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에 관한 기록들
서애선생 문현록 2권/전식(全湜)[Ⅱ]
류현우 2023.06.16 01:35
서애선생 문현록 2권/전식(全湜)[Ⅱ]
갑술년(1634)에 대사간에 임명되었는데, “옛날 우리 선왕께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만드셨는데 비록 왕자, 대군이라도 감히 그 제도를 어기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인평대군(麟坪大君)의 혼례 때 의복과 기물이 너무 사치스러우니 선왕의 제도에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라고 논하니, 주상이 훌륭하게 여겨 받아들였다.
또 기강이 점점 해이해져 궁궐의 금령(禁令)이 엄하지 않다고 논하였다. 또 상소하여 시정(時政)의 득실과 군주의 호오(好惡), 하늘의 재앙과 백성의 원망을 논하였는데 확실하게 지적한 수백 자의 글이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또 예전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다시 새로운 것을 더 배워 터득하도록 주상께 권하였으니 참으로 유신(儒臣)의 말이었다.
사직하여 체직되고, 병조 참의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고, 예조 참의에 임명되었는데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병자년(1636) 1월에 인열왕후(仁烈王后)의 상에 달려가 곡하고 대궐에서 사은(謝恩)한 뒤에 즉시 돌아왔다. 대사간,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12월에 서쪽의 일이 급박하여 주상이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하자, 공은 창의(倡義)하여 병사를 모집하였다.
정축년(1637)에 포위가 풀려 어가가 서울로 돌아오자 공이 즉시 달려가 문안하였는데, 이미 부제학에 임명한다는 명이 있었다. 사은숙배하고 청대(請對)하자 주상이 반갑게 맞이하고 하교하기를 “경이 창의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몹시 훌륭하게 여겼다.” 하며 극진히 위로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영남의 군대가 패배하고 온 뒤에 재차 집결한 것은 참으로 영남에는 임금을 존중하는 의리를 아는 사대부가 많기 때문이니 호남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공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 대답하기를, “늙은 신이 병 때문에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적과 싸우지 못해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는 의리를 저버렸습니다. 지금 문석(文石)의 섬돌에 올랐는데 얼굴이 철갑 열 겹보다 두껍습니다.” 하고, 이어 진언하기를 “큰 어려움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聖人)의 용기입니다. 성상께서는 유독 옛날의 제왕이 나라를 잃었다가 보존한 것을 살피지 못하셨습니까. 스스로 실의에 빠지지도 마시고 스스로 안일하지도 마시며 날마다 신하들과 흥망성쇠의 도를 강론하여 밝히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도성을 나간 뒤로 전좌(殿坐)가 몹시 드물었기 때문에 공이 이 일을 언급한 것이다.
얼마 뒤 이조 참의에 임명되었다가 몇 달 뒤에 특별히 참판으로 승진하고 가선대부에 가자되었다. 말미를 청하여 선인(先人)의 묘를 이장하였다.
무인년(1638)에 세 번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한 번 사헌부 대사헌으로 옮겼으며 예조 참판, 성균관 대사성으로 옮겼다. 주상이 호남의 군대가 군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석 달 동안 남한산성에서 노역을 하도록 명하고, 또 순검사(巡檢使)에게 삼도의 수군을 정비하도록 명하였는데, 공은 모두 시기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 차자를 올려 여덟 가지 일을 논하였는데, 그 조목은 성상의 몸을 조양(調養)할 것, 실질적인 덕을 힘써 닦을 것, 사치하는 풍조를 통렬히 혁파할 것, 언로를 널리 열 것, 기강을 엄숙히 확립할 것, 절의를 숭상하고 장려할 것, 백성의 고통을 부지런히 돌아볼 것, 내수사를 혁파할 것이었으니, 모두 나라를 치료하는 양육(粱肉)이자 약석(藥石)이었다. 식자들이 탄복하였다.
그 뒤 두 해 동안 사헌부 대사헌과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된 것이 각각 세 번이었으나 모두 사직하였다. 당시 대신(大臣)이 “전모(全某)는 본디 덕망이 높고 이미 나이가 많으니 마땅히 서둘러서 크게 써야 합니다.”라고 건의하니, 공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겸손하게 물러났다.
임오년(1642) 2월에 주상이 특별히 자헌대부에 가자하여 지중추부사 겸 동지경연 춘추관사에 제수하였으니 이는 상신(相臣) 이성구(李聖求)의 계사를 따른 것이었다. 공의 나이가 비로소 80세가 되었으므로 곧이어 대사헌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해 12월 7일에 상주(尙州)의 성 밖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음이 전해지자 주상이 조회를 정지하고 의례대로 부의하고 치제하였으며,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하였다. 훗날 장남 극항(克恒)이 원종공신에 책록되어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훌륭하다 전공이여 懿哉全公
세상에 누가 필적하랴 世孰與侶
인을 이고 다녔고 於仁戴行
의를 안고 살았네 於義抱處
쉬운 일은 반드시 양보하였고 於夷必讓
어려운 일은 반드시 떠맡았네 於病必急
신중하고 고요하여 장수를 누렸고 愼靜而至壽
강하고 굳세면서도 남을 포용하였네 強毅而容物
아, 이러한 분을 噫嘻斯人
오늘날 다시 볼 수 있겠는가 其可復見於今日也哉
♣ 위내용은 龍洲先生遺稿卷之二十 / 神道碑에 용주 조경(趙絅)이 찬한 知事沙西 全公 神道碑銘 幷序의 비명(碑銘) 번역 내용중 일부이다.
〇 (서애)선생을 애도한 만사(挽詞) [全湜]
옥연은 빛을 거두고 학가산은 수척하니 玉淵收彩鶴山枯
맑은 기운 모여 세상에 드문 유자 낳았네 淑氣初鍾間世儒
수 년 동안 학문에 힘써 추락한 실마리 찾고 積學幾年尋墜緖
외로운 충정 만년의 지조로 큰 계책 폈네 孤忠晩節展訏謨
경륜과 훌륭한 업적 기운 운수를 부지하고 經綸盛業扶頹運
염퇴의 고상한 풍도 나약한 자 서게 하였네 恬退高風立懶夫
사도는 남쪽에 있는데 인자는 장수하지 못하니 斯道已南仁不壽
하늘이 우리를 열어주지 않고자 함이로다 皇天未欲啓吾徒
〇 (서애)선생에 대한 제문
-송량(宋亮), 전식(全湜), 이전(李㙉), 조광벽(趙光璧), 구산립(丘山立), 하징(河澂), 김지복(金知復), 고협(高悏), 조기원(趙基遠) 연명-
영령께서는 惟靈
하늘의 빼어난 기운을 얻어 受天間氣
세상의 유학의 종장이 되었네 爲世宗儒
스승에게 도를 전수 받았고 道傳于師
나라에 충성이 현저하였네 忠著于國
일찍 시종신에 발탁되고 早擢玉荀
늦게 정승 자리에 올랐네 晩登鉉台
사방에서 우러러 보고 四方所瞻
한 사람이 의지하였네 一人攸倚
백관들의 영수가 되고 冠紳領袖
나라에서는 원로가 되었네 邦國蓍龜
원대한 계략 쓰일 때이고 時升大猷
어려움을 많은 세상이었네 世遭多難
군대의 일을 맡아 軍國之務
몸을 바쳐 노력했네 挈以委身
이름이 성대하면 처신 어렵고 名盛難居
덕이 높으면 반드시 헐뜯는 법 德高必毁
적석이 동쪽에 와 있었으나 居東赤舃
단심은 북쪽 대궐을 향했네 望北丹衷
범중엄의 두 가지 걱정 지니고 二憂范湖
안연의 안빈낙도 실천했다네 一瓢顏巷
어디 간들 즐겁지 않겠는가 何往不樂
스스로 터득함 일 깊었네 自得者深
아름다운 옥과 정밀한 금처럼 美玉精金
흠이 보이지 않았네 不見瑕纇
오직 경과 의를 지켰으니 惟敬與義
명철하고도 성실하였네 曰明曰誠
거친 데서 정밀한 데 나아가고 由粗而精
근본에서부터 말단에 이르렀네 自本及末
진실되게 알고 실천하였으며 眞知實踐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쳤네 推己及人
하늘이 동방을 돕는다면 天若祚東
공이 다시 일어나리라 公庶再起
백성은 큰 은택을 입고 民蒙至澤
선비는 진로를 알 것이네 士知所趨
어찌하여 병에 걸려 如何一痾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나 遽至不淑
거리마다 통곡하니 슬픔이 크고 悲深巷哭
태산이 무너지니 애통함 절실하네 慟切山頹
백성들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蒼生失望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小子何造
아, 애통하도다 嗚呼哀哉
재주는 왕을 보좌하고 才惟王佐
학문은 유림의 종사였네 學爲儒師
한 몸의 영화와 슬픔에 身之榮哀
나라의 흥망이 달렸네 國以休否
천하의 보배가 天下之寶
슬프게도 어찌 한 사람에 있었나 悲豈一人
더구나 나는 가르침을 받아 矧蒙提撕
낳아주신 부모와 의리가 같았는데 義均生育
모습과 목소리 한 번 멀어지자 儀音一隔
덕을 볼 길이 없네 覿德無憑
도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道未傳心
말씀은 여전히 귀에 남았네 言猶在耳
아, 애통하구나 嗚呼哀哉
공이 세상에 계심은 公之在世
태산과 큰 강 같고 喬嶽大川
공이 세상을 떠남은 公之云亡
하늘에 벌린 별과 같네 列宿天上
공의 도는 惟公之道
훼손해도 줄어들지 않고 毁不加傷
쓰여도 재주를 다 못하니 用不盡才
이것이 오직 유감이라네 是惟所憾
향을 들고 와 통곡하며 瓣香來哭
한 잔 술 감히 올리네 敢奠一觴
밝고 밝게 앎이 있거든 昭昭有知
보잘것없는 정성 흠향하소서 庶歆菲薄
[자료제공] 옥천전씨 판서공파 전재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