에 취해 고개를 끄덕인다. 시는 독자의 마음 속에서 생명력을 얻나보다. 세대를 달리하는 나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곁에 있는 친구로 착각한다. 시인과 동행하는 환상에 빠지면서, 그의 시는 내 가슴에서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충무 해변엔 사람이 분주하고, 이제 막 도착한 똑닥선에서 내려, 귀향(歸鄕)하는 청마 선생을 반갑게 맞는다. 선창 가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상상하며 문학관에 계시한 글을 더 읽어간다. 시(詩)속에 그려지는 바다에 매혹되니, 푸른 가을 바다가 내 가슴에서도 출렁거린다. 그리움의 파도가, 사랑의 물결이, 전신으로 퍼지는지 그 미묘한 떨림을 가슴으로 느낀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시인의 그리움이 까마득한 허공으로 날아다니다 내 가슴에 파문을 던진다. 불같은 정열의 사랑! 그리움에 동조하며, 님의 시혼(詩魂)을 따라다닌다.
작은 시집 한 권 받아들고 바다로 내려섰다.
오늘따라 왜 이리도 하늘이 맑을까. 수평선이 아니었다면 한통속 푸른 세상이다. 그 하늘 저 바다에서 시인의 깃발이 나부낀다. 새로운 것을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며 번뇌 한 자락을 씻어버리고 간다. 물결에 쏟아진 가을빛이 은빛 반사로 출렁이는 시인의 바다에서 한 줄기 빛을 더하고 간다. 시인의 하늘, 시인의 바다에서.
(2010년 10월 28일 청마문학관을 다녀오며)
첫댓글 불같은 정열의 사랑! 그리움에 동조하며, 님의 시혼(詩魂)을 따라다닌다.
작은 시집 한 권 받아들고 바다로 내려섰다.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며 번뇌 한 자락을 씻어버리고 간다. 물결에 쏟아진 가을빛이 은빛 반사로 출렁이는 시인의 바다에서 한 줄기 빛을 더하고 간다. 시인의 하늘, 시인의 바다에서./ 좋은 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 회장님, 건강하십시요^^
강선생님! 건강을 빌어주는 마음 고맙습니다. 붓끝이 뭉툭해진 기분입니다. 왜 이렇게 빨리늙는지....격려말씀 고맙습니다.
"파란 가을하늘은 바다에 눕고, 푸른 바다는 하늘을 당겨 덮은 듯, 가을에 더 푸른 바닷가를 뛰며 달리는 소년 시절로 되돌아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진 푸른 옥빛 세상이 가을 바다다. 바다로 이어진 가을 하늘은, 고독할 때 바라보던 하늘이 아니다. 슬플 때, 힘겹게 내려 누르던 하늘은 더욱 아니다. 간절한 소망을 빌던 하늘도 아니요, 분통을 터트리며 눈물을 뿌리던 하늘은 더 더욱 아니다."
골고루 짚어주셨군요. 게으름을 채찍해보지만 점점 필력은 둔해지고, 졸작만 생산하는 굳어지는 마음을 어이해야하는지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을 하늘과 가을 바다가 하나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것을 시인도 보고 수필가도 보고 시인은 시를 쓰고 수필가는 수필을 쓰고...제가 갔으면 전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으니 전 아주 조금 느끼고 왔을라나요? 일곡선생님의 수필은 언제 읽어도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이 입니다.
황선생님! 읽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격려말씀이 용기가 됩니다. 건강하세요.
'늙어도 철들지 않는 마음이 시인의 바다에서 푸른 하늘을 헤치며 자맥질을 한다...'
선생님을 대할때마다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그연세에 순수한 소년의 심성을 유지하실수가 있는건지 말입니다.
그거였습니다 바로 선생님의 가슴에 살아있는시심때문이었습니다. 좋은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내 글에 열열한 독자인 임미옥 선생님! 항상 염려와 격려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문학기행때 너무 수고 많이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인의 하늘 시인의 바다에서" 일곡 선생님께서 한 작품 하실거라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항상 거목처럼 우뚝 계심이 고마우시고 감사 합니다. 보고 또 보고 갑니다....*^^*
항상 부지런하신 솔잎향 님 관심 기우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상에서 내려온 소년이 세상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는 것 같아 선생님의 작품을 볼때마다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상 물결에 초연한 현자의 모습에 나도 저렇게 나이를 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옵니다. 글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고 성난 우리네 마음을 다독여주시는 그 마음이..인생은 이런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 더욱더 애잔해지는 아침입니다..감사합니다.
예진아씨! 부르기가 참 좋습니다. 수필 반에서 7년동안 만난 님들이 저의 재산입니다. 대화를 나누고, 수필을 통해서 세상을 함께 바라보며 토론하면서 노경의 안식을 취하는 재미... 관심있게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름다운 수필 잘 읽고 갑니다
청옥당님! 제 졸문을 읽어주셨군요. 백로처럼 날고싶은 욕망은 나이 들어도 버리지는 못합니다. 회귀의 꿈을 꾸면서 그 백로를 따라 기웃, 기웃거립니다. 가까이 계셨드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낭만적인 아름다운 수필 감상하였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대명화님! 아우성이 점점 작아짐을 느낌니다. 나이 탓은 아니지요..... 부정에 부정이 긍정이 됩니다.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고향에 다녀오셨군요, 마치 일곡 선생님께서 청마 시인이 되신 듯 합니다, 그 열정 정말 부럽습니다...
송종태선생님! 반갑습니다. 함께 하셨으면 더 좋은 문학기행이 되었을 텐데, 기행 後記 졸문을 일거주시고 격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하였던 문학기행 ... 가을 하늘 만큼이나 푸르고 고웁던 한산도 앞바다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 납니다. 여전히 좋은 작품으로 귀감이 되시는 존경스런 선생님
낭만적이서 감동하며 감상 잘 하였습니다.
고승히 선생님! 함께한 문학기행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나이들수록 추억을 더듬는 버릇이 생기는 것은 왜? 인지요.
시(詩)속에 그려지는 바다에 매혹되니, 푸른 가을 바다가 내 가슴에서도 출렁거린다. 그리움의 파도가, 사랑의 물결이, 전신으로 퍼지는지 그 미묘한 떨림을 가슴으로 느낀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감사합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에 늘 존경스럽습니다 머물다 갑니다
'시흥(詩興)에 취해 고개를 끄덕인다. 시는 독자의 마음 속에서 생명력을 얻나보다. 세대를 달리하는 나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곁에 있는 친구로 착각한다. 시인과 동행하는 환상에 빠지면서, 그의 시는 내 가슴에서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식을줄 모르는 서정성에 놀랄 따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선생님! 읽어주셨군요. 동행 했던 여행인데.... 너무 엄살을 떨었지요?
문학을 사랑하시고 삼라만상의 마음을 읽어내시는 선생님의 혜안을 존경합니다.
언제쯤이면 선생님의 흉내라도 낼 수 있을련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글도, 사람도.... 좋은집에 모인답니다.
선생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숨은 들꽃님! 오랫만입니다. 항상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