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5. 주일 큐티
시편 119:137 ~ 144
의롭고 순수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
관찰 :
1) 의롭고 성실하신 주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
- 137절.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 이 말씀은 시편 기자가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전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의로우신 분, 결과론적으로 의로우신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은 의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으로는 다다르지 못할 차원의 의로우심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실천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138절.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 하나님의 본질이 의로우시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명령들 역시 의롭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증거들도 의로우며 변하지 않고 성실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의로움과 성실하심을 연결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실하지 않은 것은 의로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변하는 것은 결코 의로움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미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해주시면 하나님 맞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면 하나님 아니고 뭐 이런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 139절.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시편 기자를 괴롭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시편 기자의 대적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증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바라보며 시편 기자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다짐을 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열정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140절.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말씀은 심히 순수합니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과 같이 모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죄와 의를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말씀의 순수함을 시편 기자는 바라보고 있고, 그렇기에 주님의 변하지 않는 순수함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영원한 의요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
- 141절.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 시편 기자는 자신이 부족해서 말씀을 떠난 교만한 자들로부터 멸시를 당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잘났는데, 세상이 자신을 몰라줘서 그렇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런 와중에 시편 기자가 붙잡는 것은 여전히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 142절.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 시편 기자는 주님의 의와 주님의 말씀의 의로움을 동일한 성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본질이 괴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율법은 모든 것이 진리이고, 모든 것이 다 따르고 지켜야 하는 진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 말씀을 깨닫고픈 열정
- 143절.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 비록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해서 환난과 우환이 그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말씀을 떠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시편 기자입니다. 도리어 주님의 계명을 더욱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상황을 불평과 불만으로 치부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에 대한 소망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 144절.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 주님의 증거들은 주님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고, 의로우신 것입니다. 이것을 시편 기자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깊은 의미와 주님의 성품을 자신의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언제나 살 길을 따라가고 좇아가게 해 달라고 차원 높은 간구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본질에서 말씀의 원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균형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갖추어져야 함을 시편 기자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인격에서 비롯되기에 그 말씀이 영원하고 신실하고 성실하며 의로운 것입니다. 역으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격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스스로의 인격을 다듬어 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시편 기자는 이미 상당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더 온전히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풍성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스스로 하나님의 인격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함을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격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임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소홀하는 것은 주님을 소홀히 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해서 주님의 말씀을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2) 주님의 말씀은 좀 안다고 아는 체하면 그 깊은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사모하고 열정을 잃지 않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인격이 표현되는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을 나 역시 더욱 사모하고, 더 깊이 알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말로만이 아니라 나의 삶의 습관 속에서 바르게 드러나게 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