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아이 엄마
보릿길(박정애)
유월도 하순에 접어들었다. 지하철 손님들도 더위를 쫓으려고 시원한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유난히도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평소에는 젊은이들이 앉지 않는 노인석에
자주 앉았다.
오늘 나는 노인자리가 아닌 일반 좌석에 앉았는데 맞은 편에 앉은 돌이 금방 지날까
말까 하는 아기를 데리고 젊은 엄마가 앉는다. 띠를 풀고 아이를 내려놓으니 아이가 벙실벙실
웃는다. 제법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아이는 연신 두리번 거리면서 낯선 사람들인데도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는다. 낯설어하지 않고 잘 웃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이렇게
밝고 아름답구나! 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도 무척 밝고 행복해 보였다.
한 역을 지나자 대여섯분 남자 노인분들이 맞은 편에 앉으신다. 출발역에서 세 번째 역이라
텅 빈 자리가 많아 내 옆자리에 주욱 함께 앉으신다. 노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는 또 웃는다.
젊은 엄마가 아이를 보고 0 0 야 너도 집에 가면 할아버지 계시지?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듯 웃음을 답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안길 듯이 손을 벌린다. 할아버지가 연신 웃는 아이에게
악수를한다. 다음 역에 정차하자 마주보고 아이를 어루던 한 할아버지가 일어나 아이에게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또 한 할아버지가 악수를 한다. 세 분이 아이에게 악수를 하시기에 내 마음속으로 약간 불안했다.
요즈음 아이와 눈길만 마주치게 해도 아이 엄마들은 싫다고 한다는데 연이어 세분이나 아이가 이쁘다고
아기에게 악수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모습이 혹시 아이를 안고 자리라도 옮길까봐 초조함이 들었다.
물론 엄마의 밝은 모습을 보고 악수를 하시겠지만 그런데 내 불안은 기우였다. 아이의 엄마가 미소를
지으면서 목례를 했다.
아이의엄마가 보여준 보기드문 신선함이 나를 옛날로 이끌어 주었다. 연년생을 키우면서 큰애가
네 살쯤 되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할부지요, 할머니예, 하고 불렀다.
어른들을 모시고 사느냐고 꼭 물으시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분들이 오늘 이 노인들게
클로즈엎 된다. 어른을 모시지도 않았고 아이들에게 푹 사랑을 주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친정으로 큰댁으로
이웃 할머니 집으로 남의 손에 자랐다. 정이 그리운 아이는 누구든지 이쁘다고 하면 덥석 안기고 업히기도 잘 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낯을 가리지 않아 누가 데리고 가도 따라가겠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내 아이에게 밝은
모습을 맘껏 받아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한 단지 안에 살았던 손녀들에게 맘껏 주다가 손녀가 이사를 간 후
손녀 또래의 아이들이 귀여워 말을 걸다가 보니 엘리베이트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꼭 인사를 한다.
남편이 내가 아기를 이쁘다고 하면 부탁이 엘리베이터에서나 아파트 마당에서 남의 아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란다. 젊은 엄마들이 싫어한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
엄마들이 오랫동안 낯이 익어 엘리베이트에서 만나면 방긋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이런 이웃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뉴스만 보고 너무 지나치게 경계하면서 살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혼족으로 진화된 삶이 바뀌면서 가족관계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내 가족에서 재외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나고 돌아보면 우리가 젊었을 적에도 어른들은 요즈음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소리를
직접 간접적으로도 많이 듣던 단어다. 그 옛날 세대도 역시 그랬으리라는 짐작도 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주고 반기는 손자 손녀들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남의 손자 손녀지만
벙글벙글 웃는 모습은 내 손자 손녀의 웃음과 다를 바없다. 이 마음을 충분히 받아준 새댁을 만나 하루가 즐거웠다.
6월 23일
첫댓글 정말 훈훈하고 아름다음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사랑을 많이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란다는 걸 아는 새댁이지요. 그리고 그 새댁도 사람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한 저도 길에서나 지하철에서 아기를 만나면 너무 예뻐 한번씩 얼러주기를 하는데, 아기와 아기 엄마가 같이 웃어주면 마음이 아주 따뜻해졌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라지요. 그러나 이제는 지하철이나 어디서나 그런 아이를 만나도 함부로 손을 내밀 수 없는 세상이라서 그냥 마음만으로 끝나고 맙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세상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정을 표현할 수 없는, 그냥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세상이라서 안타깝네요.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들의 손길에 자란 아이가 자라서 효도를 잘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될려는지 요즘 젊은 일부 엄마들은 노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뿐더러 아기들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싫어 하는것 같습니다. 남여노소가 한마음으로 소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잘읽었읍니다.
자기 아이에게 악수를 하면 싫어하는 새댁도 있습니다. 혹시 나쁜 병이 옮기지 않나 해서이지요. 그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조심해야 되는데, 이 글에 나오는 새댁은 마음이 후덕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구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 시점에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전 세대에게 환영받을 일이지요.. 조부모님의 사랑과 손길도 아이 양육에 꼭 필요한데... 선생님께서 그려주신 지하철의 훈훈한 풍경은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많이 태어나는 나라는 부강한 나라입니다. 출생율이 저조하여 부모의 과보호로 요즈음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하나 가정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기 엄마가 마음이 아름다우신 분이네요.
지금의 선생님의 후덕한 모습을 보면 선생님도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였음을 충분히 알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 아기의 웃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 아기와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우리는 참 어려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아기의 방실거리는 웃음을 어여쁘게 보시고 지하철 안의 광경을 좋은 글로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하철에서 어르신과 아기와의 악수가 아주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지금 세상입니다. 새댁같은 마음을 가진 엄마가 아니면 조금은 싫어하는 엄마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새댁의 푸근한 마음씨를 닮은 젊은 엄마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온실에서 키운 꽃을 더 좋아하는 세상에 야생화의 가치를 아는 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웃는 모습과 할아버지들의 귀여워하는 모습이 선 합니다. 그 분위기를 의연히 받아들이는 애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방실웃는 아이 얼굴을 보면 같이 웃으며 바라보기만 합니다. 어쩌면 대부분 지하철 엄마와 같이 예쁜 마음을 가진 새댁들이 훨씬 많은데 몇 몇 사례들이 아름다운 소통을 차단하게 하는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흔히 볼수있는 지하철 광경도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의 안경에 포착되면 좋은 글이 되나봅니다. 미소지으며 읽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불러들이기의 법칙' 이란 말 맞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보릿길 같은 분이 둥글둥글 선하니 주변에 그런 사람들과 만나는 것 아닐까요? 나를 돌아보면 낯가림 심하고 편식하고 매정스럽고....이런 편이어서 나와 남을 불편하게 했어요. 다행히 수명이 길어 백발이 되니 자꾸 부드러워 질려고 애쓰고 글도 그렇게 쓰려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