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채비 - 23. 6. 28
이른 아침에 와서 가장 먼저 챙기고 하는 일은 그날 옹달샘에서 해야 하는 교육활동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맞게 수업 채비를 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열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대개 전날에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서 다음 날 시간표에 따라, 미리 세워둔 교육 밑그림에 맞게 수업 채비를 하고 퇴근하는 때가 많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날씨와 아이들 체력과 기운, 관계 따위를 살피면서 그때그때 교육활동이 바뀌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미리 계획된 것을 안정되게 펼쳐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상황에 맞게 즉흥성을 살려 교육활동에 빠르게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갑자기 한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온다든지, 바깥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미세먼지가 좋지 않거나 비가 오면 그에 따라 당연히 교육활동도 바뀌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선생은 늘 어떤 변수에 따라 어떻게 교육활동을 잡고 고칠지 날마다, 때때로 살펴야 합니다.
사실 올해 옹달샘에서는 아침열기 때 계획된 꼭지를 꾸준하고, 안정되게 펼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함께 살면서, 서로 어울리는 기운을 더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말 그대로 아침을 여는 의식이자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학교 학사 일정이나 교육활동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들어맞지는 않아요. 그래서 제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가 더러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일 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보고 때와 아이들 기운에 맞게 잘 운영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또 다음을 내다보곤 합니다. 그것은 아침나절과 낮에 하는 공부와 마침회도 그렇습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같이 아이들이 자유롭게 쉬거나 노는 시간에 아이들 모습을 살펴보고 생활지도를 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계획한 대로 하지 못하거나 해야 할 것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하거나 아이들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겨우 깨달아서 제 나름으로(?) 마음에 찾아오는 평화를 느끼며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림책을 이것저것 살펴봤습니다. 옹달샘 아이들 관계를 살피고 감정을 읽는 공부 하려고 지난주부터 생각을 해왔고 아침나절에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공부로 들려주고 이야기 나눌 그림책을 미리 정해두고 그것에 맞게 수업 흐름도 다 그렸는데 뭔가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느 그림책을 고르던 선생이 계획하고 전하려고 하는 주제를 펼치는 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미심쩍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책이 오늘 수업을 풀어내는데 가장 좋은 그림책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어떤 주제를 어떤 그림책으로 풀어낼지 미리 생각해 둔 게 제법 있긴 해요. 그래도 그때마다 어떤 걸로 풀어낼지 조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지금 아이들 모습에 맞게, 공부하려는 뜻을 더 살릴 수 있는 책을 가져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어떻게 할까? 무엇이 좋을까?’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처음 계획한 그림책이 아닌 다른 그림책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그림책이 달라졌으니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도 달라져야 하겠고 교육활동도 다시 살펴야 했습니다. 큰 맥락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밑그림이 있었으니 구체로 고치는 것은 시간이 좀 필요할 뿐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지금 아이들 모습과 기운에 맞게 수업에서 배움으로 이끌 방법을 이른 아침에 살피는 게 제가 자주 하는 수업 채비입니다. 때와 상황에 따라 즉흥성을 살려 교육활동에 변화를 주는 것은 마땅히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느 때는 갑작스레 바뀐 교육활동과 흐름 때문에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기도 해서 잘 살펴야 합니다.
아침열기에 앞서 학교에 온 아이들이 다 교사실 제 책상에 놓인(아침에 미리 아이들 머리 크기에 맞춰 잘라 놓고 다듬어 놓은) 민가면을 보고 뭔지 물어요. 오늘 아침나절에 공부로 만들고 꾸밀 거라고 하니 아이들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왜 만들까? 만들어서 뭘 할까?’라는 궁금증이 당연히 드는데 선생으로서는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계획한 공부로는 성공한 셈입니다. 이것을 공부로 어떻게 잘 풀어나갈지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그 때에 맞게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늘 아침열기 때 큰 틀에서 어떤 공부를 할지 알려주지만 자세한 건 그 공부 시간에 풀어내는 편입니다.
아침나절에 수업으로 할 내용과 흐름을 정하고 아침열기 시간에는 축구를 하러 옹달샘 아이들과 소공원으로 나갔어요. 어제 제가 반차로 아침나절을 쉴 때 푸른샘과 같이 지냈는데 해적 놀이터에서 놀아서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던 축구를 하지 못해서 축구를 아침 몸놀이로 하고 싶다고 어제 낮부터 졸라댔거든요. 정해진 아침열기 흐름대로라면 명상을 하면서 차분하게 하루를 여는 게 맞지만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땀 뻘뻘 흘리면서 축구 한 판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못 이기는 척, 아이들 바람을 들어주는 것처럼 기분 좋게 나가서 하루를 기운차게 여는 것도 좋으니까요.
아침열기를 몸놀이로 하고 와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아침나절에 할 교육활동 흐름과 내용을 다시 살핍니다. 그러면서 날마다 수업 채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라는 걸 생각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 저마다, 모두에게 배움과 자람으로 이어지는 교육일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선생이라서 그런 것이겠지요. 그런 고민이라면 얼마든지 해야 하고 행복한 상상으로도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 채비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저와 만나는 아이들이 있어 저 또한 날마다 바뀐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첫댓글 어떤 준비된 수업보다
때에 맞고 기운에 맞는 수업이
아이들에게 제일 귀할 거 같아요
집에서도 저의 기운이 있어 아이의 기운에 맞게 살피는 게 쉽지 않네요...
참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고민과 노력에 건배🥂
항상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애씀이 필요했어요.
어느때에는 그 애씀이 너무 고단하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때 화가 난 적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며 깨달은 건 힘을 빼는 것과 균형이었어요.
항상 아이들과 만나는 공부시간을 끊임없이 고민하시고 계획하시는 선생님께 늘 감사드리지만
더더 감사한 것은 선생님 글에서
힘을 빼는 것과 균형을 찾으며 애쓰시는게 느껴져서에요.
우리가 좋은 것을 주고 싶어 계획했으나
그게 늘 좋은 것일 수 없고
나쁘다고 생각한 것들도 나쁜 것만은 아니듯이요..
때에 맞게 지내시는 융통성을 발휘하시고,
마음을 내려놓으시는 시간들마저도
저는 왜이렇게 좋고 감사한지요.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