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윤현수
개구리 울음소리가 매미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생겨난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이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시골집 마당에 들어서면 무성한 풀이 우리를 반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머니를 부른다. 인기척이 없다. 잠시 불안감이 휩싼다. 다시 한번 ‘어머니’라 부르니 그제서야 “누구야” 하신다.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인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아 못 들으신 듯하다.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자신감을 잃고 바깥세상을 멀리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매우 총명하고 활동적인 분이셨다. 농삿일을 하면서도 마을회관의 살림을 도맡아 하셨고, 이웃들의 전화번호는 물론 생일까지도 기억하시며 챙기시곤 했다. 밭을 맬 때도 남보다 앞서서 매고, 설거지도 어머니의 손을 거친 그릇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자주 깜박거리던 어머니를 모시고 간 시골병원에서, 어머니에게 “치매에 걸리셨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망연자실하셨다. 그 후 모든 기억을 단번에 잃어버리고 불안감에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치매”라는 단어는 어머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병명이었다. 외할머니의 치매 증상을 보면서 제일 나쁜 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외할머니가 식사한 그릇에 변을 보기도 하시고, 집을 나가서 스스로 찾아오지 못한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 지금처럼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전 일이었다. 농삿일이 바쁜 때라, 식구들이 밭으로 갈 때면 외할머니의 방문을 밖으로 걸어 두었었다. 그럴 때도, 어머니는 “시체 잃어버리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시던 어머니와 함께하는 운동은 산책하는 일이다. 운동하시자고 밖을 권하면 단호히 거절하신다. 병원 가는 일 외에는 집 안에서 나오지 않으신다. 이웃의 일을 당신의 일처럼 걱정하시고 안타까워하셨다. 지금은 밭에 무엇이 심어졌는지 누구네 모가 더 자랐는지, 새싹을 티울 때도 곡식을 영글게 할 때도 관심이 없다. 아마도 힘에 부치는 농삿일을 인내로 하신 것이 강한 반작용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어머니는 “나는 아무것도 않해” 하신다. 그럴 때면 우리는 평생 하실 일을 미리 다 하셔서 이젠 안 하셔도 된다고, 식사 잘 하시고 화장실만 잘 가시면 된다고 하지만, 당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쳐다보면서 얼마나 답답하실까?
어머니는 다시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재치있는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의 병명은 알츠하이머이며 이런 증상을 치매라고 하지 않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기억을 다소 되찾으셨다.
일어나기 조차 버거워 뒤뚱거리면서도 우리가 가져갈 물건을 못 찾겠다 하면 벌떡 일어나 목표지를 향해 잰 걸음으로 걷는 모습이 눈물겹다.
자식을 주기 위해서 쉬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가 광 문을 붙잡고 서서 가져갈 것을 하나하나 챙기며 싣으라 하실 때는 평소와 너무나 다른 모습에 놀란다. 어머니를 어떻게 밖으로 나오시게 할까 궁리하다가 “어머니 어디 있는지 못 찾겠어요”하면 곧장 일어나 목표물을 향한다. 노구를 이끌고 바로 직진이다.
세월의 변화를 누구도 막지는 못하지만 자신감을 가지면 몸도 조금씩 동의해주는 듯하다. 마음에 따라 조금은 늦출 수 있을 것 같다.
태어난 존재는 세월이 가면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집착을 버리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