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of Objects
백종환 작가
글 : 김용권 (문학박사/겸재정선미술관 관장)
백종환 작가(1955년생〜)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0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비장한 마음, 뜨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전념해 오고 있다.
그 동안 그는 여주에 소재한 어우실 작업실에서 어떻게 하면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어떤 재료, 어떤 작업 방식이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는 이에 대한 물음을 밤낮없이 해가면서 실험적인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 그는 토속적인 향취가 담긴 ‘구운흙’을 재료로 선택,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타 작가와 크게 차별되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캔버스와 구운흙 그리고 물감의 만남, 그는 평면인 캔버스에 구운흙과 물감을 사용, 표현함으로써 아주 독특한 회화적 멋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이른바 그는 옹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흙을 도자기 가마에 구운 다음, 잘게 부수어 그 분말을 접착성 물질에 섞어 캔버스에 바른 뒤 그 위에 물감으로 여러 조형요소나 형상을 묘사해내는 방식을 선택,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1990년, 그는 ‘흙그림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흙의 아름다움을 회화로 접목시킨 캔버스형 도자벽화전’,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흙그림전’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물론 흙은 도자공예 작가와 순수 작가들의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이기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도기용 흙가루는 불에 구운 상태이므로 보통 흙과는 성질이 다르며, 그와 같이 구운흙을 캔버스에 붙여 조각 망치로 쪼아 내는 방식에 의한 결과물이기에, 일반 한국화나 서양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조형세계를 드러낸다.
나아가 그의 작업은 기존의 고정된 도자벽화를 회화로 접목, 이동이 자유로운 회화 도자벽화로 발전시킨 것이기에 또 다른 관점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기존의 도자벽화는 고정되어 이동할 수가 없고, 과도한 무게로 인한 위험성과 쉽게 깨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표현을 하는 데에도 극히 제한적이다. 백종환 작가는 이와 같은 단점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방향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기에 성공적인 작업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그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옛 작업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오고 있으며 이와 같은 그의 노력을 모두가 인정, 화단의 일급화가의 대열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2019년 9월과10월, 14번,15번째 개인전을 ‘Song of Objects’ 테마아래 신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이번 개인전은 두 곳에서 연이어 개최되었는데, 예비 전시는 베를린 미술관 부스 초대전(인사동) 신작 일부만을 선보였으며, 본 전시는 어우재미술관(여주)에서 본격적으로 그간에 작업해온 모든 신작들을 선보였다. 어찌 보면 이번에 선보였던 신작들은 앞선 13번의 개인전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내놓은 신작들은 구운흙, 아크릭물감 등의 재료사용과 캔버스에 두툼하게 바른 흙 바탕위에 기하학적 선과 자유곡선, 반타원형 등을 배치하면서 완성한 방식이라 앞선 제작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깊어진 그의 내공에 의한 표출, 이를테면 정신성이 더욱 깊게 침투되어 있고 조형성 역시 완숙미가 넘쳐흐르고 있기에 앞선 그의 작품들과는 분명하게 차별된다고 하겠다. 특히 조형적인 측면에서, 이번 신작들은 평면이지만 입체적 공간 미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과, 흙의 원초적인 색감에 오방색을 조화롭게 입혀 색채미를 돋보이게 한 것은 더욱 신선하고 새롭고 매력적으로 보여 진다.
물론 그의 신작들은 선사시대의 유물에 표현된 묘법과 20세기 추상작가들의 표현 수단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예컨대 그의 어떤 작품은 주술적 상징을 담은 신석기 시대 토기문양이나 청동기시대의 암각화 등의 표현양식과 닮아 있다. 또한 그의 어떤 작품들은 20세기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방식과 정신적 혼의 표현을 한 칸딘스키 그리고 근본적 조형원리를 탐구한 몬드리안의 추상회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신작들은 독창적인 작품으로 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조형요소는 앞선 시대의 그 어떤 전통 표현양식, 추상화 작가들보다도 은은한 조화를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형상을 드러내고 있어서 아주 인상적이다. 말하자면 그의 신작은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서정적, 향토성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엄함과 오색찬란한 화려함까지도 품고 있어서 회화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상과 같이 백종환 작가는 도자과를 졸업한 작가답게 그가 가장 잘 이해하고 또 잘 다룰 수 있는 테라코타 점토의 원초적 색과 질감에서 입체적인 공간과 회화적 미를 찾는 방식을 선택하여 모두에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공예개념과 순수미술 개념의 중간지점에서 일반 공예나 일반 순수회화에서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독특한 회화성을 보여주고 있기에 모든 관람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