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도서관 탐방
700억 기부금이 만든 관정관, 곳곳에 숨겨진 동문 이름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17호(2021.04.15)
(가운데) 중앙도서관 관정관(右): 2015년 중앙도서관 본관 뒤편에 신축. (제공=서울대 중앙도서관)
(위 줄) 첫 번째와 두 번째: 관정관 7, 8층에 넓은 열람실을 배치하고 온돌 난방으로 쾌적한 분위기 조성.
3, 4층 로비에 책상 놓고 자유롭게 ‘스터디가든’ 조성, 이용자가 원하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
세 번째: 3만3,000여 점의 영화와 음악 자료를 감상할 수 있는 관정 미디어플렉스
(아래 줄) 첫 번째: 관정관 내부 시설 모두 기부금으로 마련. 기부자명 새긴 7, 8층 열람실 서가.
두 번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수면의자.
세 번째: 7층 중앙정원 등 실내 조경에도 각별히 신경썼다
‘대학은 도서관을 둘러싼 건물의 무리에 불과하다’. 미국의 역사학자 셸비 푸트는 대학 도서관의 상징성을 이렇게까지 표현했다. 2015년 신축한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은 의미와 시설 면에서 모두 서울대의 랜드마크로 꼽힌다. 다녀간 이들은 입을 모아 서울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라 말하고, 못 가본 이들에겐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다.
관정관은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현재 본관) 뒤편에 자리해 있다. 이종환(AMP 7기)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 이사장이 600억원을 쾌척해 40년 만에 지은 첨단 시설의 도서관이다. 규모는 지상 8층, 연면적 약 2만7,245㎡. 관정관 신축으로 서울대 중앙도서관(관장 김명환)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학 도서관이 됐다.
자유롭게, 고요하게 학습공간 다양화
관정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너른 나무 계단(관정마루) 위에 오르면 잠시 어리둥절할 수 있다. 2·3층 로비에 마치 카페처럼 드문드문 테이블이 놓였는데, 모두 수다 대신 ‘열공’중이다. ‘스터디 가든’으로 불리는 이곳은 열람실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선호한다.
같은 공부 공간인데 7·8층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관정관의 백미로 꼽히는 총 2,000여 석 규모의 대형 열람실이다. 기둥 하나 없이 뚫린 깊은 공간, 멀리 소실점을 향해 도열한 테이블과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기분마저 든다. 백색소음에 가까운 이곳의 소리를 녹음한 유튜브 영상이 수험생에게 인기다. 노트북 존과 박사과정생·박사학위논문 작성자·박사과정 후 연구생을 위한 개인 연구공간 ‘캐럴’을 별도로 뒀다.
열람실 곳곳을 살펴보면 이 거대한 도서관의 안팎이 오로지 기부금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600억원을 쾌척한 이종환 이사장의 호는 도서관 문패가 됐고, 십시일반으로 100억원을 모은 900여 명의 기부자들은 각각 책상과 의자, 서가 등 기물과 캐럴, 스터디룸 등 공간 하나하나에 이름이 새겨졌다. 동문과 교직원 외에 일반 시민 기부자도 눈에 띈다. 1호 기부자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을 전달해서 화제가 됐던 조용남씨의 이름은 열람실 의자에 새겨졌다.
‘알쓸신잡’ 몇 가지. 각 열람실의 별칭인 ‘기억의 방’, ‘상상의 방’, ‘이성의 방’은 프란시스 베이컨이 인간의 모든 지식을 분류한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진리의 방’은 서울대의 장정 ‘진리는 나의 빛’에서 영감을 받았다. 열람실인데 서가가 함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도서관에 드문 온돌 난방 방식을 택했다.
‘꾸벅꾸벅’ 대신 수면의자서 눈 붙여
공부하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모습은 관정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곳곳에 눈을 붙일 수 있는 휴식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어 누울 수 있는 수면의자와 온열의자를 놓아뒀다. ‘코를 심하게 골면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의문이 안락함을 짐작하게 한다.
곳곳에 놓인 현대미술 작품과 푸른 식물이 뜨끈한 머리를 식혀준다. 7층 중앙 정원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책을 보는 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페달을 밟으며 책을 보게 만든 사이클, 휴대폰 통화 소음을 줄이기 위한 전화 부스도 눈에 띄는 아이디어. DVD와 음악CD 등 3만3,000여 점을 보유한 미디어플렉스(6층)는 관정관의 자랑거리다.
추억 많은 본관도 리모델링 계획
가로 길이가 165m에 달하는 ‘ㄱ’ 형태로 본관을 감싼 관정관 형태는 ‘새 것과 옛 것의 공존’이라는 건축 의도를 충실하게 실현했다. 관정관의 2층과 5층 사이 내벽은 46년 세월의 본관 외벽이 대신했고, 본관의 옥상은 관정관의 뜰이 됐다. 3층에 놓인 노란 바나나 모양의 의자는 한 미대 명예교수가 오래된 본관의 서가를 갈고 다듬어 만든 것이다.
7층 실내정원과 3층 출입구의 나무 그루터기 모양 의자에도 역사가 있다. 서울대는 관정관 터에 오랫동안 자라온 나무들을 살리려고 많은 고민을 했다. 70여 그루는 캠퍼스 곳곳에 옮겨 심고, 이식해도 살기 어려운 벚나무는 그루터기를 남겨 이광근(계산통계83-87) 컴퓨터공학부 교수, 장수홍(응용미술69-76) 도예학과 교수가 의자로 만들었다.
당분간 외부인이 관정관을 찾을 수는 없을 듯하다. 학내 구성원이 아닌 이들을 위한 도서관 회원제가 있으나, 코로나19로 신규 가입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 대신 홈페이지에서 VR투어로 관정관을 둘러볼 수 있다(library.snu.ac.kr/vr/kor.html). 중앙도서관 본관도 역사와 추억을 간직하고자 리모델링을 계획 중이다. 상세 정보 확인은 ‘서울대 도서관 친구들’ 홈페이지(friends.snu.ac.kr)에서 가능하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