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안경
박연숙
나이가 드니 병원갈 일이 잦아졌다. 몸 곳곳이 돌아가면서 말썽을 부린다. 머리가 아파서 겨우 나으면 다리가 아프고, 다리가 나을 만하면 이가 아프다. 이가 괜찮아지면 또 눈이 아프다. 특히 요사이 나를 힘들게 하는 친구는 눈이다. 내 눈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고 나와 같이 이 꼴 저 꼴 다보고 사느라 지쳐서 많이 피곤해하고 고통을 호소한다. 오늘 건강검진을 했다. 교정시력이 두 쪽 다 0.8 이라고 한다. 나를 보좌하느라 더 나빠진 눈에게 미안하다. 이런 희미한 눈으로 살아가니 세상을 더 멀리, 더 깊게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항상 미세먼지가 가득한 흐린 날의 풍경처럼 근시안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만 보게 된다.
내가 안경을 쓰게 된 건 고3 때다. 키가 아담해서 앞에서 셋째 줄에 앉았다. 어느 날 칠판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옆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잘 보인다는거다. 그 길로 나는 안경쟁이가 되었다. 나의 첫 안경은 지금 유행하는 연예인 안경처럼 완전 동그란 노란 뿔테안경이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두 칠판을 빽빽하게 판서하시면 한 시간이 끝나는, 별명이 ‘두 칠판’ 인 담임 선생님의 수학시간에만 안경을 착용했다. 유난히 깨알같이 작은 글씨와 골치 아픈 수학문제로 눈의 피로도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나의 안경은 나의 두 귀에 걸려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꼈다 벗었다 하니 잃어버리기도 여러 번, 떨어뜨려서 부서지기도 여러 번 하면서 안경은 가방 속에 들어있는 날이 더 많았다. 밤에 시내버스 번호를 인식 못해 불편하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지나가는 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쌩하고 지나가다 인사성 없다고 욕도 먹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눈이 그나마 창의 역할을 그런대로 감당하고 있어서 눈의 소중함과 안경의 고마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냈다.
한 이년 전부터 눈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찝찝함과 뭔가 콕콕 찌르는 통증과 건조함으로 눈을 자주 비볐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면 눈물이 났다. 인공눈물을 자주 애용하게 되고 안과 출입이 잦아졌다. 안 그래도 읽기 싫은 책인데 요즘 출간되는 책들은 대체로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기가 힘들다. 약 설명서도 화장품 설명서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요즘에는 커다란 볼록렌즈와 안경이 내가 글을 읽고 쓰는데 크게 도움을 주는 떨어질 수 없는 문방이우文房二友가 되어 버렸다.
다촛점 렌즈가 좋다고 하지만 20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적응을 못한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땐 높이 측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을 잘 못 디뎌 간이 철렁 할 때도 있다. 요사이는 라식이나 라섹 수술이 있는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막을 깎는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찌릿찌릿 전율이 느껴져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그냥 아날로그 방식으로 흑백영화처럼 덜 선명하지만 심도 있게 보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젠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안경이 되었다. 요사이 나는 나의 소중한 눈에게 푸른 숲과 파아란 하늘도 보여주고 충분한 수면으로 휴식을 주려고 애를 쓴다. 늦었지만 영양제도 부지런히 선물한다. 무엇보다 안경을 열심히 애용한다. 눈이 밝아서 세상의 이것 저것 다 보고 사는 것도 좋지만, 밝은 눈으로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사는 게 우리들의 삶이기도 하다.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엔 부처만 보인다니 세상과 주변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환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의 안경 하나쯤은 가지고 살면서 자기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
2018. 6. 23
첫댓글 안경과 함께한 삶의 진솔한 고백을 통하여 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는 군요.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 인줄 알면서도 관리는 소홀히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부터 눈을 혹사하지 않고 고령에 접어든 눈을 잘 대접해야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눈 친구 그대, 정말 그동안 고생했어!"라고 말해 주면서 말입니다. 좋은 글 음미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안경에 얽힌 이야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세상이 밝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참 좋은 물건인데 여간 섬세하지 않고는 다루기가 만만치 않은 물건인것 같습니다.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안경에 신세를 져야할 경우가 더 많아지는데 걱정이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내구연한이 가까워온 기계처럼 구석구석 고장이 납니다. 어쩌라 수리해가며 쓰는데로 쓰면서 살아가야지요. 세상을 바로보며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며 참다운 삶을 일깨워 주는 마음의 안경 또한 좋은 안경이라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들의 몸은 점점 쇠약해집니다. 어릴때 안경을 끼면 이상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것에 순응해야 합니다. 마음의 안경이란 말에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으로 본것은 느낌과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보면 그게 바로 마음의 안경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 해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교정시력이 0.8이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 들어서 시력에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안과 선생님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늘 편안하게 재미있게 보내세요.
안경이 외형의 물상을 선명하게 보이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면 마음의 안경은 타인이나 대상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도록 도와 주어 더 밝은 세상,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주겠지요. 안경은 시력이 안 좋은 사람만 사용하지만 마음의 안경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 더더욱 요긴하고 소중한 안경이겠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마음에 안경 가슴에 닿는 글이 있습니다. 강영우 박사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께서는 깜깜한 밤에 불이 없어도 우리에게 성경과 동화책을 읽어주십니다. 실명인 강영우 박사 중학교 때 모성적인 사랑으로 다가온 대학생인 누나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자서전을 읽고 마음에 안경이 얼마나 중한지 감명받았지요.아버지처럼 눈이 불편한 사람을 도우기 위해 미국최고의 안과의사가 되었다는 아들의 효심은 만인의 눈을 고쳐주는 세계적인 리더의 안과의사 라고하니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눈을 혹사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눈 뜨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면서도 눈 관리에 소홀하기도 합니다. 정기검진도 하고 눈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의 안경은 사물을 선명하게 보기 위한 도구라면 마음의 안경은 나의 내면을 뚫어보기 위한 안경입니다. 안경을 닥고 손질하듯 마음을 갈고 닦는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자기 번성과 교훈이 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현직시절 왜곡된 마음의 안경을 가진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마음의 안경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마음의 안경은 나의 또 다른 눈이기에 잘 다듬고 닦아가야 할것 같습니다.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