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널리 퍼져 나갔다
탈출 1,8-22; 마태 10,34-11,1 /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2023.7.17.; 이기우 신부
평일 미사의 독서가 창세기에서 탈출기로 바뀌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역사 개입은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부르시고, 어떻게 키우시는지 대단히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드러날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이 하느님 백성을 억압할수록 더욱 번성하고 널리 퍼져 나가는 섭리도 드러날 것입니다.
요셉의 배려로 이집트에서도 가장 비옥한 나일강 하류의 고센 땅에 자리잡은 야곱의 후손들은 4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큰 부족으로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후대의 파라오들은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던 탓에 이 야곱의 후손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집트를 구해 준 요셉의 사적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들어서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뀝니다.
즉, 자신의 나라에 들어온 이 이주민들을 끌어안아 사회 통합을 이룩하려고 하기보다는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적국에 붙어서 자신들에게 맞설 잠재적 적수로 의심하면서부터 그들을 노예로 부리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이 의심은 수백만 명으로 불어난 이 이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혹독한 강제노역을 시키는 사태로 커졌고, 이에 동원된 이집트 감독관들과 이집트 백성 역시 이로 인한 대형 석조 건축물들을 보면서 파라오의 편에 섭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파라오의 의심은 불안과 공포심으로 커져서, 이주민들의 인구 증가를 억제해 보려고 가당치 않은 명령까지 내리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 1,22). 하지만 이후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파라오가 사악한 마음을 품고 낸 꾀를 모조리 무산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발판으로 삼아 히브리 노예들인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하느님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고, 이것이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믿게 되는 원체험이 되었습니다.
비단 이집트 파라오만이 아니라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사악한 마음을 품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무수히 출현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의 수하가 되어 악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한 대결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악을 무찌르는 이 싸움에서) 나를 따르려면 모두 (악과의 싸움에서 요구되는) 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마태 10,38).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파라오가 품었던 사악한 마음과는 반대되는 선한 마음으로서, 악과 싸우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건네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2백여 년 전 이 땅의 임금들과 대신들은 또 다른 파라오였습니다. 순조와 철종 그리고 고종과 같은 조선 왕조 후대의 임금들과, 어린 임금을 대신하여 섭정하던 정순왕후와 그 뒤에서 조종하던 노론 양반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주교가 들어오자 그 교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정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남인 학자들이 천주교인이라는 혐의를 들이대면서 정적 숙청의 작업으로 대대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천주교인들의 씨를 말릴 작정으로 백년 동안이나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그 박해의 빌미를 준 북경 주교의 조상제사금지령 때문에 국법을 어길지언정 교회의 명령을 따라야 했던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은 안팎으로 위기에 내몰린 셈이었습니다.
이렇듯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개입하셨습니다. 이벽 세례자 요한으로 하여금 천주교 교리서를 읽고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심으로써 한국 역사에 개입하신 하느님께서, 지도부가 모조리 거세된 상황에서 유학은 물론 한문도 모르던 일반 백성 출신 신자들로 하여금 신앙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심으로써 전국에 2백 군데에 가까운 교우촌을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2천 년 교회 역사에서 보기 드문 기적적 현상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이후 박해를 받아 용감하게 순교한 역사는 있었어도, 박해를 피해 신앙 공동체들을 세우면서까지 저항한 역사는 한국교회가 유일합니다.
그 결과, 박해가 점점 더 심해졌어도 천주교 신자들은 늘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교우촌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신앙을 증거하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 왕조의 통치가 일반 백성을 너무도 가혹하게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양반과 지방 아전들의 돼먹지 못한 착취를 당해 이승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사느니, 차라리 고귀한 천주교 교리를 믿으며 살아가 죽어서 천당을 가는 게 차라리 낫다는 심리가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박해 후기에 가면 천민 출신과 부녀자들이 천주교인들이 되려는 숫자가 늘어나서 박해로 치명한 교인 숫자를 능가할 지경으로 늘어났습니다. 억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느님 백성이 번성하고 늘어난 이러한 섭리는 그 옛날 이집트에서나 2백여 년 전 조선 사회에서나 똑같이 현실에서 구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듯이 엄정하게 실현되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이들은 세상의 박해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롯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을 향하여 나아갈 뿐입니다. 결국 역사의 대세는 하느님 섭리가 승리하는 역사로 귀결됩니다.
첫댓글 그당시에 백성들이 천주님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아서 신심이 생겼을까
궁금 했었습니다.
그이유 중에 조선 왕조의 통치가 일반 백성을 너무 가혹하게 억압 하였기 때문 이며,돼먹지 못한 착취를 당하면서 이승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사는것 보다,
고귀한 천주교 교리를 믿으며 살다가 천당을 가는게
낫다는 심가가
퍼져서 였군요.
파라오의 억압에 이스라엘 이 하느님을 믿게 되는 원체험과 같은 비슷한 이치 였겠구나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네 신앙 선조들은 천주교를 알기 전부터 '하느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심성은 멀리 고조선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천주교 교리 덕분에 그 '하느님'의 정확한 속성 즉 삼위일체이심과 십자가로 부활하심을 알게 되어 종교적 심성이 신앙적 덕목으로 강화된 것이지요. 조선 왕조의 저질스럽고 무능하며 부패하기까지 헀던 정치는 이 신앙적 덕목에 불을 붙인 것이구요. 제 카페에서 요한 복음서의 해설 부분에서 이 대목을 좀더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