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가 헌책방에서 혼불을 사왔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니까, 먼저 읽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새벽이가 작년에 나한테 지어준 별명이 <무식이>였다.
그래서 올해는 <무식이 탈출~ 원년!> 구호를 외치며 새해를 맞았다.
그래, 올해는 대하장편소설도 도전한다.
ㅋ언제 다 읽을지는 미지수지만.
2012. 5.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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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찬 사람이었네. 손도 찼지. 그래도 내 맘에는 발이 더 찼던 것 같구만. 아마, 손은 아무래도 좀 움직이고 발은 가만히 두어서 그랬던가……. 속에 있는 말이라고 입 밖에 잘 내는 사람도 아닌데, 발이 시리다고 몇 번 하데. 나는 몸이 다순 사람이라, 손으로 두 발을 감싸서 한참을 녹여 주면, 부끄러워 말은 못허고 얼굴만 숙이고는, 그만허시지요, 인제 다수어요, 그것이 전부라……. 한번은 그런 일도 있었지. 잠결에 깨서 돌아보니 이 사람이 저쪽 끄트머리 자리에 등을 돌리고 누웠어. 잔뜩 오그리고 돌아누워 있길래, 어디가 불편한가 걱정이 돼서 깨웠지 않았겠나. 그 사람이 그때 허는 말이, 날도 차운데, 행여라도 잠결에 자개 손발이 나한테 닿을까 봐 그랬다는 게야. 허, 참. 그 사람이 가고 나서는, 이따금씩 그때 생각이 나. 무심한 사람. 얼은 손발로 얼마나 먼 길을 그렇게 웅크리며 가고 있는고……. 나한테 찬 기운 안 끼칠라고 그렇게 서둘러 갔는가."
그러면서 한숨 끝에
"이렇게 앉었다가도 문득, 손 안에 잡히던 발이 서늘하게 전해져 오네. 그럼 그냥 전신이 식어드는 것 같아서."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 최명희 『혼불 1』 (한길사,1996)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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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한 물 속에서 배암과 홀레하여 낳는다는 가물치, 그것은 실제로 방죽 옆의 나무에 기어 올라가, 그 가지 끝에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퉁, 퉁, 떨어진다는 신묘한 물고기가 아닌가.
깊은 밤 정적 속에서 장단 맞추는 소리처럼 쿠웅, 쿵, 울려오는 난데없는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린다지.
"가물치 승천 헐랑갑다."
어른의 팔뚝만큼씩 한 것이 짙은 암청갈색 검은 빛을 띠는 등허리에 가로 한 줄로 무늬가 놓여, 등 지느러미 양쪽으로는 여덟 개의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는 가물치의 저 허연 배, 돌이 지난 애기보다 더 무겁고 크고 탄탄한 그것은, 평순네에게는 평생에 한 번만 먹어 보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간절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청호의 물 밑바닥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노닐던 가물치며 조개바위와 더불어 노니는 물고기는, 붕어새끼 한 마리일지라도 다치지 않는 것이, 이십여 년 동안 문중과 인근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지켜져 온 불문율이었다.
그러니 그 속에서 건져온 가물치라면, 산삼 못지않은 보약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가물치.
평순네는 입에 침이 돌았다.
지금까지 평순이를 비롯하여 연년생으로 자식 여섯을 낳는 동안 단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가물치였다.
산모에게 그렇게 좋다는 것을. 크고 기름진 것은 그만두고라도 새끼 한 마리조차 고아 먹어 보지 못하였다. 그것을 어찌 감히 꿈에라도 언감생심 맛볼 수가 있었으랴. 풀뿌리를 삶아 먹을망정 굶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
"옹구네 재주도 참말로 좋네잉? 이 밤중에 맨손으로 어디 가서 그렇게 귀헌 가물치를 잡어 온당가아?"
[…]
"던지러라. 누가 그께잇 노무 가물치, 먹고 자퍼서 환장헌 줄 아능게비. 그거 온전한 거이 아니라, 농막에 가서 치매 걷고 얻어 온 거인지 내가 머 몰르께미?"
"허엉."
옹구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팽팽하게 약이 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신 챙견이여? 헐 일도 잔상도 없등갑다. 내 몸뗑이 갖꼬 내 밥 벌어서 새끼랑 먹고 살겄다는디, 누가 왜 나서서 간섭이셔?"
"하앗따야. 자식 생각 한 번 오지게 잘했다. 더러운 노무 거 부정 타서 나 같으먼 자식한티는 못 멕일 거이다."
"부정을 타도 내가 탈 거잉게, 걱정을 말드라고오."
"늙어감서 그거이 먼 짓이여? 동네 사람 남새시럽게."
"그런 소리 말어. 썩어 죽으면 흙 되는 노무 인생. 수절헌다고 누가 열녀문을 세워 준다등가? 그것 다 속절없는 짓이라고. 나 같은 상년의 팔짜에 과부된 것만도 원퉁헌디, 거그다가 소복 단장허고 그림자 맹이로 앉어서 지낼 수도 없는 것을, 무신 수로 뽄 냄서 산당가아? 수절 열녀, 그거 다 양반들이 매급시 뽄 내니라고 그러능 거이여, 머. 내가 무신 인월마님이간디? 누가 나를 멕에 살려준대? 인간의 한 펭상, 구녁으서 나와 갖꼬, 구녁 속을 들락날락허다가, 구녁 속에 파묻히는 거이여. 벨 것 있는지 알어? 곰배팔이 영갬이라도 있는 사람은 천방지축 등불도 없고 질도 없는 이런 년의 팔짜를 귀경험서, 헤기 좋은 말이라고, 되나캐나 넘 말헐 재격이 없다고오."
옹구네는 탄식조로 오금을 박아 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핑하니 들어가 버린다. 보란 듯이 머리에다 함지박을 떠받쳐 이고.
- 『혼불 2』, 2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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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 혼불 (한길사,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