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열 번째 소극적 표지: 찬송을 열심히 부름
사람들이 가진 신앙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앞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사실로는 그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것은 방금 위에서 진술한 내용인 신앙적인 일에 외적으로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에도 포함되어 있고, 더 앞에서 다룬 내용에도 암시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싶어하며, 자신들의 입을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게 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라고 권면하고 싶어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감정이 은혜롭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 나는 이 부분에 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듯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을 반대하는 논거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위에서 살펴보고 입증한 내용 즉 은혜를 받지 않고서도 사람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고조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며, 그들이 체험하는 감정이 강해지면 스스로 감화받은 일들을 매우 진지하게 많이 말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은혜로운 감정에 모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사람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듯하다는 사실 역시 그 사람을 지지하는 논거로 합당하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그런 실례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 사릴은 더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시고 기적을 행하실 때에 함께 했던 군중 가운데서 우리는 종종 이런 실례들을 접하게 된다.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했다하더라”(막 2:12). 마태복음 9장 8절과 누가복음 5장 26절도 마찬가지다. 마태복음 15장 31절은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고 말씀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일으키셨을 때에도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눅 7:16). 또한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거나 그를 극도로 칭찬하는 것을 읽게 된다.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묵 4:15).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직전에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찬양했는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더라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뒤,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을 때,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행 4:21) 등의 말씀을 읽게 된다. 안디옥과 비시디아의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거부하시고 대신에 이방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크게 감동되어,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그렇게 한 모든 사람이 참되게 믿은 것은 아니었고 오직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이 믿었다. 그것은 다음 구절에서 암시되어 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마찬가지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에서 하나님의 찬송을 불렀으나, 곧 하나님이 능력으로 행하신 일을 잊어버렸다. 에스겔 시대의 유대인들도 입으로는 많이 사랑했으나, 그들의 마음은 자신의 이욕을 좇았다. 거짓된 신앙고백자들과 믿음의 진정한 원수들이 하나님을 담대하게 찬송할 것을 예언했다.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좇아 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사 66:5)라고 말씀한다.
소망과 위로 가운데 무가치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자비하심 때문에 감화되어 이 값었는 은혜를 크게 높이며 찬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은혜로운 감정이 있는 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 여전히 교만하고 하나님께 적개심이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하나님에게 특별한 친절을 받았다고 생각할 대에는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외치고 그들에게 값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높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사울처럼 자신의 무가치함을 확신해서도 아니고, 어떤 높은 원칙에 근거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꺾이지 않은 교만과 다윗에 대한 적개심이 여전했던 사울은 비록 왕이었지만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라고 크게 외치면서(삼상 24:16-19; 26:21) 자신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다윗을 위대한 감정과 존경심으로 찬양하며 높였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가 보고 경험한 하나님의 섭리에 크게 감동하여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고 하늘의 왕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다리오도 크게 감동을 받았을 때 모든 열방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했다(단 3:28-30; 4:1-3, 3:34-35, 6: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