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 처음 심해를 엿보다 쇠공에 들어앉아 923m까지 잠수한 윌리엄 비브(1934년)
인기멤버
hanjy9713
2024.03.14. 02:04조회 2
댓글 0URL 복사
세계 탐험사 100장면
처음 심해를 엿보다
쇠공에 들어앉아 923m까지 잠수한 윌리엄 비브(1934년)
요약 윌리엄 비브가 호기심에 수압을 분산할 수 있는 공 모양의 잠수구를 생각해 오티스 바턴이 이를 만들었다. 둘은 1930년에 잠수구 안에 들어가 버뮤다 해 파도 아래로 내려가며 전화선으로 이야기하면서 하강하는 지점을 측정했다. 1934년에는 버뮤다 해 923m까지 내려갔으며 심해 지식과 인간의 활동영역 확장에 이바지했다.
"심해에도 생물이 살고 있다"
1934년 8월 11일 버뮤다 해에서 인류 사상 최초로 923m를 잠수한 윌리엄 비브가 배 위로 끌어올려진 지름 145cm짜리 잠수구로부터 나오고 있다(왼쪽에 서 있는 이가 오티스 바턴).
생물학자인 윌리엄 비브가 잠수구(潛水球)를 만든 동기는 순전히 호기심에서였다. 그는 갖가지 잠수 기구를 궁리한 끝에 수압을 골고루 분산하려면 공 모양이 제일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929년 비브의 부탁을 받은 오티스 바턴이 두께가 3.8cm나 되는 강철판을 써서 지름 144.8cm짜리 공을 만들었다. 무게가 2.45톤인 이 쇠공(잠수구)은 2.22cm 굵기의 쇠줄로 배의 갑판과 연결되어, 증기동력식 권양기로 바다 속에 내렸다가 끌어올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쇠공 안에는 이산화탄소 흡입 장치와 여덟 시간치 산소, 서치라이트, 전화가 있었다.
비브와 바턴은 1930년 6월 6일 오후 1시 잠수구 안에 들어가 버뮤다 해파도 아래로 내려졌다. 전화선이 그들과 바깥 세상을 이어 주었다.
"당신들은 지금 18m 깊이에 이르렀다."(18m 그 무렵 사람이 헬멧을 쓰고 잠수할 수 있는 최대 깊이였다)
"87m 깊이이다. 잠시 쉬겠다."
1분에 15m꼴로 하강하면서 그들은 계속 갑판의 선원들과 통화했다.
"117m 지점을 지나고 있다."(그때까지 잠수함이 세운 최고 기록이다)
"160m 지점이다."(바바리아 호수에서 잠수 장비를 갖춘 잠수부가 세운 최고 기록이다)
"183m다!"
두 사람은 마침내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다. 현창을 통해 희미한 바다 속을 바라본 순간을 비브는 〈0.5마일 잠수〉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페니키아인이 대양에 처음으로 배를 띄운 뒤로 몇천, 몇만의 인간이 우리가 있는 바다 속에 도달했다. 그들은 전쟁이나 폭풍, 혹은 신의섭리에 따른 익사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다.'
비브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150m를 지나 마지막 30cm를 내려가는 사이에 자기네가 죽은 자의 무리에 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작은 사고에서 말미암았다. 잠수한 지 얼마 안되어 바턴이 물이 스며든다고 소리쳤다.
지름 35.5cm인 출입구 뚜껑 아래로 바닷물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0.5리터쯤 고여 있었다. 계속 잠수하면 수압으로 뚜껑이 더 꽉 닫혀 물이 새지 않겠지만, 나중에 위로 올라갈 때 수압이 약해지면 틈이 더 벌어질 것이다. '만약 뚜껑이 버텨내지 못한다면?' 물론 그 결과는 죽음이다.
180m 지점에서 잠시 쉰 뒤에 잠수구는 계속 내려갔다.
'240m라는 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리자 나는 멈추라고 소리쳤다. 240m라니! 갑자기 더 이상 내려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었다. 바다 위로 올라온 때는 잠수한 지 1시간 만이었다. 다행히 출입구 뚜껑은 아무 일 없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6월 11일, 비브와 바턴은 다시 잠수구에 들어갔다.
'크고 작은 해파리들이 떠다니면서 우리 옆을 지나쳤다. 40cm쯤 되는 가다랭이 3마리도 나란히 지나갔다. 화려한 무늬로 성장(盛裝)한 쥐치가 해초에 숨어 우리를 쳐다보았다. ···120m에서 처음으로 심해어를 보았다. 엷다 못해 투명한 새우들도 있었다. ···
150m를 넘자 멀리서 가만히 떠다니는 물체가 보였다.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했다. 그것은 더 깊은 곳에서도 가끔 볼 수 있었다. ···180m에서는 빛을 내는 발광 새우를 처음 보았다. 녀석은 아주 작았다. 큰 구름같이 보이는 무리가 멀리서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그 순간 주체할 수 있는 없는 감정의 파도가 나를 휩쌌다. 초인적 · 종교적인 엄청난 상황에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우리 머리 위 아득한 곳에서 배는 나뭇조각처럼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거미줄 같은 케이블이 뻗어 나와 이 고독한 공간에 이어져 있었다. 여기 밀폐된 쇳덩어리 속에서는 의식을 가진 두 인간이 우주의 가장 먼곳으로부터 온 혹성처럼 다른 세계와 격절된 암흑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1934년 8월 11일. 비브와 바턴은 잠수구를 개량하여 또다시 버뮤다 해로 들어갔다.
하강할수록 밝음을 잃어가던 바다 속은 600m를 넘어서자 완전한 암흑세계로 변했다. 640m에서 비브는 심해어들을 보고는 '사방에서 유령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라고 적었다. 금빛 꼬리가 달린 해마와 올챙이처럼 생긴 물고기도 보았고, 850m에서는 긴 레이스같이 생긴 바다장어를 보았다고 했다.
'큰 파도가 일자 갑판의 선원들이 케이블이 팽팽해져 끊어질까 봐 계속 푸는 바람에 우리는 923m까지 내려갔다. 그들은 갑판 위에 케이블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계산해 보니, 잠수구는 1cm2당 96kg씩 압력을 받고 있었다.
지름 20cm짜리 현창 3개에 끼운 7.6cm 두께 석영 유리가 받는 압력은 각각 19톤이 넘었다. 잠수구 전체에는 모든 방향으로부터 7,016톤이라는 무시무시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만 올라갈까?"
비브는 너무나 조심스러워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바턴에게 물었다. 그들은 결국 거기에서 멈추었다. 이 날 비브와 바턴이 세운 923m 잠수 기록은, 그로부터 14년 후 바턴이 혼자서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잠수구를 타고 1,372m를 잠수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비브가 923m를 잠수하기 전까지 심해의 자연 환경은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느 깊이에서부터 암흑이 시작되는지도 몰랐고, 영국의 박물학자 에드워드 포브스가 주장한 대로 수심 560m 아래에는 생물이 전혀 살지 못한다고 믿었다.
비록 케이블에 매달려 이동범위가 한정된 기구이기는 했지만, 비브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160m를 넘어 923m까지 잠수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영역과 심해 지식 그리고 뒷날의 잠수 기구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 그 뒤 기록은 * 1948년 / 오티스 바턴 1,372m 잠수(잠수구 시대 끝) [네이버 지식백과] 처음 심해를 엿보다 - 쇠공에 들어앉아 923m까지 잠수한 윌리엄 비브(1934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