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일 오늘은 배둔 공소에서 우리 가농 분회원들과 함께 분회 모임 공지 연락을 받았읍니다.
우리들 생활이 前 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도 해도 늘상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배둔공소에서 미사시간을 마치고 모임을 갖기로 한 것 같아요.
나의 가농 초창기에는 정열과 정의로 뭉쳐져 뒤에서나마 물대포의 맛도 보기도 하였지요.
가끔은 부마사태때의 매캐한 최루탄 맛과 混用(혼용)된 기억도 오락가락하기도 해서, 누군가처럼 맞지않는 프로야구 시간을 기억하는지도 모르죠.
진주의 폐쇄된 성당內에는 우리들의 정의를 잊지않기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요.
하지만 이제 동지들은 하나 둘씩 조직을 떠나고 그나마 돈이 되는 사람만 남아 있읍니다.
저는 짝때기 짚고 다니는 몸이 다소 불편하기에 케어 받는 상황이 편하기는 합니다.
간혹 같이 먹을 시간에도 飾貪(식탐) 많은 사람이란 인식을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읍니다.
가농의 조직內에서는 마치 그나마 남아있는 빵 조각을 뺏기지 않을 노인처럼 행동하고 있지요.
일 前의 정책포럼에서 300평 기준의 농업이 취미農인가 경제農인가의 구분이 애매해서 질문한 기억이 떠 올랐읍니다.
이제 나의 처지는 확실합니다.
나의 농업은 죽기前까지 생존을 위한 생존농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