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한국의 사찰 - 광주 무등산 증심사(證心寺)
증심사(證心寺)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에 속한 절이다. 1984년 2월 10일 증심사 일원이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무등산 등산객들의 입산 코스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광주 지하철 1호선 학동·증심사입구역과 여러 버스 종점지가 있다.
신라 헌안왕 4년(860년)에 철감선사 도윤이 처음 세운 절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선종 11년(1094년)에 혜조국사가 중수했으며[1] 1443년(세종 25) 전라도관찰사 김오(金傲)가 자신의 녹봉으로 낡은 건물을 다시 고쳐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지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다시 지었고, 그 뒤에도 개·보수를 거듭했다.
1951년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전화로 불에 타 없어졌다. 금동석가여래입상(당시 국보 제211호)과 금동보살입상(당시 국보 제212호)은 광주경찰서 금고로 옮겨 보관되고 있었으나 전쟁 중에 유실되어, 국보 지정도 해제됐다.
오늘날의 건물은 1970년에 크게 증축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웅전·오백전(五百殿)·명부전(冥府殿)·회심당(繪心堂)·학산장서각(鶴山藏書閣)·요사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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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이 517년에 세운 절로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1443년)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의 3대 선사가 4창(四創)했다고 한다.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五百殿)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 131호),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호), 범종각, 각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특히 오백전은 무등산에 남아 있는 사찰 건물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세종 25년)의 건물로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계통을 같이 하는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심포 양식으로 그 희귀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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