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2. 큐티
시편 145: 1 ~ 7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
관찰 :
1) 표제어
- 다윗의 찬송시 => 본 표제어에는 저자가 다윗이라는 정보만 나오고 있습니다. “찬송시”로 번역된 “테힐라”(תְּהִלָּה)는 유월절, 칠질절, 장막절의 3대 절기나 안식일 예배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작시된 시편입니다. “테힐라”는 “시편” 전체를 나타내는 책이름이기도 합니다. 시편 전체에서 28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런데 개별 시편의 표제어에 사용된 것은 시편 145편이 유일합니다. 이 표제어를 통해 본 시편이 만인과 만유에 의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찬양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본 시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맞추어 두운을 취한 답관체입니다. 9편의 답관체 시편들(9, 10, 25, 34, 37, 111, 112, 119, 145) 중에서 마지막 시편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22개이기에 본 시편이 22행이 되어야 하는데, 14번째 자음 “눈”이 누락되어 21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본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누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2) 날마다 주를 송축하리이다
- 1절.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 다윗은 왕되신 여호와를 향한 뜨거운 찬양을 열정을 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높이겠다고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 시편의 전체 주제입니다. “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본 절에만 나오지만, 다윗은 본 시편의 전반에서 “그의 광대하심”, “주의 통치”와 같은 표현들을 반복해 사용함으로 여호와의 왕되심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왕들이 있지만 그 많은 왕들의 주권과 권력과 능력은 제한적이고 한시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주권과 무한한 권력과 능력을 소유하신 왕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신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것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대리통치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송축하고 찬양하는 일을 반드시 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의 이름”을 송축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 자비로우심, 선하시며 인자하신 성품, 그리고 그에 근거해 행하신 모든 은혜로운 일들을 찬양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윗의 찬양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친밀함에서 비롯된 찬양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 2절.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 다윗은 “송축하며”, “송축하리이다” 반복을 통해서 계속해서 여호와를 송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을 “날마다”, “영원히” 반복하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위대하신 여호와를 찬양
- 3절.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 “위대하시니”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으며 측량조차 할 수 없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은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초월적인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4절.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 다윗은 여호와를 찬양하되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찬송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과 “주의 능한 일”입니다. 여호와의 행사가 너무나 크고 위대하기 때문에 이것을 한 세대만 가지고 온전히 찬양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세대까지 찬양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함에 있어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도 같이 담겨있습니다.
- 5절.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이다” => “주의 기이한 일들”의 “기이한 일들”은 하나님의 행사의 기이함, 신비로움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행사를 기이한 것, 신비스러운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 위엄이 탁월하고 신묘막측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행사를 바라보면서 이와 같이 놀라움과 감탄을 금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놀라운 권능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행사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은혜와 자비, 긍휼, 한결같은 사랑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묵상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행사의 신비로움, 영광스러움만 아니라 그 행사들 가운데 포함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긍휼과 자비, 은총이 내포된 것을 묵상하고 조고조곤 고백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6절.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 다윗은 사람들이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행하신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들, 예를 들면 출애굽 시에 있었던 열 가지 재앙,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신 일,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등을 땅속에 묻어버리신 일 등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만인 앞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일들이 사람들에게 공포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당신의 행위들의 권세에 대해 말할 것이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자신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 7절.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며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 다윗은 사람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할 것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의 크신 은혜”는 무분별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다윗이 제시하는 것이 “주의 의”입니다. “주의 의”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 의미로서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하신 모든 일들을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목적도 이유도 없이 베풀어진 눈먼 은혜가 아닙니다. 여기서의 주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확고히 하시고 그 백성에게 베푸신 약속을 성취하시고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베풀어진 것입니다.
가르침 :
1) 다윗은 날마다 영원히 대를 이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로지 여호와 한분 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다윗에게 왕으로 불리어지는 분이시며 모든 왕들이 다 같이 섬겨야 하는 진짜 왕이신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 끝이 없습니다. 우주가 끝이 없는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권세와 권능 역시도 끝이 없습니다. 그런 분은 오직 한분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3) 다윗은 여호와의 크신 일을 묵상하며 읊조리며 찬양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기억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그 깊이를 더할수록 더 깊은 찬양으로 이어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새노래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향한 찬양에 전심을 기울이고 성심을 다해 진심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여호와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을 찬양하기로 저 역시 다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라도 나는 여호와를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찬양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의지를 동원하여 진실하신, 아멘이신 우리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2) 나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우리 주님으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삶 속에서 일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을 경배합니다.
3) 미얀마에서 너무나 혹독한 시간을 겪었습니다. 이 상황을 주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감당할만큼 시련을 주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4) 주님의 은혜로 한국에 나와 아내의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는 문제들을 풀어주시고 회복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드립니다. 광대하신 하나님, 내가 결코 다 알 수 없는 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