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동요 '과수원길'에도 등장하는 이 꽃을 우리는 ‘아카시아’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아까시나무'다.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와 완전히 다른 열대 식물이라고 하니 알고 나서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 하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듯하다.
어릴 적 초등학교를 멀리 걸어다녔다. 동네 밖을 나서면 아까시나무 그늘이 터널을 이룬 등성이를 지났다. 초여름 친구들과 집에 돌아오는 지루한 하교길에 햇볕을 피해 아까시나무 그늘길에 앉아 꽃도 따먹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잎을 하나씩 따는 놀이를 했다. 이긴 사람은 진 사람 이마에 꿀밤을 때리며 다시 이 놀이를 반복하곤 했다. 잎을 다 딴 줄기로 미장원놀이도 했다. 퍼머를 한다고 줄기를 구부려 머리카락을 고정하여 라면 머리를 만들고 놀면서 즐거워했다.
아까시나무가 우리 주변에 흔한 만큼 우리는 이 나무와 가깝고 친숙한 삶을 살아왔다. 이 나무가 있었기에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이 있고 나름의 문화가 존재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고마운 나무이다.
5월 산과 들에 피는 '아까시나무'는 우리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묘한 정서가 서려있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아까시꽃은 소박한 시골 여인처럼 수수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꽃대에 조로록 옹기종기 달린 꽃송이 하나하나가 다복한 집안의 자매들처럼 정답고 어여쁘다. 발레 치마가 들린 것 같은 우윳빛 꽃잎 가운데에 연둣빛이 어리는 꽃송이들이 꽃대에 조롱조롱 달려있다. 가까이 천천히 봐야만 발견할 수 있는 귀엽고도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꽃의 생김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까시꽃의 가장 큰 매력은 향기이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날아드는 달콤한 이 향기는 우리의 후각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정신까지 아찔하게 한다.
아까시꽃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놓고 진한 아까시 향을 가슴 깊숙이 받아들여 음미해 보라. 시간을 멈춘 행복을 내 몸에서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향긋한 향기를 풍기는 아까시꽃은 온동네 달콤한 간식이 되었다. 아까시나무 꽃은 관상용이라기보다 진달래나 감꽃처럼 ‘먹을 수 있는 꽃’이었다. 아까시꽃을 송이째 따서 먹다가 송충이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배고픔과 단 것에 대한 갈증을 잠시나마 해소해 주던 고마운 꽃이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아까시나무는 꽃도 잎도 모두 먹을 수 있다. 어린잎으로 생채 샐러드를 하거나 활짝 피기 직전의 꽃을 따다가 튀김을 해 먹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아까시꽃 튀김을 맛나게 먹는 주인공의 행복한 모습이 나온다. 원래 찹쌀풀을 묻혀 말려서 튀겨 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튀김옷을 바로 묻혀 튀겨도 바삭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살아 있어 좋다.