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상업에 많은 투자(?)를 해서 국제적인 무역항인 벽란도를 비롯해서 여러 무역항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는데요
왜 조선시대에 들어서 고려시대의 상업정책(?)를 포기하고 고립적으로 갔는지(공,사무역이 있긴하지만.......)
국가재정에 많은 이익을 얻을수 있을것 같은데 왜 굳이 농사만 -_-; 집중적으로 하라고 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지방세력의 재정증대로 반란의 위험이 있었는지 -_-;??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조선과 달리 북방세력때문에 대규모 전쟁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많은 군자금이 필요했을텐데
이것이 어떻게 보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몽고가 고려의 해상세력을 억제하기위해 많은 압박을 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때문에 고려말에 상업이 뒤떨어 졌는지도 궁금합니다
조언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상업이란건 잉여생산물을 교환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현대이전의 국가간 무역품은 대개 사치품이죠. 사치품을 파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무역을 하기 위해서 만들거나 살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선 막대한 노력이 들어가고 그 만큼 식량생산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서민들은 그만큼 더 힘들어지죠. 따라서 민본주의 조선에서 최대의 국책사업은 농업이고 농업인구의 유출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상업을 억합하게 되고 농업정책면에서 조선은 상당히 성공한 국가입니다.
이것도 논문감이긴 한데-_-;; 몇가지 가볍게 썰을 풀어보자면 첫째. 농업이 상업보다 평균적 소득의 지표를 매기기 쉬워 징세하기 쉽고. 둘째. 본문중에서 지적했듯이 지방세력이 돈을벌어 그 돈을 기반으로 중앙에 개기는것을 막을수 있고. 셋째. 이스님의 지적대로 고려말의 무역구조는 물건은 지배층이 쓰고 돈은 피지배층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무역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정도전을 위시한 신진사대부 세력은 억상정책을 통한 민생안정(=정권안정)을 실시했습니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문재중 하나인데 기존 지배층중 조선에 비타협적인 세력의 대다수는 상업이 돈줄인 사람이었으므로 억상정책을 통해 돈줄을 차단할수 있습
니다. (물론 토지겸병으로대 농장을 소유한 권문세족도 많았지만) 고려의 왕족인 왕씨부터 중계무역으로 세력을 쌓은 토호세력이 그 근본이니 말입니다. 일단 생각나는건 이정도군요. 여러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힌 복잡한 문제라서 말이죠;; 뭐라고 단언하기는 힘듭니다.
대항해시대4에서도 조선은 그닥 별볼일 없는 항구만 있었죠..ㄷㄷ 온라인버젼에선 어찌 나올런지...
한성 나름대로 좋았습니다만..인삼도 있고.. 장안항이랑 장기항이 대박이라 그렇지;
더해서 또하나의 결정타가 삼포왜란입니다. 이후 후속조치로 항구까지 폐쇠되어 버려서(차후에 다시 열리긴 하지만...) 무역이 침체기를 맞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해상 세력에 대한 반감이 급증했죠. 그이전까진 세 항구를 통해서 무역선들이 많이 드나 들었습니다.
무장공비님이 말하신 3개도 중요하고요 또 명나라를 보자면 명나라도 해금령을 했잖아요. 즉 조선이 아무리 무역하고싶어도 명이 싫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냥 조공무역이나 해야죠.
답변감사드립니다
사실 조공무역으로 이익도 많이 얻었죠 그중 조선이 제일 많은 이익을 얻었던게 태종때 말 무역이었죠 선불로 무려 원금의 10배나 되는 가치를 받고 명나라 사신이 닥달하는데 늦게 줬지요 이것 때문에 명나라 애들이 신하들에게 뇌물까지 쓰고 ㅡ.ㅡ;;
18세기 쯤되면 다시 상업이 융성하기 시작하지요 ^^ 국사책에 보면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