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장애 부작용없는 감기의 명약 생강
▶사는 모습이 약초 같은 사람들
새해가 되면 시골동리에서는 사랑채나 안방에 모여 한 동리에 한 권쯤 있는 누렇게 퇴색된 낡은 「토정비결」 책 한 권을 돌려가며 그 해의 길흉을 점쳐보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를 보는 듯 슬픔이 배어 있는 풍경이나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저 한해를 탈 없이 살고 싶어하는 작은 소망에 비원이 담겨있어 아름답기도 하다.
「토정비결」은 점치는 책 이전에 주역을 토대로 한 삶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 선생이라 하면 「비결」을 저술한 이인이며 기인정도로 세상에 알려져 있으나 기구한 삶을 살면서도 한 포기 약초 같았던 인품을 아는 이가 드물다.
토정 선생은 조선 중종때 학자이며 목은 이색의 후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형 밑에서 자라 처가살이 10년에 장인이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능지처참되고 처가는 멸문지 화를 당해서 풍지박산이 난다. 사대부집안 출신이나 20년이란 세월이 지나 처가식구들이 노비신세에서 풀려나게 되면서 후손들이 과거를 보게 되었으나, 장남 산두山斗는 어려서 죽고 충청도 의병장이었던 아들 산겸은 모함으로 처형을 당한다.
토정 선생이 그렇게도 아끼던 외동딸 산옥山玉이 뭉둥병에 걸리면서 선생의 암울한 삶은 다시 시작된다. 선생은 딸 산옥이를 데리고 아예 나환자촌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선생은 딸아이와 함께 죽기를 작정하고 스스로 병자와 접촉하여 나환자가 되고 만다. 누가 죽음의 길을 동행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로부터 얼마 뒤 선생도 눈썹이 빠지고 몸이 짓무르게 된다. 자식을 위해 나병치료약을 거듭 연구하면서 시험약재들은 일일이 문둥이가 된 자신의 몸에 반드시 실험을 해보고 딸 산옥에게 먹였다. 그러는 한편 한 여인으로 시집을 가서 아녀자로 살아가기는 틀려버린 운명의 자식에게 주역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문둥이가 된 딸의 장차 생계를 위해 아버지가 배려하는 눈물어린 이 장면에서 읽던 책을 덮고 하늘을 본다. 천형天刑이라는 문둥병을 자청했던 아버지. 그 모습이 너무도 처절해서 가슴이 메일 지경이다.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식물에 독초와 약초가 있듯이 인간에게도 사는 모습이 독과 약 같은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약차
생강차로 명성 높은 생강은 생강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이다. 고대인도에서부터 향신료로 사용해 왔으며 아리아인들이 쓰던 산스크리트어로 싱가베라 singabera로 부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약용식용 식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거쳐 전래된 것으로 보며 「고려사」1018년 기록과 고려시대 문헌인 「향약구급방」에 약용식물로 기록이 남아있어 이로 미루어보아 이미 천년전부터 재배해온 것으로 추정되다.
생강의 모습은 담황색 굵고 살찐 땅속뿌리가 옆으로 가지를 치면서 뻗어가고 잎처럼 생긴 줄기가 뿌리에서 돋아나 키 1m정도로 자란다. 잎은 줄기를 둘러싸고 있는 입집에서 어긋나게 나와서 줄기 전체가 하나의 잎같이 보인다. 이 땅에서는 꽃이 피지 않으나 고온 다습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원산지에서는 감황색 꽃이 핀다.
생강의 품종은 소․중․대 생강이 있고 전국에서 전라도와 충청도가 주산지이며 이곳에서 총량의 90%가 생산된다. 생강은 고온성 작물로 생육적온이 20℃~30℃이며 10℃ 이하에서 썩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자연산이 없다.
▶흔하다고 보잘 것 없는 약이 아니다
동의학에서 생강의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짙은 향기가 있다. 생강은 「본초연의」, 「경험양방」, 「다산방」 등에 기록되어 약성이 전해온다.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며 폐․비․위경에 작용한다. 땀을 내게 하여 풍한을 몰아내고 비위를 덥혀주어 속이 메슥거리는 것과 구토를 멈추게 한다. 폐를 따뜻하게 하고 담을 삭여주어 기침이 나며 숨찬데 쓴다. 입맛을 돋구고 소화도 잘되게 한다.
감기초기에 생강과 파뿌리를 같은 양으로 달여 마시고 땀을 내거나 생강과 귤껍질을 같은 양으로 달여 꿀을 타서 먹으면 아스피린보다 훌륭한 약제가 되고 특히 어린이 감기, 설사, 채한데 위장장애나 부작용 없는 감기의 명약이라 할 수 있다.
「경험방」에서 토사곽란에 생강에 소금 넣고 달여 마시면 즉시 토하면서 낫는다.
오랜 기침과 노인네의 헛기침에는 생강즙 반홉에 술 한 숟가락을 넣고 달여 공복에 세 번 나누어 먹거나 생강과 설탕 각 다섯 냥을 달여 수시로 마시면 분명 효험을 본다.
「茶山方」기록에서 중풍에 생강즙을 마시면 효과있다. 또한 감기에는 생강을 씹어먹고 땀을 내면 즉시 낫는다고 했으며 그 밖의 참고자료에서 신진대사기능항진, 구토, 설사, 소화불량, 위한胃寒, 창만脹滿, 산한散寒, 천해喘咳, 감모한풍感冒寒風, 풍습비통風濕痺痛에 치료제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생강은 양념으로 빼놓을 수 없는데 성기腥氣 즉 날고기와 생선의 누리고 비린 냄새를 삭이는데 특효로 쓰인다.
한방에서 첩약에 생강 몇 쪽을 넣어 달이라는 처방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약재를 목적한 장기에 깊고 속히 침투시킬 수 있는 생강특유의 약성을 응용하여 병의 발산을 돕고 빠른 치료효과를 얻고자 위함이다. 하루 쓰는 양 5-10g 생즙 또는 달임약 술을 담그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해도 생강은 수정과나 생강차가 으뜸이다. 생강차를 만들 때는 말려서 가루로 내거나 끓여먹는 방법이 있으나 생강차의 진미를 느끼려면 생것을 엷게 썰어 노란 설탕이나 꿀에 절여두면 진액이 우러나는데 그 진액을 성미에 따라 찬물이나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면 맵고 아리며 톡 쏘는 맛과 향이 일품일 뿐만 아니라 약이 되어 겨울 감기쯤은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감기는 너무 흔한 병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으나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병의 근원이 된다. 감기를 이길 수 있다면 대단한 약이라 할 수 있다.
열성체질, 임산부, 고혈압인 사람은 단방으로 장기복용하는 것을 금한다.
<艸開山房>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