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 집행 52년 만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른바 진보당 사건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이승만 정권의 조작이었음이 역사로는 물론 법적으로도 확인된 것이다.
뒤늦게나마 사법부가 잘못을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다. 마땅히 아프게 되새길 일이기도 하다.
조봉암 사형은 사법살인이었다.
재심 판결문이 밝힌 대로 그는 독립운동가였고, 농지개혁으로 경제체제의 기틀을 다진 정치가였다.
그에게 간첩 혐의를 씌운 것은, 그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저지할 수 있는 유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장택상·윤치영 등 강경 반공주의자들까지 그의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이승만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간인 수사권도 없는 육군특무대까지 사건 조작에 나섰고, 검찰은 공소사실도 정하지 못한 채 기소부터 서둘렀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 법을 허울 삼은 꼴이다.
권력은 온갖 압박을 서슴지 않았다.
1심 재판부가 간첩죄에 무죄를 선고하자 대한반공청년회를 자처한 폭도들이 대법원에 난입해 아수라장을 만들었고, 검찰은 변호인단을 구속하거나 신문했다.
사법부는 그런 겁박에 굴복했다.
간첩 혐의의 거의 유일한 증인이 2심에서 그동안의 진술이 허위라고 번복했음에도 법원은 간첩죄를 인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증거법칙이나 기본적 법리에도 어긋난 판결은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당시의 재심청구가 기각된 지 17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사법부가 권력의 사법살인을 눈감고 손까지 보태기 시작한 부끄러운 역사다.
비슷한 일들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권력의 필요에 따라 조작된 간첩 사건, 빨갱이 사건 따위로 희생됐다.
최근 재심으로 무고함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겪었던 수십년간의 고통이 다 씻어지진 않을 것이다.
사법부에도 과거 권력의 위협 앞에서 인권의 보루 구실을 포기한 책임이 크다.
지금도 정치적 목적으로 법을 남용하고 법원을 겁박하는 일은 한둘이 아니다.
반대세력을 좌파나 빨갱이로 매도하는가 하면, 정권을 비판한다고 억지로 기소하는 일이 이어진다. 이런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판사나 대법원장에게 위협을 가하는 보수단체도 있다. 역사 앞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되레 퇴행하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