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99 - 여성,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초모룽마에 오른 첫 여성 다베이 준코(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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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04. 04:36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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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여성,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초모룽마에 오른 첫 여성 다베이 준코(1975년)
요약 다베이 준코는 1975년 초모룽마에 여성으로서 최초로 올랐다. 1981년 시샤팡마 이외에도 몽블랑, 킬리만자로, 아콩카과, 매킨리, 엘브루스, 빈슨 매시프 등을 오르며 결국 일곱 대륙 최고봉을 다 올랐다. 평범한 주부였던 다베이는 여성 등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여성의 역사에 한 획을 긋다
몸집이 작아 체육시간을 싫어했던 다베이 준코는,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경험하고 나서 등산에 매료되었다.
1975년 5월 16일 초모룽마 정상에 두 사람이 올랐다. 한 사람은 네팔인 셰르파 앙 체링이었고 또 한사람은 놀랍게도 여성이었다. 그녀는 딸 하나를 둔 36세 주부 다베이 준코(田部井淳子)였다.
여성으로서 첫 초모룽마 등정자가 된 다베이의 결혼 전 성은 이시바시(石橋). 1939년 일본 후쿠시마 현에서 2남 5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몸집이 작아 체육 시간을 싫어하던 다베이가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이다. 담임 선생을 따라 나스야마 산에 오른 그녀는, 천천히라도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알고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다베이는 사회인 산악회에 가입했다. 거기서 일본 최고의 클라이머 요코오 고이치와 짝을 이루어 암벽 타기를 익혔으며, 역시 암벽 타기의 명수인 다베이 마사노부를 만나 결혼했다.
1969년 다베이는 일본산악회의 쟁쟁한 여성 등산가들과 만나 해외 원정을 가기로 했다. 목표는 안나푸르나 Ⅲ봉(7,577m). 1969년 7월 29일 다베이는 히라카와 히로코와 함께 안나푸르나 Ⅲ 정상에 올랐다.
1971년 일본산악회 여성 멤버들은 두 번째 해외 원정지를 초모룽마로 정했다. 힐러리가 초등한 지 20년이 가깝도록 아홉 팀밖에 오르지 못한 때였다. 네팔 정부로부터 입산 허가 통지가 오자 그들은 세부 준비에 들어갔다.
다베이의 생활은 이 때부터 온통 초모룽마 준비에 바쳐졌다. 두살 반짜리 딸아이마저 '에베레스트 마마상'이라고 부르며 "엄마, 에베레스트 힘들지?"하고 말할 정도였다. 그녀는 밤마다 달리기를 했는데, 처음 4km를 달릴 때는 5~6분만 달려도 몹시 힘들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자 8km로 늘렸고, 11월에 들어서는 하룻밤에 19km씩 달렸다.
일본 여자 등반대의 베이스 캠프는 1975년 3월 16일 5,300m 지점에 세워졌다. 산소가 평지의 반밖에 안 되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제1 캠프가 완성되기까지 그들은 14일간 길을 다지고 사다리를 놓는 등 건설 공사에 가까운 노동을 했다. 베이스 캠프와 제1 캠프 사이에서 고소 적응 훈련을 한 뒤 4월 8일 제2 캠프를 세웠다. 제3 캠프까지 닷새. 제4 캠프(7,600km)까지 전진하는 데는 열흘이 걸렸다.
5월 4일 밤 굉음과 함께 눈사태가 캠프를 덮쳤다.
"갑자기 꿍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엄청난 충격이 내 몸을 덮쳤다. 몸이 무엇엔가 눌려 짜부라지는 듯했다. 얼마쯤 지나 정신이 들자 간신히 오른팔을 움직여 목에 걸고 다니던 나이프를 찾아 텐트를 찢었다."
오전 0시 30분. 눈사태를 모면한 셰르파들이 잽싸게 눈더미를 치우고 텐트를 갈기갈기 찢어 다베이 등 다섯 사람을 구해 냈다. 다베이는 발목을 다쳤지만 사흘 만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큰 부상자가 없어 등반을 강행하기로 했다. 5월 10일 전대원이 제2 캠프에 모이자 대장은 최종 공격대로 다베이와 와타베 유리코, 셰르파 앙 체링을 지명했다.
제4 캠프까지 짐을 나르는 사이 셰르파 가운데 6명이 고산병에 걸렸다. 남은 셰르파로는 공격대 3명이 쓸 물자를 운반하기가 벅찼다. 공격대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다베이와 와타베는 서로 양보하다가 다베이가 등정하기로 결정했다.
5월 14일. 공격대와 지원대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제4 캠프를 출발했다. 오후 늦게 7,986m 지점의 사우스 콜에 닿아 제5 캠프를 세웠다.
5월 15일 일행은 8,500m 지점에 제6 캠프를 세웠다. 지원대는 짐을 내려놓자 모두 제5 캠프로 돌아갔다. 남은 사람은 다베이와 앙 체링, 두 사람은 텐트가 말려 올라갈 듯한 돌풍 속에서 눈을 녹여 홍차를 석 잔씩 마셨다. 다베이가 소변을 볼 때는 몸을 묶는 자일을 앙 체링이 텐트 안에서 잡아 주었다.
5월 16일. 새벽 3시 50분에 잠이 깼다. 커피를 석 잔씩 마신 두 사람은 5시 50분에 제6 캠프를 나섰다. 텐트를 나설 때 무릎까지 찼던 눈은 갈수록 깊어져 허리까지 찼다. 앞선 사람이 온몸으로 부딪치고 발로 밟고 무릎으로 다지며 나아갔다.
그러나 서너 걸음밖에 못가 심장이 터질듯 지쳐 교대하곤 했다. 3시간 반쯤 지난 9시 40분에 남봉에 닿았다. 꼭대기가 너무 뾰죽해 겨우 두 사람이 앉을 수 있었다. 비스킷 몇 조각과 초콜릿을 먹고 10시 10분에 그곳을 떠났다.
남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정말로 아찔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등성이로, 오른쪽이 중국 왼쪽이 네팔인데, 아차 실수하면 6,000m쯤 추락할 것 같았다. 내리막이 끝난 곳에 힐러리 침니가 있었다. 그곳을 올라 왼쪽으로 돌아서 다시 7m쯤 오르니 암벽이 끝나고 다시 급경사가 이어졌다.
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여서 이제 끝인가 하면 또 땅이 있었다. 얼마나 지쳤는지 다베이는 무릎을 겨우 1cm쯤밖에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달팽이보다 느리게 끌면서 몇 번이나 피켈에 기대 숨을 몰아 쉬었다. 몇 발짝 앞서가던 양 체링이 문득 멈춰섰다.
"다베이씨, 정상이에요!"
두 사람은 나란히 올라섰다. 피켈을 꽂고 나자 더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악수를 나누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었다.
다베이 여사는 1975년 초모룽마에 오른 뒤로 1981년 시샤팡마(8,012m)에도 올라 8,000m봉 두 곳을 오른 첫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또 몽블랑 · 킬리만자로 · 아콩카과 · 매킨리 · 엘브루스 · 빈슨 매시프 등에도 올랐다.
그녀가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하다는 남극 대륙 최고봉 빈슨 매시프(4,897m)에 오른 것은 쉰두 살 때(1991년)이며, 그 다음해에는 뉴기니의 칼스텐츠(4,884m)에 올랐다. 결국 일곱 대륙 최고봉을 다 오른 것이다.
다베이는 4년 뒤면 환갑을 맞는다. 하지만 지금도 열심히 산에 오르며, 힐러리 · 메스너 등과 함께 산악 환경 보호 운동을 벌이고 있다.
▼ 그 뒤 기록은 * 1991년, 1993년 / 인도 여성 경찰관 산토시 야다브 2회 등정 * 1995년 / 영국 주부 앨리슨 하그리브스 셰르파 · 산소통 없이 단독 등정(그녀는 1995년 K2봉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눈사태로 죽었다) ▼ 우리나라의 기록은 * 1993년 / 대한산악연맹 여성원정대 지현옥 · 최오순 · 김순주 등정 [네이버 지식백과] 여성,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 초모룽마에 오른 첫 여성 다베이 준코(1975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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