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전 휴거론의 목적은 주의 재림을 가리는데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을 감출때 화려한 것으로 진리를 가려서 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와에게 선악과가 화려했던 것은 뱀의 화려한 수식이 있었던 부분도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즐겁고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인지라, 그녀가 거기에서 그 열매를 따서 먹고 그녀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 주니, 그가 먹더라.
창세기 3장 5절 6절
주의 다시오심이 마지막때의 환난보다 중요하고, 주의 다시오심이 우리가 공중에서 주와 만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환란전의 휴거란 매우 화려한 선악과의 유혹과도 같은 것이 됩니다. 두려운 환란에서 피할 수 있다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다시오심은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환란전 휴거론자들은 마지막때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인내를 확신하지 못하여,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속에는 애매한 것에 대한 분별이 중요하게 됩니다. 실수로 미혹당하여 잘못을 저지르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심판은 공의로 이뤄지는 개인적인 심판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재앙과 전혀다르게 매우 분명하고 공정할 것입니다.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까지 비치는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장 27절
인자가 오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분별할 수 있게 마치 하늘에게 번개가 쳐서 동쪽하늘에서 서쪽하늘에까지 비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4장 11절 12절
짐승의 표 666에 대해서는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불신앙의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인내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때의 일루미나티의 비밀정보를 분석하지 못하여 인내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알려진 인내는 감당하기를 두려워 하면서, 감춰진 인내를 하려고 마음먹는 스스로의 기만은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환란전 휴거라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루미나티가 흘리는 정보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하와이테러에서 살아남은 가옥을 휴거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저 집은 blm 운동가의 집으로 알려졌고, 이는 일루미나티들의 dew공격의 정밀성을 나타내는 것이지 휴거의 표상이 아닙니다.
https://blog.naver.com/esedae/223202684897
그리고 사막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일루미나티에게는 쉬운 기술입니다.
문재인이 백신접종에서 예외를 받은 것이 휴거의 표상이 될 수는 없습니까? 환란에서 제외받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증거 아닌가요?
환란전 휴거란 인내를 싫어하는 사람이 인내없는 구원의 방법을 사람의 상상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모두 같습니다. 그런데 휴거로 구별됨은 자신만이 특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바리새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바리새인은 서서 혼자 이렇게 기도하더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즉 착취하고 불의하며 간음하는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또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라고 하더라.
누가복음 18장 11절 12절
그 블로거는 이렇게 기도하더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즉 일루미나티를 몰라서 백신을 분별하지 못하고 백신을 맞은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라고 하더라.
바리새인과 일루미나티를 분석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혹은 앞서 언급한대로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감추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환란전 휴거는 주의 다시오심을 감추고 있습니다. 마지막때는 주가 이 땅에 다시오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가 다시오심이란 곧 전세역전이 되는 것이며, 지금의 사탄의 종들이 권세를 잡고, 괴롭히다가 전세가 역전이 되어 사탄의 종들이 우리의 발판이 되어 우리에게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전쟁중인데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달에도 수십개의 악법이 등재되고, 하늘에는 캠트레일과 건물의 옥상에는 5G중계기가 설치되어 우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언제 38G로 주파수가 올라갈지 모릅니다. 일본의 오염수에는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하여 겨누고 있는 5G 방사능에는 무감각합니다.
전쟁과 식량위기와 백신의 작동시기와 짐승의 표의 도래가 언제될지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전세가 역전 되어 우리가 승리하는 주의 다시오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내의 원동력이 됩니다.
마지막때가 느껴진다면 주의 다시오심을 느끼고, 소망을 갖는 것이 마지막때를 준비하는 현명한 처녀들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환란전 휴거라는 화려한 편법이 사람들의 시야를 가려버린 것입니다. 시야가 가려버리면 인내의 원동력이 될 주의 다시오심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되며, 인내할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현상이 바로 마지막때에 일어날 일은 휴거면 그만일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주의 다시오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지막때하면 휴거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것에 끌려간 사람들의 열매는 마지막때에 공의롭게 알려진 짐승의 표에 대한 인내를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휴거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땅의 것들을 포기하는 인내의 과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예레미야블로거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방식으로 인내가 필요하지 않은 휴거 추첨제와 같은 애매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당신도 알겠지만 하나님은 애매하신 분이 아닙니다.
마치 보기 불편한 장면을 스킵하는 것처럼 환란전 휴거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짐승의 표를 인내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지위와 명예와 건강을 모두 포기하는 인내가 필요하고 게다가 생각보다 늦어진다고 기록된 주의 다시 오시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리고 버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라.
마태복음 24장 23절
환란전 휴거자들에게는 단축될 그 날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란전 휴거자들은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이 됩니다. 당신에게는 단축될 그 날들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