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준비하다
사랑과 관련된 수많은 격언이 있습니다. 여백을 채우는 사유에서 비롯된 철학자들의 고상한 문장으로부터, 큐피드의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명중하는 드라마 명대사들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강렬한 지, 혹은 성찰하게 하는지와 별개로, 내게 있어 손꼽을 만한 말은 "첫사랑은 반드시 실패한다"입니다. 그리고 살수록 점점 더 수긍하게 되는 게 진정한 격언의 진가이듯, 이 역시 그러합니다. 인격적으로 미숙할 때, 즉 아직 "사랑"이 무언지,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재할 때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게 첫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법칙이든 예외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커플이라도 모름지기 한 번쯤은 큰 부침이 있었을 것입니다. 미숙함을 탈피하여 "사랑"이라는 개념을 재해석하는 시기가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나 역시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꼭 이성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첫사랑도 있을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자녀"가 그러합니다. 똑같이 "사랑"이란 말을 붙이지만, 이성을 향한 사랑과는 전혀 결이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하는 사랑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첫째 아이를 향한 사랑이 더욱 그러합니다. 첫아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와는 달리 아이는 몸도 마음도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들 간의 사랑과 달리, 아이를 향한 사랑 방식의 유효 기간은 고작 6개월 정도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첫째에게 더 엄격하게 대했던 것 같습니다. 급변하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너무 벅차기에 말입니다.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자신 없음이 엄격함을 드러났습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아마 이러한 첫사랑의 딜레마 때문에 조부모들이 손주들을 그렇게 예뻐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생명이 귀엽기도 하지만, 결국 자식들에게 향했던 첫사랑의 아쉬움 때문에 더욱 그리 대하게 됩니다. 누가 대상이든지, 첫사랑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모릅니다. 그래서 헤맵니다. 그러나 그런 미숙함과 실패를 거쳐야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주고받는 자리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를 향한 사랑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또 있습니다. 내가 계속 이 아이를 사랑할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변화가 두렵기는 하나, 가끔은 그 가운데 예측 가능한 변화들도 있기에 나름 준비하는 게 있습니다. 막 십 대가 된 첫째 아이에게는 조만간 예고 없이 "사춘기"가 찾아올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곧 데프콘 발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난리를 치더라도 받아 주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그건 아이의 인격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물론 또 다른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사춘기가 지나가면 또 다른 사랑인 아내의 "오춘기"가 오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갱년기" 말입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또 다른 사랑의 대상들이 있습니다. 내가 목양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지난한 사랑의 과정을 거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어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아도 이들은 나를 외면할 수 있음을 알기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상처가 너무 크면 다른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는 여러모로 사랑의 지혜를 찾고, 연습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사랑이 참 사랑이 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