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0. 큐티
시편 113: 4 ~ 9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관찰 :
1) 높으신 여호와
- 4절.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절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기 때문에 찬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주권자가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 모든 열방과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의 영광”(כְּבֹודֹֽו, 케보도)는 ‘카보드’(כָּבוֹד)에 ‘그의’를 의미하는 대명사 어미가 결합된 것입니다. ‘카보드’는 본래 ‘무거움’이란 뜻인데, ‘장관’, ‘풍부함’, ‘영광’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영광의 현현이 땅에 국한되지 않고 하늘에까지 그리고 보이는 하늘을 넘어서서 그 이상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큰 그 영광이 충만하시며 풍성하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하늘 위의 높은 곳을 넘어서까지 여호와의 영광이 높으시기 떄문에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 5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 여호와와 같은 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어떤 신도, 그 어느 누구도 여호와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높음과 영광이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시다는 의미입니다.
2) 살피시는 여호와
- 6절.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 본 절은 ‘천지를 살피기 위하여 스스로 낮추사’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스스로 낮추신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여호와께서 스스로 낮추심이 천지를 살피시기 위하심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늘도 그 영광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우시며 하늘 위에 보좌를 두시고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면서도 연약하고 미천한 인간들을 보살피시기 위해 스스로 낮추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은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을 예언하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메시야의 사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를 낮추신 자비로우심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 7절.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무가치한 자를 약하고 곤궁한 처지에서 일으키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대의 왕들 혹은 높은 지위에 앉은 자들에게 있어서 약한 자들, 비천한 자들, 가난한 자들은 경멸과 무시, 착취의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심에도 이들을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낮아지시고 그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어디에도 발견한 수 없는 신의 모습입니다.
3) 그 백성을 세워주시는 여호와
- 8절.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 시편 기자는 7절의 내용에서 이어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하나님이 높이시는데 어느 정도로 높이시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미천한 처지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비천한 처지에서 벗어나 존귀하게 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소외와 가난, 고통 속에 거하던 자들이 여호와의 섭리와 은혜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9절.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근거를 불임의 고통 가운데 있던 여인에게 자녀를 가지는 기쁨을 허락해 주신데서 찾고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불임은 여자에게 있어서 수치였고, 심지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그 집 안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라고 표현하며 여호와께서 상황을 역전시키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불임의 상황에 있던 한나를 염두에 두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편 기자는 히브리인들이 잘 알고 있던 상황을 동원해서 마치 불임 여성이 겪는 것과 같은 수치와 멸시,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절망과 고통의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자와 은혜를 베푸심으로 축복의 상황으로 변화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치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평화와 안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높은 위치에 계시지만 스스로 낮추셔서 세상을 감찰하시고 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로 존귀함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시편 기자는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높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사고로는 하나님의 높으심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지으신 분이시기에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지구도 다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태양계와 우리 은하도 다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우주보다 크다는 개념은 도달할 수 없는 인지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놓으신 분이십니다. 높으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은 찬양받으시는 것이 합당한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모든 이들, 모든 피조물들을 다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인류가 80억의 인구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다 살필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기에 하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는 분이시고, 실제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낮고 낮은 이 땅에 인간으로, 그것도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보내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다 체휼하심으로 인간을 이해하시고 연약하고 낮은 자를 높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신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아니 오직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신 것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하신 한 분이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그 백성을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두 다 높여주시고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저주 받은 것으로 치부되던 불임의 여인도 자녀들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도록 회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시기에 영원히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4) 시편 113편은 “할렐시”입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 절기에 주로 사용했습니다. 본 시편에는 여호와를 향한 찬양을 촉구하는 내용과 더불어 찬양의 이유와 찬양하는 자가 받을 축복, 그리고 구체적인 찬양의 내용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예언하는 축복이 담긴 시편이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영적인 축복속에 할렐루야로 본 시편을 맺고 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높으시며, 감찰하시는 분이시며, 어렵고 힘든 형편에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높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저의 형편을 감찰하시고 회복시키시고 높여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2)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시편 기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았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될 일들에 대해서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인해서 할렐루야 찬양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