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보시
내가 여가 시간에 즐겨 하던 게 책읽기였다. 그런데 근래 노화의 징후인지 한참동안 책을 들여다보면 눈이 침침해 온다. 한두 시간은 괜찮으나 반나절이나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는 것은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서 가까운 시립도서관을 찾아 진득하게 자리 눌러 앉아 본 적이 오래 되었다. 그냥 읽기 매체는 새벽마다 현관에 닿는 아침신문이나 펼쳐보는 정도다.
내가 책읽기 다음으로 즐겨하는 게 걷기다. 근래는 힘 부쳐 높은 산은 오르지 못하고 들녘이나 강둑을 걷는 정도다. 그간 봄이 오는 길목에 여기저기 나가 걸었다. 집으로 돌아볼 때 빈 배낭엔 쑥을 캐서 채워오기 일쑤였다. 우리 집에선 올해 들어 벌써 쑥국을 몇 차례 끓여 먹었다. 냉장고 야채 칸에는 내가 캐 와서 가려둔 쑥이 두어 번 국으로 끓여먹을 양이 저장 보관되어 있다.
일전 집사람에게 반송시장 노점 할머니를 사귀어 놓아야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내가 캔 쑥을 그 할머니에게 보내서 팔게 하고 싶다고 했다. 쑥이야 인적 드문 곳에서 캐기에 다른 사람 구설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년 사내가 그 쑥을 처리하느라 시장바닥 펼쳐 놓고 팔기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모양이 좀 어색하지 싶었다. 그래서 노점 할머니한테 안겨주려는 뜻이었다.
봄방학 이월이 가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음력으로는 이월 초하루였다. 아침나절 집안에서 느긋하게 지내다가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식후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봄이 오는 이맘때면 으레 어디 높은 산자락으로 오를 겨를이 없다. 우리 집에선 이미 한겨울에도 냉이와 달래와 쑥 향기를 맡은 지 오래다. 근래 볕바른 산기슭이나 들녘에는 겨울을 난 쑥이 부쩍 많이 자라고 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주남저수지를 둘러 대산 들녘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가술에서 수산다리 입구를 지나 종점 신전마을까지 갔다.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신전마을 안길을 걸어 본포 방향으로 차도를 따라 걸었다. 상옥정마을 못 미친 들길에서 강둑으로 나갔다. 들녘 논에는 연근을 캔 흔적이 보였다. 연근은 굴삭기를 동원해 논바닥을 파헤쳐 캤다.
비닐하우스단지에는 풋고추와 감자를 가꾸었다. 풋고추야 시설 원예작물로 흔히 키웠다. 그런데 감자는 좀 의외였다. 강변 사질 충적토양이라 물 빠짐이 잘 되고 기름져서 감자농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벼를 거둔 논에다 겨울 뒷그루로 비닐하우스 안에서 감자를 키웠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인데도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감자 잎줄기는 아주 무성했다. 곧 그 감자를 캘 때가 되지 싶었다.
비닐하우스 곁 경작지는 봄 감자를 심으려고 이랑을 지어 비닐멀칭을 해두었다. 그 논을 지나 강둑 근처로 나갔다. 본포와 수산 사이에 있는 낙동강 제방이었다. 가까이는 대산 강변여과수정수장이었다. 얼마 전 본포에서 강둑 따라 걷다가 볕 바른 자리에서 쑥을 제법 캤던 곳이었다. 그때 못다 캔 쑥을 남겨 놓았더랬다. 검불을 헤집으니 웃자란 쑥이 파릇했다. 보드랍고 여린 쑥이었다.
나는 문구용 칼을 꺼내 허리를 굽혀 무념무상 쑥을 캐 모았다. 장소를 옮겨 대산정수장 가까이로 내려가 보았다. 그곳 농로에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강둑 언덕엔 아낙 셋이 쑥을 캐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마 나처럼 시내에서 쑥을 캐러 일부러 차를 몰아 강둑까지 나온 사람들인 듯했다. 나는 그 아낙들과는 구역이 다른 곳에서 쑥을 더 캤다. 내가 캔 쑥은 상당히 많았다.
쑥을 캐서 농로로 나오니 아낙들은 떠나 차는 보이질 않았다. 신발과 겉옷에 붙은 검불을 털었다. 쑥이 채워진 배낭을 메고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신전마을로 갔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이웃 아파트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넣었다. 봄 방학 근황도 알 겸 소주를 한 잔 나누자고 했다. 집 근처 아파트상가 주점에서 마주 앉아 잔을 채워 권하기 전 배낭의 쑥을 친구에게 몽땅 안겨주었다. 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